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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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고 쓸데없는 짓? 도전과 열정을 만났다”

기업가 정신 세계일주 류광현 씨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3-12-09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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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모하고 쓸데없는 짓? 도전과 열정을 만났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면 일단 주변에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갔어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첫인상을 기억에 담고 싶어서죠.”

    2012년 1월부터 354일간 세계를 여행하며 31개국에서 기업가 170여 명을 만나고 돌아온 서른한 살 청년 류광현 씨는 추억이 떠오르는 듯 ‘씨익’ 웃었다. 그의 여행 주제는 ‘기업가 정신 세계일주’. 류씨가 이 여행을 기획한 건 2011년 일이다. 전기자동차 회사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살아갈 때였다. 그는 “직장생활이 1년이 넘어가고 서른이 코앞에 다가오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무모함도, 도전과 열정도 없이 세상이 만든 틀에 갇혀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무렵 어린 시절 꿈이 떠올랐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해 집에서 파티를 자주 열었어요. 비즈니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도 빨리 어른이 돼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잠시 잊고 살았던 꿈을 이루려고 류씨는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세계 각국 기업가를 만나는 프로젝트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 이 도전을 후원해줄 기업을 찾기 시작했다. △창업주가 기업을 일궈 현재까지 경영하는 곳이면서 △무역 또는 해외 관련 사업을 하는 곳 82개를 찾아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일일이 보냈다.

    354일간 31개국서 170명 만나



    ‘미래에 세계로 진출해 사업을 펼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행동으로 노력하는 20대 청년 류광현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직장생활까지의 경험,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력, 전국 무전여행과 필리핀 오지여행 등의 경험담을 담았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번 제 프로젝트가 쉽게 성공할 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순간도 해보지 않고 두려워하며 포기하지 않습니다. (중략) 세계를 무대로 누비고 돌아와 사업가로 성장할 류광현의 꿈을 믿고 지지해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로 끝을 맺었다.

    류씨는 ‘후원사’를 찾은 이유에 대해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나가려면 먼저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어요. 저를 전혀 모르는 기업인이 저를 후원한다면 부모님도 인정할 것 같았죠. 또 국내 기업으로부터 후원받았다고 하면 현지 한국 기업인들도 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명문대 졸업장이나 그럴 듯한 스펙도 없고, 창업 구상도 없는 너에게 누가 선뜻 투자하겠느냐”고 했지만, 류씨는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32번째로 편지를 보낸 기업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답장이 왔다.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구성자 대표였다. 그는 류씨에게 “장차 해외 무대에서 사업하려면 무역과 관계된 일을 하게 될 테니 우리 회사에 와서 무역이 뭔지,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한번 보고 가라”고 제안했고, 열흘간 그를 지켜본 뒤 360만 원을 건넸다. 60만 원은 열흘간 출근한 대가, 300만 원은 후원금이었다.

    그의 ‘기업가 정신 세계일주’ 계획이 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다른 많은 이도 힘을 보탰다. 류씨는 “대학생 때부터 명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건네곤 했는데, 명함만 주고받은 뒤 교류 없이 지내던 이들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그분들이 밥을 사주고, 후원금도 줬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1월 류씨는 그렇게 모은 700만 원과 기대, 설렘, 두려움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세계일주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산에 올랐다가 굶주린 들개 10여 마리에게 포위당했던 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5인조 강도를 만나 얼굴을 얻어맞고 카메라와 휴대전화, 돈을 빼앗겼던 일 등을 떠올렸다. 여러 번 맞닥뜨린 죽음의 공포보다 그를 더 힘들게 했던 건 기업인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류씨는 “기업인 10명 중 9명은 내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줬지만 가끔 ‘이렇게 돌아다닌다고 뭐가 달라지나.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분을 만날 때마다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나, 이쯤에서 접어야 하나’ 싶어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무모하고 쓸데없는 짓? 도전과 열정을 만났다”

    ‘기업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세계일주를 떠난 류광현 씨의 여행 모습. 그는 31개국에서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행운을 만났다고 말했다.

    “기업인 키우는 기업인 되고파”

    그럼에도 여행을 계속한 이유는 그를 믿고 지원해준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보츠와나에서 사업하는 김재수 대표는 3박 4일간 류씨와 동행하며 비즈니스 파트너 등 많은 사람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류씨는 “그분이 ‘내가 너한테 해준 건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라. 그 대신 언젠가 너 같은 청년을 만나면 그때 너도 조건 없이 도와줘라. 가장 힘든 순간에 내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거면 되지 않느냐’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아 있다”고 했다.

    김 대표를 만난 것 같은 ‘수많은 행운’을 통해 류씨는 기업인을 둘러싼 환경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성공한 CEO 곁에는 100% 사장을 신뢰하는 직원과 든든한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무엇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 덕에 ‘기업가 정신 세계일주’ 후 그의 꿈은 한층 원대하고 단단해졌다. 류씨는 “애초 구상은 가난한 나라에 기업을 세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거기서 돈을 많이 벌면 농장을 일궈 우리나라의 미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기업인을 키우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들어온 가난한 나라 출신 외국인 중엔 대단한 스펙을 가진 이가 많아요. 그들이 새로운 의식을 갖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되면 제가 사업을 일으켜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구체적인 구상은 없지만 ‘기업인을 키우는 기업인’이 돼 ‘코리안 드림’의 씨를 뿌리고 싶어요.”

    대학생 때부터 명함을 만든 류씨.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명함에는 독특한 그림이 들어 있다. 한쪽 끈이 풀린 해진 운동화 한 켤레와 ‘발걸음’이라는 단어다. ‘젊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발걸음으로 세계를 돌아다닌 기록을 모아 최근 ‘청춘, 판에 박힌 틀을 깨다’(서울문화사)를 펴낸 류씨는 “최고 스펙은 내 이름인 것 같다. 나는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스펙”이라고 했다. 그의 얼굴에서 꿈을 향한 열정과 뚝심, 희망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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