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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큰둥한 북한에 속수무책인 문재인 정부

전진하기도 , 회군하기도 애매… 박근혜 정부 對中 정책과 닮은꼴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시큰둥한 북한에 속수무책인 문재인 정부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10만 평양 시민이 운집한 5·1경기장에서 ‘남쪽 대통령’이라며 연설한 문재인 대통령.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10만 평양 시민이 운집한 5·1경기장에서 ‘남쪽 대통령’이라며 연설한 문재인 대통령.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국내 경제문제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의 특별감찰반(특감반)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남쪽 대통령’이 기염을 토했던 연설에 대한 기억은 아스라이 사라졌다. 남북한 핫라인도 사실상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에 정성껏 공을 들인 문 대통령에게 왜 보답하지 않는 것일까. 

국제관계는 신뢰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적대적 관계일수록 철저히 현실주의로 움직인다. 남북한은 기본적으로 적대관계다. 한 방의 포성으로 전군이 총원 전투태세에 들어가고, 한 발의 미사일로 데프콘1이 가동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동맹국 못지않은 신뢰를 주고, 많은 것이 돌아오리라 기대했다.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집단 사고(group think)의 덫에 걸린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돈이 많다”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다뤄온 정보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하나같이 현 북한 경제상황이 쪼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의 북한 농업 수확량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가을걷이를 했으니 내년 봄까지는 식량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북한 인민이 굶는 때는 햇고구마가 나오기 직전인 춘궁기이지 겨울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돈도 많다고 했다. 이유는 세금과 뇌물이 잘 걷히기 때문이라고. 

제대로 돌아가는 산업이 없는데 어디서 징세를 할까. 전문가들은 ‘전화세’를 지목했다. 이들은 “지금 북한은 프롤레타리아를 위하고 배급을 하는 공산국가가 아니다. 독재자와 사업가가 결탁해 돈을 빨아먹는 천민(賤民)자본주의 사회”라고 진단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돈을 벌기 위한 모든 술수가 판을 친다. 한 정보통의 설명이다. 

“유엔은 북한산 특수광물의 수입을 완전히 금지했고, 철광 등 민생 목적에 한해서만 허용하는 경제제재를 결정했다. ‘미국의 눈’이 있으니 북·중 간 11개 다리의 중국 해관(세관)은 북한산 특수광물을 실은 트럭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특수광물을 옷 안에 잔뜩 집어넣는 보따리장수를 이용한다. 유엔은 보따리장수가 생필품을 거래한다 보고 규제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미 얘기는 돼 있으니 중국 해관원들은 보따리만 본다. 특수광물은 양이 적다. 두만강 쪽에 있는 다리는 짧고 보따리장수를 해줄 이들은 넘쳐나니, 한 트럭분은 너끈히 보낼 수 있다.”




유엔 제재 속에서 생존술 터득한 북한

“전화가 되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텐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내 답방이 무산되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종석 비서실장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뉴시스]

“전화가 되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텐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내 답방이 무산되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종석 비서실장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뉴시스]

이후 북·중 업자들은 정산을 하는데, 주로 ‘유사 폰뱅킹’을 이용한다.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이는 ‘물주’나 ‘돈주’로 불리는 사업가다. 이들은 당연히 북한 통신망을 이용해야 한다. 북한은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전화카드에 간접세를 붙이는 방식으로 세금을 걷는다. 이들은 중국 측과 통화한 후 환치기와 유사한 방법으로 정산한다. 해외거래를 많이 하는 기업은 외환송금 수수료를 줄이고 환거래 사실을 숨기려고 자국에 있는 상대의 에이전트와 자국화로 거래하는 환치기를 주로 하는데, 북·중 기업가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휴대전화를 통해 이런 에이전트와 물주, 돈주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당연히 북한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이 당대회나 전승절 같은 행사를 할 때 자발적으로 성금을 낸다. 당국은 그 대신 이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한다. 이러한 유착과 전화세 덕분에 김정은 정권의 수중에 돈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6차 핵실험과 화성-14형을 발사한 후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 하고, 유엔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했을 때는 한때 북·중 거래가 얼어붙어 북한 경제가 어려웠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대화로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며 절실히 대화에 나서자 남북대화를 진행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이 진전을 보이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입술’을 잃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 그를 달래며 전용기까지 제공하는 성의를 보였다. 덕분에 김 위원장은 중국을 ‘울타리’로 세워놓고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이어 핵실험장을 파괴하고, 미군 유해를 보내고, 남북한 GP(감시초소)를 함께 파괴함으로써 북한 위협론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북한 위협론이 한국에서 크게 감소했는데, 이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김정은 답방이 필수라고 본 문재인 정부가 우호적인 여론 형성에 노력한 것도 한몫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무대에서도 대북제재 해제를 꾸준히 요청했다. 그런데 북한 물주와 돈주들이 제재를 뚫는 방법을 찾아내자 북한 당국이 ‘배가 불러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성명문에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넣자는 우리 측 요구를 북한은 ‘가까운 시일 내 답방’으로 바꿨다. 북한은 상황 변화에 따른 출구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개성 바로 북쪽에 있는 태탄군에는 헬기비행장이 있다. 국방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12월 1일과 8일 북한은 이 비행장에서 이륙시킨 헬기를 남쪽으로 비행하게 했다. 9·19 군사분야합의로 설정한 북한 측 비행금지선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우리 군이 설정해둔 전술조치선은 넘었다. 

비행기는 속도가 빠르니 미리 대응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은 북한지역에 가상의 전술조치선을 설정해놓고 북한 항공기가 이 선을 넘으면 전투기를 무조건 출격시키고, 인근 지상군 부대는 전투태세를 갖춘다. 한때 북한군은 기름이 부족해 항공기를 거의 띄우지 않았다. 북한 비행기가 전술조치선을 넘으면 한국 공군은 즉시 대응한다. 이 경우 북한군도 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전술조치선을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리선권의 노림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였던 리선권이 거듭해서 도발적 언동을 한 것은 북한이 불리한 남북대화 국면을 바꿔놓고 필요시 대화를 차단하려는 노림수로 보인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였던 리선권이 거듭해서 도발적 언동을 한 것은 북한이 불리한 남북대화 국면을 바꿔놓고 필요시 대화를 차단하려는 노림수로 보인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그때 북한은 헬기를 띄워야 할 사정도 없었다. 11월 16일 우리 측 비행금지구역인 강원 양구의 GP에서 총기사고가 났을 때 우리 군은 9·19 군사분야합의에 따라 북한에 통보한 뒤 응급헬기를 집어넣었다. 북한은 이 사건을 의식하며 헬기를 남하시켰을 수도 있다. 북한 헬기의 남하에 대응해 출격한 우리 공군기들이 비행금지선을 넘었더라면 북한은 이를 트집 잡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시 봐야 할 것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빈손으로 왔느냐”, 그리고 회담장에 늦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향해 “시계가 주인을 닮아 관념이 없다” 등으로 막말을 한 리선권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의 언동이다. 그는 6월 1일 TV로 중계하는 공개 회담을 하자고 제의해 조 장관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

우리는 공무원 인사에 따라 북한 담당자를 교체해왔으나 북한은 대남사업자를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즉문즉답의 논쟁을 하거나 과거 위반 사례를 따지는 대결을 하면 우리 측이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리선권의 언어 도발은 북한이 코너에 몰려 회담에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간청 때문에 회담에 응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뒤 돌아오는 기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뒤 돌아오는 기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과 미국이 모두 현실적으로 움직이는데, 문재인 정부는 낭만적으로 대응했다 북한의 시큰둥한 반응에 곤란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상황은 2016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맞은 상황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다. 박 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하지 못한 한중 핫라인 개설에 성공했다. 2015년 9월에는 서방국가 원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공군 1호기에서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을 때 시 주석은 박 전 대통령이 수차례 건 핫라인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180도 노선을 바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고 일본과는 위안부합의를 하도록 했다. 이처럼 시 주석이 먼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박 전 대통령이 시 주석을 너무 믿었다고 본다. 

한 정보 전문가는 “박근혜 정부의 대중정책 실패에서 보듯 북한과 상대할 때 몽니를 부릴 것에 대비하면서 대화를 진행했어야 하는데, 플랜B 없이 대처하다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주간동아 2018.12.21 1169호 (p52~54)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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