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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람이 그리워” 청년, 고독을 말하다

인간관계 자체가 사치인 그들을 위한 변명

“사람이 그리워” 청년, 고독을 말하다

“사람이 그리워”  청년, 고독을 말하다

[shutterstock]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취업준비를 하는 정모(27) 씨는 토요일 저녁마다 대학 친구들을 온라인 게임방에서 만난다. 매주 함께 게임을 하는 사이인 만큼 얼굴을 자주 볼 법도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오프라인에서 이 친구들을 만난 적은 없다. 정씨는 “취업한 친구가 많아 밖에서 만나도 별로 할 말이 없고,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괜히 조바심만 든다”며 “가끔씩 모이는 자리에 나가볼까 하다가도 직장인이 된 친구들이 여전히 취업준비생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온라인상에서만 만나고 있다”고 했다.

비단 정씨뿐 아니라 대한민국 청년은 외롭다. 취업준비 기간에는 시간도, 돈도, 자존감도 없어서 누군가를 만나기가 꺼려진다. 설령 어렵사리 취업한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긴 업무시간에 치여 개인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월급이라고 해봐야 이것저것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몇 푼 안 되니, 밥 먹고 차 한 잔 마시는 교제비조차 부담이 된다. 각박한 주위 환경 탓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청년이 이제 인간관계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취업준비는 인간관계의 무덤

이렇게 인간관계의 고리를 끊은 채 고립된 삶을 살다 보니, 생활고나 불확실한 미래를 비관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할 때 주위에서 말려줄 사람조차 없다. 서울시복지재단 조사에 따르면 혼자 사는 청년이 자기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청년 고독사’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세대가 처한 문제에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업난과 빈곤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청년의 불안이 줄고 유대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N포세대’라 부르는 지금의 청년에게 포기는 극단적 선택이 아닌 일상이다. 2월 인터넷 취업포털 ‘사람인’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 30대 남녀 1675명 중 1156명(69.0%)이 ‘자신이 N포세대에 속한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인간관계를 포기하기 시작하는 것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다. 8월 ‘사람인’이 구직자 9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직활동을 하며 인간관계가 좁아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64%(60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직업이 없어 지갑이 얇은 취업준비생은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쌓아야 할 스펙이 더 늘어나 시간도 부족하다. 결국 이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연애나 친구 등 인간관계. 서울 관악구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유모(25·여) 씨는 “돈도 돈이지만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없어 친구들과 점점 멀어진다”고 말했다.

직장을 가져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신규 채용 청년(15~29세) 394만5000명 중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청년은 전체의 64%(252만4800명)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청년(20, 30대) 비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151만1000원 수준. 경기 안양시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27) 씨는 “월급이 세후 150만 원 수준인데 월세 50만 원에 공과금 10만 원, 통신비 10만 원, 교통비 10만 원, 식비 20만 원, 의복과 생필품 구매비 10만을 빼면 남는 돈은 40만 원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30만 원을 비상금으로 남겨두면 용돈은 10만 원뿐인데, 친구를 만나기는커녕 혼자 영화를 보거나 책 몇 권을 사기도 빠듯하다”고 밝혔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긴 업무환경도 청년을 고독으로 내몬다. 한국 근로자의 인당 연간 업무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76시간보다 337시간이나 길다. 게다가 퇴근 후에도 수시로 업무 연락을 받는 ‘대기 모드’인 경우가 많아 마음 편히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스마트기기 업무 활용의 노동법적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가 일주일 동안 업무시간 외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한 시간이 총 11.7시간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직장에서 막내 노릇을 하는 청년 직장인은 퇴근 후에도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2013년 서울 20, 30대 고독사 328건

“사람이 그리워”  청년, 고독을 말하다

9월 7일 오후 서울메트로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의 한 일본식 1인 식당. 취업준비 등으로 인간관계가 단절된 청년을 위한 1인 식당까지 등장했다. [뉴시스]

중소기업에 비해 업무환경이나 임금 조건이 좋은 대기업에 취직해도 기쁨은 잠시. 긴 취업준비 기간 이미 친구들과 관계가 단절됐거나 사회초년생으로 업무에 적응하기도 바빠 따로 틈을 내지 못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2년 차 직장인 김모(30) 씨는 2년간의 취업준비 기간을 거쳐 꿈에 그리던 직장인이 됐지만, 그사이 친구들은 모두 떠나갔다. 김씨는 “모처럼 여유가 생긴 날 누군가와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어 휴대전화를 들었지만 막상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며 “취업준비와 취업 후 업무에 치여 살아온 지난 4년간 관계가 단절됐다”고 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청년은 더는 타인의 삶에 끼어들 시간적, 물질적, 심적 여유가 없다. 당연히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관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주위 청년에게 관심을 가져줄 사회적 유대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2014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20, 30대 청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20대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17.8명, 30대는 27.9명을 기록했다.

급기야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살다 죽은 지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청년 고독사’도 나타나고 있다. 2015년 2월 3일 한 청년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원룸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이 청년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 너무 외롭다, 서울에 친구도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7월 서울시복지재단이 발표한 고독사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서울에서만 20, 30대의 고독사 사건이 328건이나 발생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이순자 서울시의회 의원은 “실업, 주거, 결혼 등 미래에 대한 기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청년들이 사회적 관계로부터 점점 고립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가족, 친척, 친구와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주위에서 말려줄 사람이 없다”며 “혼자 사는 청년을 위한 정서적 안전망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2016-09-09 16:08:27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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