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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응답하라 1988 다시 보자 운동권

“그땐 그랬지”가 아니라 “그땐 왜 그랬을까” 시대의 아픔 재조명 아쉬워

응답하라 1988 다시 보자 운동권

응답하라 1988 다시 보자 운동권

사진 출처 · ‘응답하라 1988’ 화면 캡처

#1
1988년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재학생인 성보라는 집회 간부로 활동하며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방송에 얼굴이 나올 정도로 알려진 시위 핵심 멤버다. 방송을 통해 딸이 학생운동을 하는 걸 안 아버지는 불호령을 내리며 외출 금지를 통보하지만 보라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왔다 사복경찰에게 뒤를 밟힌다. 딸을 연행하려는 경찰을 본 어머니는 눈물로 사정하고, 보라는 “잘못했다”며 경찰서로 향한다. 이후 훈방 조치된다.
#2 서울대 언어학과 재학생인 박종철은 1986년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됐다 같은 해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한다. 출소 이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가던 종철은 87년 1월 13일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된다. 다음 날 ‘대학문화연구회’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묻는 고문을 당하던 종철은 조사실에서 사망한다.

‘응팔’이 학생운동을 다루는 방식

처음 사례는 케이블TV방송(케이블방송) tvN 인기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5회 내용이다. 그다음 사례는 1987년 실제로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 사건은 86년 부천경찰서 여대생 성고문 사건과 함께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촉발제가 된다. 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 ‘응팔’ 1~6회 시청률(CJ E&M 제공, 닐슨코리아 조사, 유료플랫폼 기준)을 분석한 결과 주요 시청층은 40대 여성과 남성이었다. 88년 청춘이었던 중년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미 ‘응팔’ 시청률은 보편적인 케이블방송 성공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성별·연령별 시청률을 보면 1회(11월 6일)에서는 30대 여성 시청률(7.65%)이 가장 높았으나 2회부터는 40대 여성이 30대 여성을 앞질렀고 6회(11월 21일)에서는 40대 여성 시청률(11.67%)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남성 시청률은 1회부터 6회까지 꾸준히 40대에서 가장 높았다. CJ E&M 관계자는 “시청률은 5회가 6회보다 더 잘 나왔다. ‘응팔’ 최고 시청률은 5회에서 기록했다”고 말했다. 5회 평균 시청률은 11%, 최고 시청률은 12.6%였다.
그러나 5회와 6회가 방영된 이후 시청자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했다며 즐거워한 시청자도 많았지만, 학생운동을 탈선 취급하며 지나치게 가볍게 다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생운동을 하다 연행되면 고문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있던 시기, 보라가 시위 주동자임에도 훈방 조치된 것을 두고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6회에서 차를 몰고 나타나 “선배가 잠깐 어디 가서 내가 차를 쓰기로 했다”는 보라의 말에 동생 덕선이 “깜방, 깜방(갔어)”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부분 또한 일부에게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87학번으로 1988년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모(48) 씨는 “당시는 옳다는 신념 하나로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기다. 많은 대학 선후배가 고문으로 몸이 상하거나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했는데, 극 중 학생운동권 수뇌부인 보라를 경찰이 순순히 풀어줬다는 건 말 그대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이 학생운동을 ‘가볍게 다뤘다’지만 가볍게가 아니라 ‘잘못 다뤘다’고 본다. 가족극이라 어차피 운동권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을 거였다면 초반 보라의 아버지가 시위대 청년을 구해주는 장면 정도로만 보여줬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 그 말도 맞다. ‘응팔’은 정치풍자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다만 일부라 해도 그 시대의 산증인들이 불편하게 느낄 정도라면 너무 안일한 접근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대중은 판타지를 더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이는 2007년 까르푸-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바탕으로 한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송곳’이 배우들의 명대사와 명연기, 원작 웹툰의 인기에도 1% 초반의 낮은 시청률을 유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누리꾼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너무 현실적으로 잘 만들어 보는 내내 불편하다”고 평가한다.
응답하라 1988 다시 보자 운동권

1987년 6월 10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차도에서 시위 군중이 경찰이 쏘는 최루탄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왼쪽). 1988년 2월 25일 서울대 졸업식장. 졸업생과 재학생 600여 명이 ‘종철아, 너를 두고 갈 수 없다’는 대형 현수막과 박종철 열사의 대형 영정을 앞세운 채 스크럼을 짜고 있다. 동아일보


고등학생도 시위에 참여하던 시대

‘응답하라’ 시리즈 제작진은 과거에도 실존 인물과 역사, 허구를 적절히 배합해 스토리에 활용해왔다. ‘응팔’도 예외는 아니다. 극 중 천재 바둑기사인 최택의 대국 장면이나 성품 등을 봤을 때 여러모로 이창호 9단이 모티프가 된 것으로 보이듯이 말이다.
보라는 주인공 덕선의 친언니이자 ‘응팔’ 가족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인물소개에는 1968년생,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2학년(87학번)으로 나오며 ‘뜨거운 열정을 데모에 모조리 쏟아내고 있는 운동권 학생’으로 소개돼 있다. 시기적 상황을 보면 보라가 중학생 때 5공화국이 출범했고, 대학에 입학했을 즈음은 5공화국이 끝날 무렵이다. 다른 가족이 TV에서 흘러나오는 ‘부라보콘’ CF송을 따라 부를 때 보라는 당시 불온서적이던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 서울대 사범대 출신 운동권 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보라의 당찬 행보를 보며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연상하는 시청자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특징이 성공한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콘셉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라도 정치 쪽으로 투신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심 대표를 잘 아는 지인은 “보라는 학생운동을 했고, 78학번인 심 대표는 당시 금속노동조합을 이끌며 노동운동을 했기에 결이 다르다. 당시 심 대표가 지명수배가 됐는데, 재판정에 섰을 때 노동운동의 수괴가 키 작고 임신한 여성이라는 사실에 판사가 놀랄 정도였다. 제작진이 그 당시를 그리며 여러 인물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강인한 이미지 정도는 따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88년 89학번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김모(46) 씨는 “1987년 6월은 고교 2학년이던 나를 거리로 내몰았던 시기”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해 노동자 대투쟁은 인생을 뒤흔든 계기가 됐어요. 예정돼 있던 경복궁 소풍이 취소되던 날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조국이 민주화되면 소풍 간다’고요. 하지만 아직도 그 소풍을 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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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방송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당시 청춘 시절을 보낸 40대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시청률 고공 행진 중이다. 사진 제공 · CJ E&M


88년을 호출해야 했던 이유

김씨는 “1986년 고교 1학년 때 88 서울올림픽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고3이라 아쉬웠다. 고교 1학년 당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전두환 정권의 만행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는 고교 3년을 정상적으로 보낼 수 없었다. 1986년 CA(제헌의회 그룹)의 신길동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기습공격으로 도로 위 경찰버스와 안기부 안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근처 고교에 다니던 나는 우리 학교 CA를 자처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1991년 5월에는 명지대 강경대 열사가 시위 도중 전경에게 맞아 숨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군 입대 하루 전날 벌어진 일이었죠. 그때 서울 전체가 불바다였어요. 지금은 차벽을 세우지만 그때는 쓰레기차, 쓰레기함을 바리케이드처럼 깔아놨죠. 그러면 거기에 줄을 매달아 당기는데, 그게 열리면 백골단이 들어오고 거기서부터 화염병을 던지고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백골단을 피해 노고산으로 도망갔는데 한참 뛰다 뒤를 돌아보니 백골단은 1명이고, 우리는 2명이더라고요. 그날 처음 본 사이였는데 둘이 앞에 보이는 구멍가게에서 빈 맥주병과 빗자루를 들고 뒤돌아서 싸웠어요. 그랬더니 백골단이 ‘에이 ○○’ 이러고는 도망쳤죠. 둘 중 하나는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에요. 여학생도 시위에 많이 뛰어들었어요. 평소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던 이화여대 학생들은 시위가 있는 날이면 정장을 쫙 빼입고 예쁜 쇼핑백을 손에 들었어요. 쇼핑백 안에는 화염병이 들어 있었죠. 그렇게 해야 단속에 걸리지 않으니까 예쁘게 차려입고 집회 장소로 이동하기도 했어요. 1990년대에도 그 정도였는데 드라마가 다루는 88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한 시기는 아니었어요.”
극 중 보라의 아버지는 시위 현장에서 아들 같은 시위대를 감싸주곤 쌈짓돈을 쥐어주며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다독이지만, 딸이 시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노발대발한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응팔’에서 그 당시 격했던 학생운동 등을 가볍게 다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극 중 아버지의 행동은 당시 학생운동이 잘못됐다고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게 아닌, ‘내 새끼만큼은 위험한 일 하지 말았으면’ 하는 부모의 이기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만약 운동권인 보라가 극 중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았다면 ‘응팔’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학생운동을 하는 딸과 그걸 바라보는 가족의 처지를 다루는 방식은 지금 정도의 수위가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응팔’에서 중요한 건 장르를 규정하는 것보다 왜 1997년, 94년에 이어 88년을 호출했느냐입니다. 시대적 상황을 단순히 복구, 재현하기보다 그 시대를 지금 호출하는 이유나 목적이 더 선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응팔’이 다루는 시대는 거시담론이 미시담론으로, 즉 정치나 사회적 변화에서 개인의 일상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는 시기였다. 90년대 X세대 문화의 등장이 가능해지고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복고에만 초점을 맞추면 소위 ‘감성팔이’라고 비난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땐 그랬지’가 아니라 ‘그땐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가는 것입니다.
80년대는 ‘운동권’ 아닌 학생이 없었을 시기예요. 왜 그 당시 젊은이들이 시대의 아픔이나 민주주의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몸을 던졌는지에 대해 한 번 정도는 극 중 보라의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간동아 2015.12.02 1015호 (p30~32)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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