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8

2017.10.04

특집 | ‘메가데스’ 시대가 온다

국민은 ‘자연장’ 원하는데 장례 시설 태부족

고령화 여파로 눈앞에 온 ‘메가데스’ 시대, 사회적 인프라 마련해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7-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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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폴 칼라니티의 책 ‘숨결이 바람 될 때’의 한 부분이다. 촉망받는 신경과 의사이던 저자는 30대 중반에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 전에도 자신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죽음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그는 고민했다. ‘앞으로 나는 대체 뭘 해야 할까.’

    어쩌면 이것은 매일 하루씩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던져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 머잖아 ‘메가데스(Mega-Death)’ 시대에 직면하게 될 대한민국에서는 이 질문이 갖는 의미가 더욱 크다. 메가데스는 원래 원자폭탄 등으로 수백만 명이 집단 사망할 때 쓰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고령층 증가로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을 지칭하는 사회학적 용어로 쓰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1946~64년 출생)의 사망이 집중돼 일정 기간 사망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메가데스라고 한다.



    ‘화장+자연장’ 선호 뚜렷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65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2%를 차지한다. 2005년 436만5000명과 비교하면 10년 새 220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이미 우리나라 5가구 중 1가구(19.5%)는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이며, 그중 32.9%는 고령자 1인 가구에 해당한다. 이들의 죽음에 대비하는 일은 이제 개인을 넘어 사회 문제인 셈이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28만827명으로 전년 대비 1.8% 늘었는데, 이는 198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대치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조사망률’은 549.4명으로 전년보다 1.5% 증가했다. 2025년에는 연간 사망 인구가 40만4000명, 2035년에는 50만7000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737만 명)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숨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급격히 ‘준(準)메가데스 시대’에 진입하는 만큼 ‘죽음 준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설 교육 프로그램이 하나 둘 생겨나고, 지역 문화센터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관련 강의를 마련하고 있다. 건강할 때 주위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도 확산 중이다. 통계청이 우리 국민의 생활 모습과 의식 구조 등을 파악하고자 실시하는 사회조사 문항에도 ‘선호하는 장례 방법’이 포함돼 있다.

    통계청이 2015년 실시한 해당 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한 장례 방식은 ‘화장 후 자연장(수목장·잔디장 등)’(45.4%)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 후 봉안(납골당·납골묘 등)’(39.8%), ‘매장(묘지)’(12.6%) 등의 답이 뒤를 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10명 중 8명 이상이 화장을 원하는 셈이다.

    조사 결과에서 만 65세 이상 고령자 응답만 별도 분석한 자료를 봐도 화장 선호 현상이 뚜렷이 확인된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국민이 가장 바라는 장례 방식은 ‘화장 후 봉안’(37.3%)이었다. ‘화장 후 자연장’(31.2%)을 선호한 응답자까지 더하면 화장을 택한 비율은 68.5%로 ‘매장’(28.6%)의 2배를 훌쩍 넘어섰다. 2011년 조사 때만 해도 65세 이상 고령자가 가장 선호한 장례 방식은 ‘매장’(38.8%)이었으며 ‘화장 후 자연장’을 택한 응답자는 4명 중 1명(25.0%)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3년 같은 조사에서는 ‘매장’을 바라는 응답자 비율이 4%p 줄어든 반면, ‘화장(봉안과 자연장 포함)’ 비율이 5.8%p 상승했고 2015년엔 ‘화장 후 봉안’ 선호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화장 후 자연장’에 대한 선호가 25.0→28.2→31.2% 등으로 계속 높아진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 화장 후 자연장이 합법화된 건 10년 전이다. 정부는 2007년 5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을 개정해 이듬해부터 망자의 유골을 나무(수목장), 꽃밭(화초장), 잔디(잔디장) 등 자연물 아래 두는 것을 허용했다. 우리나라에 국립수목장림이 생긴 건 그로부터 2년 뒤로, 산림청이 2009년 5월 경기 양평군 양동면 일대 국유림에 조성한 ‘국립하늘숲추모원’이 첫 사례다. 그러나 이후 자연장 시설은 크게 늘지 않았다. 2015년 12월 현재 수목장림은 전국적으로 국공립 6곳을 포함해 51곳에 불과하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설 수목장림 가운데 26곳은 특정 가족이나 종중원 등만을 위한 곳이라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숲은 더욱 적다. 그런데도 국민 다수, 특히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고령자 상당수가 자연장을 원하는 셈이다.

    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유앤미리서치가 9월 8, 9일 이틀간 부산·대구·경남에 거주하는 40대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사시설 및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 조사’(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자의 81.8%가 ‘화장’을 원했다(그래프1 참조).

    성별로는 여성(87.1%), 연령별로는 40·50대(85.1%), 직업별로는 주부(89.6%)의 화장 선호율이 가장 높았다. 남성(24.1%), 70대 이상(27.3%), 무직(29.8%)은 상대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이 그룹에서도 화장 선호율이 60%를 훌쩍 넘겼다.



    윤달마다 ‘개장 유골 화장’으로 북새통

    사망 후 매장보다 화장되는 비율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장사시설 전문회사 ‘메모리얼 소사이어티’가 지난해 발표한 ‘2016년 장사시설 현황과 장사문화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화장률은 1991년 17.8%에서 2005년 52.6%, 지난해 4월 현재 81.2%로 수직 상승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 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장례·장묘 서비스를 직접 이용한 소비자 6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3%(494명)가 화장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과거 매장했던 조상 묘를 열어 유골을 화장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이른바 ‘윤달’이던 지난해 6~7월 전국 화장터가 크게 붐빈 이유가 여기 있다. 묘지 속 시신을 꺼내 화장한 뒤 다시 안치하는 것을 ‘개장 유골 화장’이라 하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2010년대 들어 개장 유골 화장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하늘과 땅의 신(神)이 사람을 감시하지 않아 궂은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속설이 있는 윤달에 맞춰 개장 유골 화장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윤달이 없던 2013, 2015년 전국 공공화장시설에서 이뤄진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각각 4만8206건과 4만6453건이었다. 반면 윤달이 있던 2012, 2014년에는 각각 8만7982건과 8만15건으로 평년의 2배에 달했다. 지난해 윤달에도 전국적으로 개장 유골 화장이 크게 늘어 전국 화장장이 붐볐다. 고령층의 화장 거부감이 줄고 핵가족화 추세가 확산하면서 60, 70대가 후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조상 묘를 열어 유골을 화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렇게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방법은 봉안시설 이용과 자연물 이용으로 크게 나뉜다. 통계청 조사에서는 응답자 다수가 유골을 수목, 화초, 잔디 등에 묻는 ‘자연장’(45.4%)을 선호했다. 부산·대구·경남지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유앤미리서치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띄는 점은 통계청 조사에서는 ‘화장 후 자연장’ 비율과 ‘화장 후 봉안’(39.8%) 비율이 비슷했지만, 유앤미리서치 조사에서는 ‘화장 후 자연장’(63.2%)을 선택한 비율이 ‘화장 후 봉안묘·봉안탑·봉안담’(21.5%), ‘화장 후 봉안당’(15.3%)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이다(그래프2 참조). 유앤미리서치 조사에서 자연장을 선호한 응답자는 여성(67.7%), 50대(69.9%), 주부(67.6%)가 가장 많았다.



    “사망 인구 늘면서 문의 급증…자연장 원해”

    선호하는 장례 방식으로 ‘화장 후 자연장’을 택한 이들이 그중에서도 가장 원하는 방식은 ‘수목장’(65.6%)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목장은 남녀 모두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가장 선호하는 장례 방식이었다. 이어 ‘잔디장’(24.4%), ‘화초장’(10.0%)을 원한다는 응답이 많았다(그래프3 참조). 문제는 이러한 바람과 달리 죽음이 닥쳤을 때 화장 후 자연장 또는 화장 후 봉안을 택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9월 중순 기자가 찾은 경남 밀양시의 한 추모공원은 산봉우리들 사이에 자리해 아늑한 느낌이었다. 추모공원에서 멀리 밀양 시내를 내려다보면 내세에서 현세를 바라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파릇파릇한 잔디가 깔린 800여 기의 봉안묘와 호텔을 연상케 하는 봉안당을 갖췄는데, 관리자는 주로 영남지역 사람과 영남 출신 출향인이 찾는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추모공원으로 걸려오는 문의 전화가 2년 전에 비해 2배가량 늘었고, 자연장 관련 문의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곳 관리자의 설명은 이렇다.

    “사망 인구가 늘면서 문의 전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매장묘 관련 문의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봉안당, 봉안묘와 함께 자연장에 대한 문의가 부쩍 많아졌죠. 앞으로 사망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자연장 선호도도 더 높아질 테니 대비를 해야 해요. 우리도 시설을 확충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시설 확충의 필요성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유앤미리서치가 ‘화장 후 자연장’을 원하는 응답자에게 ‘사는 지역에 자연장지가 충분히 있는지’를 묻자 10명 중 7명은 ‘부족하다’(67.3%, 다소 부족 42.6%, 매우 부족 24.7%)고 답했다. ‘충분하다’(32.7%)는 응답의 2배가 넘는다. ‘화장 후 봉안’을 원하는 응답자도 63.4%가 관련 시설이 ‘부족하다’(다소 부족 44.3%, 매우 부족 23.9%)고 답했다.

    이 모든 장례 방식의 선결 조건인 화장장 설치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해당 조사에서 ‘선생님께서 사시는 지역 인근에 화장장을 설치한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응답자의 67.8%가 ‘반대’ 의견을 밝혔다(그래프4 참조). 특히 여성(79.3%), 50대(41.9%), 주부(76.6%)의 반대율이 높았다. 이는 화장 선호율이 상대적으로 높던 그룹과 일치한다. 반면 추모공원 설치에 대한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낮아 찬성(59.3%)이 반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과거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유교 효(孝)사상과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했다.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묘를 쓰고 잘 관리해야 후손에게 복이 온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 때문에 경관이 아름다운 산지는 상당 부분 묘지가 차지해 국토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그러나 2007년 장사법 개정과 국민 인식 변화 등으로 과거처럼 ‘좋은 묏자리’를 선호하는 이는 줄어드는 추세다. 유앤미리서치 조사에서 선호하는 장례 방식으로 ‘매장’을 선택한 응답자의 41.4%가 ‘선산이나 문중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답했지만 ‘공원묘지’(29.9%), ‘개인가족묘지’(19.5%)를 택한 응답자도 적잖았다. 가장 젊은 연령대인 40대는 ‘공원묘지’(45.5%) 선호율이 ‘선산·문중묘지’(39.8%)나 ‘개인가족묘지’(14.6%)보다 높았다.

    이런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국토 훼손이 적고 후손의 부담도 덜한 장례 방식이 조속히 정착하려면 화장장과 수목장림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국민 다수가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수목장 등 자연장은 초기 비용이 저렴할 뿐 아니라 관리가 편하고 묘지가 공원 구실도 해 누구나 거부감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다.

    한 장례 전문가는 “전국 화장장 수는 현 수요를 감당하기에도 부족하다. 정부가 빠른 시간 안에 화장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서라도 화장장 수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목장, 화초장, 잔디장을 조성할 대지를 추가 확보하려면 장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녹지지역(일부), 주거·상업·공업지역, 상수원보호구역, 산림보호구역, 군사보호구역, 지자체 조례로 정하는 지역 등에는 묘지를 설치할 수 없다. 자연장 토지 역시 묘지에 포함되므로 이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자연장이 가능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든다. 2014년 기준 65세 고령자의 기대여명은 남자 18.3년, 여자 22.8년이지만 질병이나 사고로 병을 안고 사는 ‘유병기간’을 제외한 기대여명은 남자 8.9년, 여자 9.2년으로 더 짧다. 우리 사회가 메가데스에 대비할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한가위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풍요를 즐기는 민족 대명절이다. 이때 왜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 노토 지역을 여행한 기억을 떠올리며 ‘노토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묻는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300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고 회상한다.

    이를 통해 그가 얻은 깨달음은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고 이야기하는 건, 곧 삶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삶이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운 순간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필요하다면 사회를 향해 ‘좋은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 또한 그래서 의미 있다. 우리 사회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삶을 즐기며 원하는 방식의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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