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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삼국지가 울고 있네’

한국의 삼국지 알고 보니 ‘오류 범벅’

한국의 삼국지 알고 보니 ‘오류 범벅’

한국의 삼국지 알고 보니 ‘오류 범벅’
‘삼국지’를 한 번 읽고 말았다는 이는 드물다. 적어도 두세 종의 삼국지를 여러 차례 독파한 후 나름대로 우열을 가려 ‘내가 읽은 삼국지론’을 편다. 그러나 과연 국내에서 출간된 50여종의 삼국지들이 원전의 의미와 맛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을까.

중국 옌볜 출신의 작가 리동혁(李東赫·36)씨는 지난해 2002년 개정판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 전집을 읽고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한다. 중국에서 나온 5종의 ‘삼국지’ 판본들과 대조해보아도 역시 오역이다. 그때부터 연필과 메모지로 표시를 해가며 읽었다. 완독 후 살펴보니 틀린 대목이 무려 900여 군데에 달했다.

‘삼국지가 울고 있네’에서 리씨가 지적한 오류들을 살펴보면 인명이 지명으로 바뀐 경우와 주어를 착각해 내용이 사실과 정반대가 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무리한 해석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문열의 삼국지 4권 59쪽에 나오는 장요와 조조의 대화 장면. 전투에서 패한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하는 조건(한에 항복하지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는다, 유비가 어디 있는지 알기만 하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가겠다)을 제시하자 조조는 망설인다. 이때 장요는 “명공께서는 예(豫), 양(襄) 땅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라며 조조를 설득한다. 이것을 읽고 나면 예, 양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리씨는 ‘豈不聞豫襄衆人國士之論乎’이라는 원문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와 양은 땅 이름이 아니라 ‘예양’이라는 춘추전국시대 자객을 가리킨다. 그는 첫번째 주인 중행씨를 섬기다가 이어 지백의 가신이 되었는데 나중에 지백이 조양자의 손에 망하자 목숨을 걸고 복수에 나선다. 하지만 발각돼 자신도 조양자의 손에 죽게 된다. 예양이 죽기 직전 조양자는 예양에게 이렇게 묻는다. “중행씨가 죽을 때는 네가 그를 위해 죽지 않았다. 한데 왜 지백이 죽으니 그를 위해 죽으려 하느냐?” 그 물음에 예양은 이렇게 답한다. “중행씨는 나를 중인(보통사람)으로 대해주었으니 나도 중인답게 보답하는 것이요, 지백은 나를 국사(특출한 인재)로 대접했으니 나도 국사답게 보답하는 것이로다.” 다시 삼국지 원문으로 돌아가면 “예양의 중인국사론을 듣지 못하셨습니까?”가 올바른 해석이 된다.

오역 없는 역서는 없다지만 잘못 옮겨진 부분이 책 한 권 분량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삼국지가 울고 있네’의 첫 장은 ‘밝히면서 보는 싸움’이다. 삼국지와 같은 군담소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싸움장면을 제대로 옮기려면 고대 중국에서 전쟁에 쓰인 무기와 전략 등을 잘 알아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상상으로만 옮겨놓은 전투장면은 오류투성이다. 그 예로 ‘끼는 창, 차는 칼’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엉터리인가. 리씨는 창을 끼는 것은 중세 유럽 기사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 중국 무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차라리 ‘挺’자를 ‘꼬나들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정확하다.



또 흔히 ‘칼을 찬다’고 하는데 관우의 청룡언월도처럼 자루가 긴 칼을 어떻게 허리에 찰 수 있는가. 이문열의 삼국지에서는 원술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온몸에 번쩍이는 금갑을 두르고 겨드랑이에는 두 벌의 보검을 걸고 있었다.’(3권 176쪽)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겨드랑이에 건다는 표현은 어쩐지 미심쩍다. 리씨는 원문의 ‘腕懸兩刀’를 직역하면 ‘손목에 칼 두 자루를 드리웠다’가 된다고 한다. 칼을 어떻게 드리우나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대 중국사람들의 무기 쓰는 법을 알고 나면 곧 이해가 된다. 당시에는 무기에 술이나 천을 달아 손과 손목에 단단히 감아쥐었다. 격전 도중 무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원술의 경우 술이나 천 대신 칼자루에 달린 고리를 손목에 걸고 있어 손을 드리우면 곧 칼자루를 쥐고 전투태세를 갖추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따끔한 지적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삼국지 역자들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리씨는 서문에서 이 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문열의 삼국지는 나름대로 고치려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황석영의 삼국지는 옛날 판본들의 잘못된 해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대표적인 예로 조표와 장비의 대화장면에서 조표가 한 ‘천계(天戒)’라는 말을 황석영의 삼국지는 ‘하늘에 맹세한 일’로 옮겨놓았지만, 이는 ‘선천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삼국지가 울고 있네’를 읽다 보면 이해하지 못한 채 무심코 넘어간 삼국지의 구절 구절들이 되살아나며 ‘아, 그런 뜻이구나’ 하고 머릿속이 환해진다. 앞으로 리씨의 지적과 해석을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삼국지 마니아들 입장에서는 놓치기 아까운 삼국지 사전이 한 권 생긴 셈이다. ‘삼국지나 한번 써볼까’ 했던 작가들도 지금쯤 그런 생각이 싹 가셨을 것이다.

삼국지가 울고 있네/ 리동혁 지음/ 금토 펴냄/ 342쪽/ 9500원





주간동아 2003.08.28 399호 (p90~91)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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