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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民의 한 수 06

지역감정 여전 정당공천 없애자 진보·보수로

물리로 본 ‘득표율의 거리 상관함수’… 동서로 100km 이동하면 정치 성향 달라져

지역감정 여전 정당공천 없애자 진보·보수로

지역감정 여전 정당공천 없애자 진보·보수로
우리 모두는 수많은 사람이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 안에서 매일을 살아간다. 며칠만 지나도 한참 옛날처럼 느껴지는 신문 정치면 기사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국제관계 등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급변하는 국내와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에 맞춰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그때그때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는 믿을 수 있고 능력 있는 소수를 대표로 선출해 그들에게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권력을 당분간 위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물론 권력을 행사한 정치집단은 임기 후 다시 치르는 선거를 통해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 정치인을 뽑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다. 권력을 믿고 맡길 적임자를 선택하는 권리를 다수의 보통 사람에게 부여하는 보통선거는 소수의 정치학 전문가에게 이를 일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주간동아’ 915호 ‘집단지성’에 대한 필자의 글 참조).

영호남을 나누는 투표 결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 끝났다. 전국 각 지역의 교육감,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을 동시에 뽑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지역별 투표 성향은 많이 달랐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나라 남쪽을 동서로 나눌 때 동쪽 경상도 지역과 서쪽 전라도 지역은 확연히 다른 투표 결과를 보였다. ‘그림1’은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결과를 지도 위에 소속 정당을 대표하는 색으로 표시한 것이다(이 글에 실린 모든 그림과 그래프를 제작하는 데 성균관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조우성 군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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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에서 왼쪽 지도를 보면 이번에도 경상도 지역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당적을 가진 후보가, 그리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반대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많이 당선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 정당을 지지했는지를 한눈에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인구밀도가 아주 높은 서울 지역은 사람 수는 많은데 넓이가 작다. 이처럼 개표 결과를 표시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당 후보를 찍었는지 한눈에 알기 어렵다. 따라서 각 지역의 인구밀도가 많이 다른 경우에는 실제 지도와는 생김새가 다르지만 각 지역의 넓이를 그 지역 인구수에 비례하도록 지도를 변형해 ‘그림1’의 오른쪽 지도처럼 정보를 표시하는 게 실제 투표 결과를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림2’는 마찬가지로 인구비례지도에 왼쪽부터 교육감, 기초자치단체장, 그리고 광역의회 비례대표 후보의 새누리당 지지율을 표시해본 것이다. 지도에 표시된 색이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해당 지역의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다는 뜻이다.

한국 지역감정 30년도 안 돼

이번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자. 서울 강남 3구는 여당세가 강하고, 전라도 지역의 투표 성향은 어디나 대동소이하며, 경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의 정치적 생각은 서로 많이 다르지 않다. 당연하다. 물리학자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런 얘기도 정량적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그래프1’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림2’에 있는 광역의회 비례대표 후보의 지역별 새누리당 득표율이 거리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려본 것이다. 이 경향을 ‘득표율의 거리 상관함수’라 한다.

거리가 r만큼 떨어진 두 선거구 A와 B가 있다고 하자. r가 작다면 두 지역은 아주 가깝게 사는 이웃사촌이고, 따라서 거의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일 것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강남 3구의 여당 지지율이 비슷하게 높은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r가 작을 때는 두 지역의 투표 성향이 아주 비슷해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므로 상관함수의 값이 최댓값인 1에 가깝게 된다. 거꾸로 만약 두 선거구 A와 B 사이 거리가 아주 멀어지면 특정 정당의 A 지역 득표율과 B 지역 득표율은 서로 상관없어지고, 따라서 상관함수의 값은 0에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래프1’은 이런 예측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거리가 사람들의 투표 성향을 결정하는지도 알려준다. 그래프에 따르면 대략 남북 방향으로 200km를 넘어서면 두 지역의 투표 성향은 상관없어진다. 한편 동서 방향으로는 약 100km가 넘으면 상관관계가 음(-)이 된다. 이는 사람들의 투표 성향이 아예 반대가 된다는 뜻이다. 평균적으로 얘기하면 여당을 지지하는 지역에서 100km 넘게 서쪽으로 가면 야당을 지지하는 지역이 되고, 거꾸로 야당을 지지하는 지역에서 동쪽으로 100km 넘게 가면 여당을 지지하는 지역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동서 지역갈등을 명확히 보여주는 그래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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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투표 행태는 대체 언제 시작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사실 이러한 동서 갈등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림3’은 1963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선거(대선)에서 당선한 후보의 득표율을 갖고 인구비례지도를 그려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경합한 63년 대선에서는 박 후보의 득표율이 남북 방향으로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지만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우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후 똑같은 두 후보가 경쟁한 67년 선거 때는 드디어 박 후보가 경상도에서 약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것 역시 매우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동서 지역 간 투표 성향 차이는 이후 점점 커지다 우리나라 대선 역사에서 가장 극명한 지역감정을 보여준 97년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 간 선거에서 극에 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프2’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당선자가 경북과 전남 지역에서 얻은 득표율 차이를 계산해 그린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북과 전남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87년 대선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을 알 수 있다. 71년과 87년 사이에는 대통령 직접선거가 치러지지 않아 자료가 없다. 이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지역감정은 길게 잡아 30년도 안 되는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기간에 만들어지고 고착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장구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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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 잣대로는 정치 안 변해

지역갈등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를 바란 정치인을 위해 조장된 것이다. 대동소이한 사람을 임의의 기준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눈 뒤 집단 내부 결속을 강화하면서 다른 집단과의 소통을 단절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자신이 우월하다는 믿음과 함께 상대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있다. 국민 통합을 방해하는 자들은 평범한 우리가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차이를 과장해 우리를 또 다른 우리와 구별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이용해 손쉽게 선거에서 선출되기를 바랐던(그리고 여전히 바라는) ‘그들’이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서 필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진보 교육감의 약진이다. 정당 공천을 받지 않는 교육감의 경우, 유권자가 정당에 기대지 않고 후보의 공약이나 경력을 살펴본 뒤 투표해야 한다. 이렇게 교육감 선거 후보가 어느 정당 성향인지를 바로 알아볼 수 없게 한 것만으로도 교육감 선거는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의원 선거와는 명백히 다른 진보·보수 후보 선출 결과를 보였다(‘그림2’ 참조). 만약 교육감 후보가 정당공천을 받았다면 진보성향 교육감의 약진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기초자치단체장이나 기초의회의원도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의 투표 행태를 개선하는 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속적이고 다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성향(사람의 성향은 고차원의 연속적인 벡터공간에서 정의된다)을 임의의 잣대를 이용해 둘로 나누고, 그 구별을 이용해 당선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다. 이런 ‘구별’에 바탕을 둔 선거에서 득을 보는 것은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정치인뿐이다. 머리 복잡하게 공약을 개발할 필요 없이, 단지 ‘우리가 남이가’만 되풀이하는 그런 정치인은 결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런 구태를 계속하는 것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 변화는 그들이 아닌, 평범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입력 2014-06-09 15:56:00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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