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0

2015.10.26

못 자는 것도 병인데 홀대받는 수면장애

수면무호흡증, 검사부터 장치 구매까지 수백만 원, 보험 안 돼 방치…수면 중 죽을 수도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10-26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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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자는 것도 병인데 홀대받는 수면장애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당사자는 달라요. 이렇게 자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수면장애 환자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은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가 이들의 문제에 무관심한 사이에도 수면장애로 고통을 겪는 이들은 값비싼 검사비와 치료비가 부담스럽지만 ‘죽는 것보다 낫다’는 심정으로 지갑을 연다. 수면장애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보통은 불면증,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수면무호흡증 및 기타 수면장애 등으로 구분된다. 각각 유발 원인이 달라 치료법 또한 다르다.

    70만 원 넘는 수면다원검사는 보험 비급여 대상

    10월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4년 수면장애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 환자 수는 41만4000명이었다. 2012년 35만8000명에서 5만6000명(15.8%)이나 늘었다. 2012~2014년 인구 10만 명당 ‘수면장애’ 실진료 환자 수의 연평균 증감률은 6.4%(2012년 732명→2014년 829명, 1.1배)였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실진료 환자 수의 연평균 증감률이 9.3%(2012년 495명→2014년 591명, 1.2배)로 가장 높았다.

    청담참튼튼병원 숨이비인후과 수면클리닉의 박동선 원장은 “현대사회로 갈수록 불면증을 조장하는 원인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수면클리닉이 늘고 수면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환자 수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면증은 가장 흔한 수면장애입니다. 그중에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기보다 잠이 오는데도 잠과 싸우며 다른 일을 하느라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이 70% 가까이 됩니다.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불면증이 아니면 수면무호흡증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면장애 치료에는 수술적 방법과 비수술적 방법이 있는데, 환자 상태에 따라 수십여 가지 수술법이 존재한다. 스트레스 등 심리적 원인에 따른 불면증이라면 신경안정제 처방 등으로 증상 완화를 기대할 수 있으나, 수면무호흡증으로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면 수술이나 구강 내 확장장치 사용, 양압기 치료 등이 효과적이다. 특히 수면무호흡증은 심할 경우 부정맥, 심근경색, 뇌졸중 등을 유발해 조기 사망률을 높이기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코골이 교정수술은 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지만, 수면무호흡증 수술은 급여 대상이다. 그러나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으려면 고가의 수면다원검사가 필수인데 이 검사는 비급여 대상이다. 1박2일이 소요되는 수면다원검사의 비용은 개인병원이 70만 원대, 대학병원은 90만 원대다. 검사를 통해 호흡곤란지수(Respiratory Disturbance Index·RDI)가 15 이상이거나, 5 이상이면서 불면증 또는 주간 졸음, 인지기능 감소, 고혈압, 빈혈성 심장질환 등이 있거나, 혈중 산소포화도가 85% 미만일 경우 수면무호흡증으로 확진하는데 이 경우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검사를 통해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았다면 내시경이나 엑스레이, 컴퓨터 단층촬영(CT) 등을 통해 해부학적인 부분을 살펴 어떤 치료 방식을 택할지 결정한다. 수면무호흡증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수술적 방법은 구강 내에 강제적으로 바람을 넣는 양압기와 상기도를 확장해 호흡을 원활하게 해주는 구강 내 확장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3등급 의료기기인 양압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은 제품만 쓸 수 있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200만~300만 원 선에 팔린다. 자동이냐 수동이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고, 여기에 정기적으로 관리비와 부품 교체비가 들어가는데 이 역시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개인이 해외 직접구매를 하는 건 불법이다.

    직장인 김모(46) 씨는 평소 코골이가 심해 잠을 자고 일어나도 제대로 잔 것 같지 않고 입이 늘 말라 있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겪었다. 고심 끝에 수면전문클리닉을 찾았는데,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양압기를 사용하라는 처방을 받아 현재 양압기를 렌트해서 3주째 사용 중이다. 수면다원검사 비용은 65만 원, 압력검사 비용은 57만8000원, 자동 양압기 구매 비용은 275만 원이 들었다.

    못 자는 것도 병인데 홀대받는 수면장애

    수면다원검사는 수면 중 발생하는 여러 비정상적 상태를 진단하는 검사로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양압기 구매비 때문에 법정 다툼까지

    “자기 전 가습기에 물을 채워야 하고 세척 과정 또한 번거롭지만 양압기를 쓰고 나서부터는 수면의 질이 달라진 걸 느낍니다. 입이 마르거나 가슴이 아프던 증상도 사라졌어요. 수면다원검사 결과 최대 38초간 무호흡하는 구간이 있더라고요. 자칫 무호흡이 길어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생명이 걸렸다는 생각에 비싸도 검사를 받고 양압기를 쓰기로 했어요. 외국에서는 검사비나 치료비의 일정 부분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수면장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일부라도 지원해줬으면 합니다.”

    오랫동안 코골이가 심했던 직장인 박모(41) 씨. 40대가 된 뒤로는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피곤하면서 졸린 증세가 지속됐다. 기억력이 떨어져 업무능력이 저하됐고 혈압도 높아졌다. 전문병원에서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혈중 산소포화도가 76%로 매우 낮아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았다. 박씨는 수면다원검사에 70만 원, 양압적정검사에 70만 원을 썼으며, 두 차례 입원했고 검사 후 180만 원에 고정 양압기를 구매해 두 달째 쓰고 있다. 박씨는 “직장에서 가입한 단체보험이 있어 90% 가까이 비용을 돌려받았다. 개인 실비보험이었다면 이 정도로 환급이 수월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에 비해 국내에서는 같은 양압기라도 2~3배 비싸요. 1년마다 교체해야 하는 마스크도 미국에선 7만~8만 원 선인데 국내에선 15만 원씩 받죠. 양압기 제조업체는 무상보증기간을 ‘제조일’로부터 2년이라고 하지만 국내 수입사들은 ‘구매일’로부터 1년으로 잡는 경우가 많아요. 정부에서 수면장애의 중요성을 인식해 모든 검사의 일부 비용을 지원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전액 보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숨수면클리닉 서울본원 이종우 원장은 “수면다원검사가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이다 보니,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도,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불면증 혹은 수면무호흡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수면무호흡증의 경우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수술받는 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증상이 심하다면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비수술적 치료인 양압기를 쓰는 게 효과적입니다. 다만 국내에선 해외처럼 체계적으로 양압기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국내에서 수면다원검사와 양압기 구매 비용 등이 법정 비급여 대상이라 증상이 어지간히 심각하지 않고서는 병원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 검사비가 부담스러워 코골이가 심하다 싶으면 양압기만 구매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자가진단으로 자신에게 양압기가 필요하리라고 예단하는 건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그나마 기댈 곳은 실비보험이지만, 이 경우에도 수면무호흡증이나 과다수면증 등 병명이 판명됐을 때만 심사를 통해 일부 비용을 환급받을 수 있고, 양압기 구매비는 지원받기 쉽지 않다. 기자가 실비보험을 가입한 한 보험회사에 “불면증이 있는 것 같아 수면다원검사를 받고자 하는데 지원이 되느냐”고 문의해봤다. 상담원은 “불면증은 보상청구 대상에서 제외되고, 병원에서 다른 진단명이 나오거나 질병코드가 나오면 그때 다시 문의해달라. 서류접수하고 심사를 받아봐야 보험금 지급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으며, 양압기 구매비 지원에 대해서도 “일단 수면다원검사 결과가 나온 후 질병코드를 갖고 다시 상담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삼성화재해상보험과 양압기 구매자 간 법정싸움에서 대법원은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삼성화재해상보험은 양압기 구매자가 보험사에 구매비 195만 원을 청구하자 “양압기 구매비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절했는데, 대법원은 “수면무호흡증 환자가 입원 기간 중 의사 처방에 따라 양압기를 구매했더라도 입원 중이 아닌 퇴원 후 사용할 목적으로 구매했다면 입원비에 해당하지 않아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해당 판결은 모든 양압기 사용자에게 해당되지는 않으며, 조건만 맞는다면 보험사로부터 양압기 구매 비용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수면다원검사 보험 급여 처리 지지부진

    못 자는 것도 병인데 홀대받는 수면장애

    수면다원검사 후 수면무호흡증으로 판명된다면 수술을 받거나 양압적정검사 후 양압기 착용을 하게 된다.

    양압기 대중화를 목표로 중·저가 양압기를 수입 및 판매하는 세민수면건강센터의 홍욱희 대표는 “국내에선 양압기가 너무 비싸 대중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양압기는 2~3개월 사용하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판매 외에도 사용자에게 철저한 양압기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중증 코골이 환자를 위해 수면무호흡증 진단비와 사회취약계층의 양압기 구매 비용 일부 등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일본은 국가가 전액 지원해줘 렌털비만 내지만 우리는 제도적인 부분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003년 시속 270km로 달리던 신칸센이 운전자의 수면장애로 인한 졸음운전 때문에 정거장을 100m나 지나친 사건 이후 수면장애의 심각성이 대두됐고, 이후 수면다원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현재 정부의 지원 덕에 고가의 양압기를 구매해 쓰는 사람보다 정기적으로 10만~15만 원의 관리비를 내고 렌트해서 쓰는 인구가 많다.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장 신철 교수는 “미국과 일본, 심지어 대만에서도 수면다원검사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처리해준다. 양압기 렌털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미국 뉴저지 주에서는 졸음운전을 하면 경찰에 수면 관련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는 증명서를 내야만 운전 허가를 내줄 정도로 엄중히 다스린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졸음운전 사고가 나도 원인을 파악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개인 과실로만 여기니 문제다. 또한 4대 중증질환 발병률 감소를 위해서라도 수면장애는 반드시 정부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는 수면장애와 그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면다원검사와 치료비 등에 국민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정부도 수면다원검사를 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었으나, 1년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한 관계자는 “어떤 항목에 대해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한다고 하면 가격 외에도 어디까지 적용할지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수면장애를 다루는 병원 내 과가 여러 개이다 보니 합의 도출 과정에서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담당하는데, 아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에 대한 의견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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