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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보전쟁의 치명적 무기, 미인계

러시아 미녀 스파이 사건으로 美 워싱턴 발칵

정보전쟁의 치명적 무기, 미인계

정보전쟁에서 ‘미인계(美人計)’는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수법이다. 영어로는 ‘허니 트랩(honey trap)’이라고 한다. 미녀 스파이의 활동은 인구에 늘 회자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대표적 사례로 중국 영화 ‘색, 계(色, 戒)’의 실제 인물이던 옛 중화민국의 미녀 스파이 정핑루(鄭平如·1918~40)를 들 수 있다. 정핑루는 일본이 1930년대 상하이를 점령했을 당시 사교계의 꽃으로 불린 여성이다. 일본 외교관들을 상대로 고급정보를 수집하던 정은 친일 괴뢰정부 정보기관의 책임자 딩모춘에게 접근해 그를 암살하려다 적발, 처형됐다. 미인계는 손자병법 36계 중 31계로 언급될 만큼 그 중요성이 강조돼왔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국가 가운데 미인계를 가장 잘 활용해왔다는 말을 듣고 있다.


손자병법 36계 중 31계가 미인계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여성 마리야 부티나가 기관단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부티나 페이스북]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여성 마리야 부티나가 기관단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부티나 페이스북]

최근 한 러시아 여성이 미국 정계에 침투해 스파이 활동을 해온 혐의로 구속되자 워싱턴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 여성이 미국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했는지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러시아 정보기관은 과거부터 중국 정보기관에 버금갈 정도로 미인계를 잘 활용해왔다. 실제로 러시아 전신인 옛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냉전시대에 걸쳐 미인계를 이용해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가장 유명한 소련 여성 스파이 가운데 한 명은 독일에서 여배우로 위장해 활동했던 올가 체코바였다. 체코바는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당대 최고 여배우라는 말까지 들은 미모의 체코바가 스파이가 된 이유는 희귀병을 앓는 딸 때문이었다. 소련 정보기관은 체코바에게 딸을 치료해줄 테니 히틀러한테 접근해 정보를 빼내오라고 했다. 히틀러는 부모가 게르만족인 체코바를 신뢰했고, 체코바는 히틀러가 준비 중이던 쿠르스크 전투 계획을 소련에 알렸다. 나치 독일은 체코바의 정보에 따라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춘 소련에게 대패했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체코바는 소련으로 돌아갔고, 히틀러는 죽는 순간까지 체코바가 소련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미국의 세계적인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애인도 소련 스파이였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변호사 마르가리타 코넨코바로 위장한 이 여성은 미국의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 기밀을 빼내려고 아인슈타인에게 접근했다. 소련 조각가인 남편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코넨코바는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아인슈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애인이 됐다. 아인슈타인은 코넨코바가 소련 스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하지 않았다. 10년간 관계를 유지한 아인슈타인은 코넨코바가 소련으로 돌아가게 되자 이별의 편지와 함께 시계를 선물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98년 공개된 아인슈타인의 편지로 알려지게 됐다. 코넨코바의 암호명은 루카스였다. 


애나 채프먼이 패션잡지 ‘맥심’의 러시아판 표지 모델로 나온 모습.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녀 스파이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올가 체코바(왼쪽부터). [Film Foto Verlag]

애나 채프먼이 패션잡지 ‘맥심’의 러시아판 표지 모델로 나온 모습.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녀 스파이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올가 체코바(왼쪽부터). [Film Foto Verlag]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녀 스파이로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를 들 수 있다. 카티아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자툴리베테르는 2006년 영국 자민당 마이크 행콕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에 있는 영국 해군기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러시아 정보기관에 넘겼다. 자툴리베테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를 졸업한 후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에 들어가 스파이 활동을 위한 훈련을 오랫동안 받았다. 그리고 행콕 의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무실 인턴을 거쳐 보좌관 자리를 꿰찼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런던 지부장으로 일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올레그 고디브스키는 자툴리베테르가 지난 30여 년간 소련과 러시아의 모든 스파이 가운데 최고이자 가장 효율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펼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 국내정보국(MI5)은 2008년 체포한 자툴리베테르를 러시아로 추방했다. 

FBI가 7월 15일 외국 정부의 불법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체포한 러시아 여성 마리야 부티나(29)는 자툴리베테르와 비슷한 유형의 스파이라고 볼 수 있다. 부티나는 시베리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2011년 러시아에서 총기 소지 옹호를 주장하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 고위 관료이자 억만장자인 알렉산데르 토르신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토르신은 러시아 정부의 해외 불법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올해 4월 미국이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2016년 유학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부티나는 지난해 5월 워싱턴 DC의 아메리칸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티나는 총기 소지 옹호 단체에서 활동하며 친분을 맺은 미국 최대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와 공화당 정치 후원 단체인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인사들을 포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도와준 NRA 회원이자 공화당 전략분석가인 폴 에릭슨(56)과 동거했다. 에릭슨은 부티나를 도와 2016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릭 디어본 전 백악관 비서실 차장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NRA 총회 때 트럼프 후보와 푸틴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하자’는 e메일을 보냈다. NRA 총회에서 트럼프와 푸틴 회동은 불발됐지만 당시 부티나는 토르신과 함께 트럼프 대선후보의 장남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있기도 했다. 부티나는 또 다른 미국 정계 인사를 통해 미국 정치권 유력 인사들과 러시아 정부 인사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런 행적들은 FBI가 부티나의 노트북컴퓨터를 압수해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FBI는 부티나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의 연락처 등을 찾아냈다.


뉴욕의 팜파탈, 애나 채프먼

FBI가 과거 체포한 러시아 스파이 중에는 영화 ‘007시리즈’에 나오는 ‘본드걸’만큼 미모가 뛰어난 여성도 있었다. 2010년 체포된 애나 채프먼은 온라인 부동산회사 최고경영자(CEO)로 신분을 위장했다. 채프먼은 밤에는 각종 파티는 물론이고 레스토랑과 고급 클럽을 드나들며 뉴욕 사교계의 거물로 활동하면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미국 언론들은 붉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의 채프먼을 ‘뉴욕의 팜파탈(치명적 매력의 요부)’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채프먼은 러시아 볼고그라드 출신으로 본명은 안나 쿠스첸코였다. 모스크바 러시아인민우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 여성은 스파이 교육을 받은 뒤 2002년 러시아에서 심리치료사 과정을 수습 중이던 영국인 알렉스 채프먼을 만나 결혼해 영국에서 살다 2006년 이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채프먼은 2010년 러시아 스파이 9명과 함께 체포됐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 정부 간 스파이 맞교환 방식으로 미국에서 추방돼 러시아로 돌아갔다. 

스파이는 매춘에 이어 두 번째로 인류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온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스파이가 수집한 정보는 한 국가의 운명이나 국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도 미인계는 스파이 세계에서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주간동아 2018.07.31 1149호 (p58~59)

  •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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