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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한국이 따라나선 ‘아베 모델’ 저출산 대책

20여 년 ‘총력체제’에도 효과는 미미…강력한 의지는 본받아야

한국이 따라나선 ‘아베 모델’ 저출산 대책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주최로 10월 19일 열린 공청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이른바 ‘아베 모델’이 큰 주목을 받았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아베 총리가 측근 각료를 ‘1억 총활약담당상’에 임명하고 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상징적인 일”이라며 “정부도 저출산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저출산 담당 장관’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계기였다.

저출산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의 선배 격이다. 인구구조와 소비 흐름 분석으로 1980년대 일본 버블 붕괴와 90년대 미국 호황을 예측한 미국 덴트연구소 창업자 해리 덴트는 “한국은 일본을 정확히 22년 후행한다”며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줄면 소비가 줄고 생산도 줄면서 경제 활력을 기대할 수 없다. 노인인구가 늘어나 사회보장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아는 아베 총리는 9월 24일 기자회견에서 2단계 아베노믹스를 위한 ‘3개의 화살’ 가운데 하나로 합계출산율(출산율)을 1.4에서 1.8로 회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출산율 1.8은 아이를 낳고 싶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거나 경제적 이유로 낳지 못하는 사람이 모두 낳는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수치. 이어 10월 7일 개각 때는 측근인 가토 가쓰노부 의원을 1억 총활약담당상에 임명하고 50년 후에도 현재 인구인 1억 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가토 의원을 발탁한 것은 대장성(현 재무성) 출신으로 경제·재정정책에 밝은 데다 자민당 후생노동부회장을 맡은 점을 참작했다고 한다.

쏟아지는 대책, 플랜, 대강

일본 언론에서는 이러한 아베 내각의 행보를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용이라고 폄훼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아베 총리가 저출산 문제 전담 장관을 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 2006년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도 저출산 담당 특명장관직을 신설했다. 특명장관은 여러 부처가 관련된 국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책임과 소임을 명확히 하고자 임명하는 자리다. 이후 모든 정권이 이름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저출산 문제를 담당하는 특명장관직을 유지했다.



이번에 신설한 1억 총활약담당상은 저출산 대책과 아베노믹스를 아우르는 자리로, 저출산 대책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대담한 구상이다. 아베 총리는 1억 총활약담당상이 경제·재정정책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에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제대로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가토 장관에게 내년도 예산 편성이 시작되기 전인 11월 말까지 부처 간 칸막이를 뛰어넘는 대담한 대책을 주문했다. 일본 언론은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함께 육아와 일의 양립을 위한 지원책이 새 대책의 뼈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월 아베 내각이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저출산사회대책 대강’이 힌트를 주고 있다. 2003년 제정한 일본의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은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저출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시책의 대강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약 5년 주기로 저출산사회대책 대강을 발표해왔는데 올해가 세 번째였다.

저출산사회대책 대강은 저출산 문제를 ‘사회·경제 근간을 흔드는 위기적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결혼, 임신, 육아에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보육원 및 방과후 클럽 확대 등 육아 지원책을 강화하고 △좀 더 젊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도록 젊은 층의 고용 등 경제적 기반을 안정화하고 △다자녀가구의 유치원비 무상화 등 지원 대책을 강화하고 △맞벌이 부부의 육아 지원을 위해 남성의 장시간 노동 시정 및 육아휴가제도를 장려하고 △지방자치단체 실정에 맞는 지원책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중점 과제로 명기했다.

일본은 고도 성장기이던 1970년대 중반까지 2.00명 안팎의 출산율을 유지했으나 73년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2.00명 밑으로 추세가 꺾였다(그래프 참조). 89년 ‘1·57 쇼크’는 일본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당시 출산율 1.57명은 66년 1.58명 이후 23년 만에 최저치였다. 일본 출산율은 이후 단 한 번도 1.57명을 넘지 못했다. 현재 1억2000만여 명인 일본 인구는 지금처럼 아이를 적게 낳으면 100년 후인 2110년에는 4286만 명으로 줄어든다는 게 일본 정부 측 추산이다. 이래서는 일본 내수경제의 하한선인 ‘인구 1억’을 지켜낼 수 없을뿐더러, 아시아 소국(小國)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위기감이다. 아베 정권은 지난해 매년 20만 명의 이민자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과소평가해선 안 되는 이유

한국이 따라나선 ‘아베 모델’ 저출산 대책
일본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고자 1994년 12월 이른바 ‘에인절플랜’을 수립했다. 문부·후생·노동·건설 등 4개 부처 장관이 합의한 방안으로, 보육시설 확충에 주안점을 뒀다. 그래도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자 5년 후인 99년 말 대장성과 자치성 장관이 추가로 합류해 6개 대신이 합의한 ‘저출산대책추진 기본방침’(신(新)에인절플랜)을 발표했다. 단시간 근무제도 확충 등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대책이 중점적으로 수립됐다. 이어 2003년에는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을 제정했고 이듬해 내놓은 ‘제1차 저출산사회대책 대강’에 따라 2005년 아동·육아응원계획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다. 2005년에는 일본이 1899년 인구동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밑돌았다. 그해 출산율도 역대 최저치인 1.26이었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2006년 저출산 담당상을 신설하고 새로운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2007년 아동과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일본 중점 전략, 2010년 어린이·자녀 양육비전을 쏟아냈다. 2010년 6월에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자녀당 매달 1만3000엔(약 12만3000원)을 중학교 졸업 때까지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전격 도입했다.

다행히 2005년 이후 출산율은 완만히 회복됐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 힘입었다기보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71~74년생)의 막차 출산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결국 일본 출산율은 지난해 다시 9년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해 1.42를 나타냈다. 일본의 집요한 노력이 왜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지, 한국이 곰곰이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 정부의 총력 체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혼여성의 취업률이 최근 5년간 6.5% 상승하면서 보육시설 대란이 발생하는 등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해온 꾸준한 저출산 대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1억 총활약담당상 임명에서 확인되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다.



주간동아 2015.10.26 1010호 (p64~65)

  • 배극인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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