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 <마지막 회>

소득 자료 공개가 복지의 첫걸음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불구 노르웨이, 스웨덴 등 투명 공개

소득 자료 공개가 복지의 첫걸음

지난 미국 대선에서 이슈 가운데 하나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세금 납부 명세를 공개하는 문제였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역대 여느 후보와 달리 관련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뉴욕타임스’가 익명의 독자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트럼프의 1995년 소득세 신고 명세에 따르면 그는 1조 원 넘는 손실을 입었다. 이에 따라 18년간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천문학적 소득을 올리면서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보호하고자 한 ‘프라이버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선후보 등록을 하려면 재산, 납세, 병역 같은 신상정보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대선후보의 재산 공개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19대 대선 출마자 가운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1196억9000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43억3000만 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25억5000만 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18억6000만 원 등이다. 납세 실적도 안 후보가 가장 많다.



개인 소득 정보는 프라이버시?

최근 한국 대선에서 이슈가 된 건 후보 당사자가 아니라 자녀의 재산이었다.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재산 공개 의무를 지지 않는 자녀가 의혹 대상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안 후보 딸의 재산이 정쟁 소재가 됐다. 안철수 캠프 측에서 해명했지만 공식자료를 제출한 것은 아니다. 생계를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자녀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자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공직자가 아닌 개인의 소득은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다르다. 모든 사람의 세금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다. 매년 10월이면 모든 노르웨이인의 소득 정산 보고서가 공지된다. 언론은 최고 소득자가 누구인지 보도하고, 정치인과 유명 인사의 소득을 소재로 기사를 쓴다. 누구나 이웃, 친구, 동료의 연소득을 확인할 수 있다. 전 국민 소득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은 2001년부터지만 노르웨이가 전 국민 소득정산 보고서를 공공자료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1814년부터다. 다만, 2014년부터는 누가 내 세금 보고서를 열람했는지도 알 수 있다. 

노르웨이만 유난한 것이 아니다. 스웨덴도 1903년 이후 모든 세금정산 보고서가 공공자료가 됐다. 전화 한 통이면 누구든 타인의 세금 명세를 알 수 있다. 이때 정보 요청자의 실명을 밝힐 필요도 없다. 북유럽 복지국가 가운데 덴마크만 개인 세금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덴마크도 개인의 재산세 납부 정보와 기업의 세금 납부 정보는 공개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세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니다. 소득과 관련한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복지 확대와 양립하기 어렵다. 복지는 필연적으로 개인 정보의 정부 집중을 필요로 한다. 복지 수혜자를 제대로 가려내려면, 또 복지 재원을 충분히 마련하려면 소득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주변인 소득이 자신보다 높은 것을 알았을 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소득 정보 공개는 거시적으로 여러 긍정적 효과도 지닌다. 무엇보다 탈세를 줄일 수 있다. 2015년 발표된 조엘 슬렘로드(Joel Slemrod) 미국 미시간대 교수와 노르웨이 통계청 연구원들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소득이 인터넷에 공개된 뒤 노르웨이 국세청에 보고된 자영업자의 소득액이 3%가량 늘었다. 개인 소득세도 증가했다.

연구자들은 자영업자의 소득 보고가 증가한 이유를 소득 정보가 공개되면 주변의 누군가가 탈세를 파악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이처럼 소득을 투명하게 공개해서인지, 노르웨이에서는 정치인의 재산 관련 스캔들이 드물다. 반면 개인 소득을 공개하지 않는 덴마크는 북유럽국가 가운데 드물게 정치인의 재산 관련 스캔들이 있었다.

소득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려면 정확한 통계 정보가 필요하다. 2015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일반 직원의 급여 차이를 공개하도록 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CEO 소득이 일반 직원의 300배가 넘는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직전 노동자를 100인 이상 고용한 기업체는 성별, 인종별로 직원 소득이 어떻게 분포되는지 연방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독일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체에서 여성 직원이 같은 직급이나 직무를 맡은 남성 직원의 연봉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모두 성별, 인종별 임금 격차를 바로잡으려는 조치다.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첫 단계는 바로 이러한 정보 공개다. 그런 면에서 복지국가는 소득 프라이버시 수준은 낮은 대신 소득 통계가 발전한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납세 관련 행정자료 공개해야

미국은 한국보다 프라이버시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부 보안을 요하는 직종을 제외하면 모든 연방정부 공무원의 개인별 연봉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많은 주정부가 주공무원의 연소득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주립대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카운티(County)라고 부르는 지역정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면 모든 주택 소유주의 재산세 납부액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정보 공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정부 정보 공개 평가에서 한국은 1위를 차지했다. 국가정보포털에는 많은 정부 정보가 정리, 공개돼 있다. 하지만 소득은 예외다. 고위 공직자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기초통계 외 국세청 소득 자료가 공개된 적이 없다.

소득과 관련한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소득 자료를 연구자에게 공개하지 않는 정부 태도 때문인지 우리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정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은 올해 12월 국세청 소득 관련 행정자료를 반영한 새로운 불평등 지니계수를 발표하겠다고 공표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해온 불평등 지니계수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 셈이다.

많은 국가가 국세청 소득 자료와 서베이를 연계해 불평등 증가의 원인을 밝혀내려 애쓰고 있다. 미국도 여러 서베이와 세금 자료를 연계해 연구한다. 최근 발표된 불평등에 대한 중요한 사회과학 논문의 상당수가 개인의 세금자료를 직접 분석한 것들이다. 학계에서는 행정자료를 이용하지 않은 소득 불평등 연구의 설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가 있어 다른 나라보다 자료를 연계해 이용하는 게 쉽다. 교육, 소득, 의료 정보를 연계해 불평등과 빈곤 정도를 파악하고 정책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늘었는지, 누가 빈곤층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유럽 복지국가는 모두 이렇게 한다. 전 국민의 자료를 분석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 노력한다.

프라이버시 보호는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국민 복지는 정보의 공개와 정확한 통계의 작성에서 시작된다. 
※ 지금까지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를 애독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입력 2017-05-08 11:16:46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113

제 1113호

2017.11.15

“두 번 실수는 없다”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