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혁신은커녕 문제가 된 문재인

‘총선 경쟁력 입증하라’는 지지층 요구 외면, 다른 사람 ‘혁신’만 강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7-27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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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은커녕 문제가 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김상곤 혁신위원회(혁신위)가 마련한 1차 혁신안이 7월 20일 중앙위원회를 통과했다. 1차 혁신안의 주요 내용은 사무총장을 폐지하는 대신 다섯 본부장 체제로 개편하고, 당에서 공천한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으로 직위를 상실할 경우 재·보궐선거(재보선)에 공천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한 중앙위원은 혁신안 통과 직후 이렇게 촌평했다.

    “혁신위가 제도개선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헌당규를 개선하는 수준으로 총선과 대통령선거(대선) 승리를 바라는 야권 지지층의 요구 및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중앙위원회 의결에 앞서 “혁신은 국민의 명령”이라며 “혁신 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정연 비주류 인사들은 ‘문 대표도, 김상곤 혁신위도 국민과 지지자들의 혁신 요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본다.

    사무총장 폐지가 국민의 명령?

    1차 혁신안이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뒤 새정연 박주선 의원은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재보선 패배가 사무총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문 대표가 사퇴하고 친노(친노무현) 패권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영선 의원도 S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사무총장직 폐지가 (혁신의) 핵심은 아니다”라며 “혁신위가 지나치게 당내 문제에 몰입한다”고 지적했다.



    비주류 인사들이 이처럼 혁신위 활동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혁신위 활동’이 문재인 체제가 안고 있는 본질을 외면한 채 기능적 접근에 머물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새정연 한 관계자는 “문 대표는 당대표에 선출된 지 두 달 만에 치른 수도권과 호남 (4·29) 재보선에서 참패했다”며 “사무총장 때문에 재보선에서 참패한 것이 아니라, 친노계 수장으로 여겨지는 ‘문재인 대표로는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냐에 혁신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사무총장, 최고위원 폐지 같은 기능적 제도 개선에만 혁신 논의가 머물고 있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인사는 “비주류가 문재인 대표를 흔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며 “만약 문 대표 체제가 총선 전 무너져 임시 전당대회를 치르거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면 그 수혜자가 누가 되겠느냐”며 “비주류의 문재인 흔들기는 당내 권력투쟁적 요소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근본적으로는 4·29 재보선 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내년 총선에서 문재인 대표가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문 대표 체제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게 총선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당내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 재선의원도 “우리 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선거에서 자꾸 패배하기 때문”이라며 “연전연패를 경험한 당내 인사들이 느끼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 수준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표 주도로 치른 4·29 재보선에서 참패함으로써 문 대표가 패배를 승리로 바꿔줄 적임자가 아니라는 부정적 인식이 확 퍼졌다”고 덧붙였다.

    1차 혁신안은 우여곡절 끝에 중앙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김상곤 혁신위가 앞으로 혁신안을 내놓을수록 당내 계파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크다.

    1차 혁신안에 포함되지 않은 선출직 평가위원회 구성과 최고위원회 폐지 등이 당내 갈등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 특히 비주류 인사들은 선출직 평가위원회 구성 권한을 당대표에게 주고 최고위원제를 폐지하자는 것은 결국 대표에게 더 많은 권한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새정연 박지원 의원은 M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당대표의 권한을 내려놓자는 판국에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새로운 뇌관, 선출직 평가위

    혁신은커녕 문제가 된 문재인
    문재인 대표는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비주류의 ‘사퇴’ 요구를 거부한 채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이 때문에 비주류 등에서는 ‘문재인 대표라는 문제의 본질을 그대로 둔 채 혁신을 하려다 보니 자꾸 기능적으로만 접근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사퇴’ 대신 ‘혁신’을 택한 문 대표가 혁신위가 활동하는 도중에 대표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경우 문 대표도 더는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새정연 정진우 부산 북강서을 지역위원장은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 노력이 ‘기득권 지키기’로 비치는 순간 혁신은 좌초하고, 문재인 대표도 (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라며 “문 대표와 혁신위가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혁신위가 어떤 혁신의 결과물을 내놓을지 당분간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당직자들은 ‘김상곤 혁신위가 실패해 문재인 대표 체제가 흔들리면 결국 분당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당직자는 “우리 당이 분당하게 되면 2008년 총선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크다”며 “범야권은 물론 재야까지 통합해 치른 2012년 총선에서도 과반 확보에 실패했는데, 현 상황에서 다시 분열하면 100석 이하로 쪼그라들 개연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당내 비주류의 비토 속에 김상곤 혁신위가 주도하는 혁신이 국민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면서 새정연 밖에서는 혁신 실패를 가정한 ‘분당’과 ‘신당 창당’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천정배 의원이나 최근 새정연을 탈당한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 등 호남발(發) 신당 창당 움직임에는 새정연 내부에서조차 회의적 시각이 많다. 호남발 야권 개편은 제살 깎아먹기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

    한 중앙위원은 “우리 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호남 대표성이 아니라 수도권은 물론, 영남과 충청 등 취약지역에서도 득표율을 올려줄 수 있는 지도력”이라며 “호남발 야권 재편 논의는 새정연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는 것과 무관한, 현역의원들이 하는 그들만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표 체제가 흔들리면 오히려 셀프유배 중인 손학규 전 대표에게 더 많은 눈길이 쏠릴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상곤 혁신위가 실패하고 문재인 대표 체제가 무너지면 야권 지지층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쓰러진 당을 재건해 총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려면 손학규 전 대표 같은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이가 다시 깃발을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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