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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대국민 사기극 KFX 01

김관진 ‘책임지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유는?

2013년 9월 상황으로 복기한 KFX 파문의 숨은 1인치

김관진 ‘책임지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유는?

김관진 ‘책임지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유는?

2013년 9월 24일 서울 국방부에서 개최된 제83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차기전투기(FX) 사업의 기종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이 자리는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주재했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이미 2년 전 시작됐다. 당시에도 알 만한 사람은 ‘차기전투기(FX) 사업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결정을 주도한 누군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난 뒤 비로소 쟁점으로 불거졌으나, 이제는 누구도 2년 전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로지 미국 측의 ‘기술 이전 불가’ 통보를 왜 즉각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지연 문제만 따질 뿐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주철기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이 낙마했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보고는 왜 지연됐을까.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들을 포함해 주철기 전 수석을 아는 이는 대부분 “사안이 어그러졌다면 즉시 상부에 알렸을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직자로서의 자질이 탁월하다는 취지가 아니라, 자기 책임이 아닌 일을 뒤집어쓸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 그가 초대형 국책사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민감한 이슈를 두 달이나 ‘뭉갰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2년 전 FX 사업 결정의 공식적인 책임자는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미국 보잉사의 F-15SE로 가닥이 잡혀가던 기종 결정을 뒤집고 록히드마틴 F-35A의 손을 들어준 2013년 9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 위원장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지금 별다른 말이 없다. 당시 결정이 잘못됐던 것 아니냐, 김 실장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그는 국회 국정감사에서의 짧은 답변 외에는 언급을 삼가고 있다. 지원사격을 맡아야 할 청와대 역시 침묵 모드이긴 마찬가지다. 반박이든 인정이든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다는 건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김관진이 총대를? 뜻밖이었다”

한 달 이상 정국을 달구고 있는 KFX 사업 기술 이전 좌초 문제는, 이렇듯 앞뒤를 꼼꼼히 따져볼수록 의문투성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 큰 미스터리는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그러한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노력조차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쏟아지는 공격과 비판에도 사실상 손을 놓아버린 듯한 기묘한 태도에 가깝다. 안보당국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과연 김관진 실장이 2년 전 결정을 내린 당사자가 맞느냐’는 질문이다.



잠시 2013년 FX 사업 기종 결정 과정을 복기해보자. 8월 16일 2차 가격입찰을 통해 F-15SE만 유일하게 사업비를 충족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스텔스가 필요하다’는 반박이 다양한 경로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임 공군참모총장들을 중심으로 하는 예비역 인사들에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일부도 ‘스텔스 기능이 부족한 F-15SE는 적합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에 힘을 실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9월 24일 열린 방추위는 사업 재추진을 결정하고, 11월 합동참모회의를 통해 F-35A 40대 우선도입을 결정한다. 최근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확인된 사실이지만, 9월 방추위에서 김관진 장관은 F-15SE 부결과 관련해 ‘정무적 판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기종 결정 과정에서 외교안보 분야 공식라인의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는 사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스텔스는 이명박 정부가 공식화했던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전략의 핵심 무기체계였다. ‘전임 정부 유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 사업에 출범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새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없었다. 전임 정부 임기 말 주요 관련 부처를 떠돌았던 ‘로비설’도 께름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정 기종의 당위성을 강력히 주장했다가는 의심을 사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는 게 보고계선상에 있었던 전직 정부 관계자의 회고다. FX 사업이 혼선을 거듭하며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당시 안보당국자 상당수는 김관진 장관의 돌연한 ‘결단’이 매우 뜻밖이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그렇듯 민감한 이슈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는 것.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에 임명됐다 뜻하지 않게 임기가 늘어나는 바람에 ‘전임 정부의 사람’이라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았던 시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F-35A는 바로 그 전임 정부가 내심 염두에 뒀다던 기종. 오히려 독자적 판단이라면 오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든 의문을 해소할 열쇠

이 때문에 당국자들은 대체로 “당시 이미 ‘기종 변경 결정은 대통령이 내린 선택일 테고, 김 장관은 지침을 전달받아 총대를 멨을 뿐’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고 말한다. 공식·비공식 라인의 보고를 두루 청취한 대통령 본인이나 핵심 측근 그룹이 마지막 결정을 내렸으리라는 것. 뒤집어 말해 ‘꼭대기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크기의 선택’이었다는 이야기이고, 김 장관만의 독자적 결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당시 정부 안팎의 이러한 기류는 최근 불거진 의문점을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먼저 김관진 실장은 왜 침묵을 지키는지, 청와대는 왜 그에게 나서서 해명할 것을 채근하지 않는지부터 명쾌해진다. 당시 결정이 애초 대통령 본인의 것이었다면 당연히 김 실장에게 책임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 대통령의 위상을 지키는 일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매우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박근혜 정부의 그간 패턴을 감안하면, 그렇다고 해서 화살이 대통령에게 직접 날아오는 상황을 감수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 해명이든 고백이든, 누구도 2년 전 일을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청와대 당국자들이 펼치는 논리를 요약하면 ‘F-35A 대신 F-15SE나 유로파이터가 선정됐다 해도 기술 이전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주장에 가깝다. 최근 언론과 야권에서는 해당 기종 업체들이 기술 이전을 확약했다는 점을 들어 2년 전 결정이 잘못이었다고 말하지만, 기술 이전 불가 결정을 내린 주체는 미 국방부이고 보잉사 역시 미국 회사이므로 상황이 달라졌을 리 없다는 게 그 골자다. 유로파이터를 입찰한 당시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기술 이전 약속 역시 100% 신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이어진다. 요컨대 당시 결정의 핵심 고려사항은 스텔스 기능이었지 기술 이전이 얼마나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느냐는 부차적 쟁점이었고, 따라서 잘못된 게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함정이 있다. 바로 ‘기술 이전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민간 군사전문가는 “모든 기종에서 기술 이전이 쉽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러한 한계가 당시 공식화됐다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적은 대수의 F-35A를 구매하는 방안은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저렴한 기종으로 공군이 주장하는 적정 대수를 맞추거나 스텔스기는 억제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최소 수량만 구매하는 다른 선택지에 힘이 쏠렸을 공산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가장 결정적 하자는 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사실이 당시 충분히 검토됐을 경우 KFX 사업의 방향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을 수 있다는 대목이다. 공군이 말하는 ‘전력공백 사태’와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이나 로드맵을 따져볼 기회가 날아가버린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 결국 F-15SE 대신 F-35A를 사기로 한 결론이 문제가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실 확인과 검토가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이후 주요 전력 도입 사업이 줄줄이 엉키게 됐다는 점이 핵심 포인트라는 이야기다.

‘VIP 어젠다’의 함정

김관진 ‘책임지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유는?

2014년 10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도 원주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열린 국산전투기 FA-50 전력화 기념식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청와대와 안보당국에서 이 사안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설명대로 ‘FX는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암묵적 공감대가 당시 이미 당국자들 사이에서 형성됐다면, 최근 불거진 일들 역시 상당 부분 의문이 자연스레 풀린다. 미국 측의 기술 이전 불가 통보는 2년 전 결정에 흠결이 있었음을 뜻하므로,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거나 문제 삼는 일은 곧 대통령의 결정이 적절했는지를 따져 묻는 일이 된다. 오히려 은밀히 미국 측을 설득해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들거나, 아예 전혀 다른 우회로를 뚫어서라도 불똥이 튀는 것을 막는 일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방사청이 미국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후 48일간이나 청와대 보고를 미뤄가며 대안 마련에 부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전직 당국자의 말이다.

“공직자들끼리 흔히 사용하는 ‘VIP 어젠다’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쏟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특정 사업이 VIP 어젠다가 되고 나면,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도 돌파해야 한다는 생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미국 측의 기술 이전 불가 통보 이후 벌어진 갖가지 혼선에서 VIP 어젠다를 관철하려는 전형적인 분위기를 읽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정리해놓고 나면 남은 쟁점은 하나로 모인다. 공식라인과 비공식라인을 막론하고 과연 F-35A의 당위성을 대통령에게 강하게 설득했던, 그러면서도 기술 이전의 어려움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4월 이후의 보고 지연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일 뿐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KFX 사업 파문의 ‘숨어 있는 1인치’이지만, 조사를 진행했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한 전직 안보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년 전 결정을 조언한 인사들을 괘씸하다고 여기고 있을까. 아니면 대통령은 책임을 묻는 자리지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라고 믿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결국 문제의 뿌리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의 한계다. 신속하고 단호하지만, 실수를 인정할 수 없는 경직된 체제의 취약점이다.”



주간동아 2015.10.26 1010호 (p10~12)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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