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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패럴림픽 특집

“컬링으로 되찾은 삶, 장애 비관만 하고 살기엔 인생이 아까워”

휠체어컬링 ‘홍일점’ 방민자 선수

“컬링으로 되찾은 삶, 장애 비관만 하고 살기엔 인생이 아까워”

휠체어컬링 리드 포지션의 방민자 선수가 투구하고 있다.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도록 동료 선수가 뒤에서 잡아주는 게 원칙이다. [지호영 기자]

휠체어컬링 리드 포지션의 방민자 선수가 투구하고 있다.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도록 동료 선수가 뒤에서 잡아주는 게 원칙이다. [지호영 기자]

이틀 전 내린 함박눈이 응달에선 하얀 솜이불처럼 덮여 있던 12월 19일, 경기 이천시 신둔면에 위치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을 찾았다. 이곳에는 2017년 1월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장애인 전용 컬링 훈련장이 있다. 2018년 3월 9일부터 18일까지 펼쳐지는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에 출전하는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이날도 훈련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훈련장 내 전광판에는 ‘D-80’이라고 적혀 있었다.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서순석(스킵), 정승원(서드), 차재관(세컨드), 방민자(리드), 이동하(서드) 선수로 구성됐다. 휠체어컬링은 팀당 선수 4명과 후보선수 1명, 그리고 반드시 혼성으로 팀을 이뤄야 한다. 

2010 밴쿠버동계패럴림픽에서 역대 첫 단체종목 은메달을 획득한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8년 만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패럴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하며 훈련에 임하고 있다. 2017년 7월에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강 캐나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9월에는 10개국 대표팀을 포함한 총 12개 팀과 각축을 벌인 끝에 4강에 올랐다. 현재 한국 휠체어컬링은 세계 4위를 기록 중이며, 평창패럴림픽에는 총 12팀이 참가한다. 

2015년부터 휠체어컬링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방민자(55·서울시청) 선수는 팀 내 홍일점이자 ‘리드’로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리드는 가장 먼저 스톤을 투구한다. 이날 훈련에서도 방 선수는 팀원들의 투구 속도를 확인하느라 노란색 초시계를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패럴림픽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동안 수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덕분에 노련한 경기 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처음 컬링을 시작할 때부터 패럴림픽 출전을 꿈꿔왔기 때문에 이번에 정말 잘해내고 싶어요.(웃음) 세계선수권대회와 비교하면 패럴림픽은 중압감 자체가 다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팀원들과 함께 수시로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가자’고 다짐해요. 그동안 외국 대표팀 선수들과 여러 번 경기를 해봤기 때문에 경기 자체에 대한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아요. 다만 국내 대회인 만큼 관중석 반응에 따라 선수들의 컨디션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좀 걱정돼요. 3월 테스트이벤트 때도 관중석에서 야유와 욕설이 들려와 순간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경험이 있거든요. 본 경기 때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훈련 중이에요.”


첫 투구에 적합한 기량 지녀

최강의 팀워크를 자랑하는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 앞줄 왼쪽부터 차재관, 정승원, 방민자, 서순석, 이동하 선수. 뒷줄 왼쪽부터 백종철 감독, 황봉경 코치. [지호영 기자]

최강의 팀워크를 자랑하는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 앞줄 왼쪽부터 차재관, 정승원, 방민자, 서순석, 이동하 선수. 뒷줄 왼쪽부터 백종철 감독, 황봉경 코치. [지호영 기자]

방 선수의 기량은 독보적이다. 여자선수 가운데 그처럼 ‘호그 투 호그’(Hog to Hog·스톤 속도를 측정하는 시작점과 끝점) 속도가 9초대를 기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백종철 휠체어컬링 감독은 방 선수에 대해 “빠른 스피드와 섬세한 기술이 리드에 매우 적합하다”고 평한다. 첫 투구가 잘못되면 나머지 투구로도 극복하기 어려운데, 방 선수는 차분한 성격으로 경기 중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웨이트를 선보인다고 한다. 또한 누나 같은 포용력으로 선수들을 잘 다독여 팀워크도 남다르다. 특히 컬링은 경기할 때 선수들끼리 끊임없이 대화하며 스톤의 방향과 속도를 함께 결정해야 하는 만큼 협동심이 매우 중요하다. 

방 선수는 “2~3년간 함께 운동한 덕분에 경기에서 뭐가 중요한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컬링이란 게 혼자 잘한다고 되는 운동이 아니다. 그래서 함께 생활하다 서운한 일이 생기면 바로 대화로 푼다. 또 한 선수가 투구할 때 뒤에서 휠체어를 붙잡아주는 선수가 끊임없이 ‘잘돼라’고 기운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에 팀워크가 나쁠 수가 없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패럴림픽에 대한 중압감을 벗어던지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패럴림픽 경기가 펼쳐지는 강원 강릉컬링센터와 이천훈련원을 오가며 연습 중이다. 2005년 11월 대한장애인체육회 출범 당시 열악한 지원에 허덕이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은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2017년 이천훈련원이 생기기 전까지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서울 태릉선수촌과 민간시설 등을 옮겨 다니며 연습해야 했다. 심지어 2010 밴쿠버동계패럴림픽 때는 이천훈련원 수영장을 얼린 뒤 아이스매트를 깔고 연습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는 평창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이천훈련원에 컬링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2017년 1월 드디어 휠체어컬링 전용 컬링장이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이 컬링장은 4개 경기 시트(레인)로 구성돼 있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는 국가대표팀과 강원 춘천시의 한 고교 컬링부가 시트를 나눠 이용 중이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국가대표팀이 전체 시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이천훈련원 측에서 배려해주고 있어요. 낮에는 1개 시트에서 팀을 나눠 연습하고 저녁에는 개인 기량 훈련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아요. 패럴림픽이 펼쳐질 경기장과 거의 유사한 조건에서 연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팀워크로 중압감 이긴다

“컬링으로 되찾은 삶, 장애 비관만 하고 살기엔 인생이 아까워”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코치 2명과 트레이너 1명, 전력분석관 1명, 스포츠심리학 박사인 멘탈 코치, 팀 매니저까지 총 7명의 스태프가 감독과 함께 움직인다. 멘탈 코칭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데, 이를 통해 선수 간 거리감, 또 코칭스태프와 협회 간 거리감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한 2017년 새로 도입된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덕분에 기술 훈련 및 전술 분석이 용이해졌다. 

대표적으로 카메라 및 와이파이(Wi-Fi) 기기가 탑재된 기문(스톤이 통과하는 문)과 스마트 글라스를 들 수 있다. 휠체어컬링은 손으로 스톤을 미는 일반 컬링과 달리 ‘익스텐디드 큐(extended que)’라 부르는 장대를 사용해 투구한다. 그래서 투구 속도와 방향 조절이 더욱 어렵다. 이번에 개발된 장비는 기문 간격을 3·6·9·12cm로 조절해 투구 정확도를 높이고, 레이저 모듈과 발판 센서는 스톤이 호그를 출발해 건너 쪽 호그에 도착하는 시간을 측정해준다. 

또한 스마트 글라스는 스톤의 이동 시간과 방향 확인에 요긴하다. 스톤이 센서를 통과한 시간을 1000분의 1초까지 감지하고 센서를 통과할 때 거리를 0.5cm까지 측정해낸다. 투구가 안쪽으로 감아 도는지(in-turn), 바깥쪽으로 도는지(out-turn) 궤적도 파악할 수 있다. 태블릿PC와 휴대전화를 통해 코칭스태프와 스킵(주장) 등이 확인한다. 

“처음에는 기술 장비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계속 사용하다 보니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특히 연습 중에도 긴장감이 느껴져 경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몇 년 전만 해도 코치들이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영상을 촬영했지만 지금은 훈련장에 설치된 카메라 가운데 전략분석관이 보고 싶은 위치에 있는 카메라의 버튼만 눌러 선택해서 볼 수 있으니 한결 편하죠.”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웨이트 트레이닝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운동 강도가 너무 세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운동할수록 체력이 좋아지는 걸 선수들 스스로 체감하면서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방 선수는 “턱걸이, 달리기 등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힘든 과정을 다 거치고 나니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일 수 있게 됐고, 경기력도 달라진 걸 느꼈다. 체력이 약하면 경기 도중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술 연마 못지않게 중요한 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 받아들이기까지 10년 걸려

3월 4일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7 세계 휠체어컬링 챔피언십’에서 각국 대표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왼쪽). 투구 중인 서순석 선수는 팀원 중 유일하게 패럴림픽(2014 소치대회) 참가 경험이 있다. [동아DB, 지호영 기자]

3월 4일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7 세계 휠체어컬링 챔피언십’에서 각국 대표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왼쪽). 투구 중인 서순석 선수는 팀원 중 유일하게 패럴림픽(2014 소치대회) 참가 경험이 있다. [동아DB, 지호영 기자]

평범한 직장인으로 소박한 삶을 살던 그에게 처음 장애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1993년 여름이었다. 당시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간 그는 서울로 돌아오던 중 양수리 인근에서 차량 전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평온하던 일상은 한순간 산산조각 났고,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와 결혼도 물거품이 됐다. 

“사고 전까지는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어요. 이렇게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사고가 난 지 벌써 25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그때의 고통과 충격이 바로 눈앞에, 그것도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처음에는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가족을 많이 힘들게 했죠. 심지어 대소변줄을 거부하다 콩팥 한 쪽에 이상이 생기기까지 했어요. 그때 치료받으러 병원에 다니면서 다시 세상과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했는데, 그러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어요.” 

동생의 권유로 장애인복지관에 다니면서 십자수, 비즈공예 등 취미활동을 이어가던 방 선수는 어느 날 복지관 동료로부터 ‘론볼(lawn bowling)’을 권유받고 처음 운동을 접했다. 론볼은 잔디에서 공을 굴리는 스포츠로, 표적구인 ‘잭’을 먼저 굴려놓고 공을 근접케 해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처음 시범경기로 채택됐고, 1988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를 계기로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등에서 정식 경기가 됐다. 

“처음 론볼을 접했을 때 느낀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잔디밭에서 공을 굴리느라 하루 종일 휠체어를 타고 달렸는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게 정말 신나더라고요. ‘이런 세계가 다 있구나’ 싶었죠. 그날 바로 론볼을 하기로 하고, 운 좋게 국가대표 타이틀도 얻었죠. 운동으로 또 다른 삶을 살게 된 거예요.” 

3년 정도 론볼 선수로 활약한 그는 2004년 겨울 처음 컬링을 접했다. 태릉선수촌에 있는 컬링훈련장을 찾았다 스톤끼리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에 매료돼 그 자리에서 컬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방 선수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이거다’ 싶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동안 론볼과 컬링을 병행하던 방 선수는 론볼 국가대표 합숙과 컬링대회가 겹치면서 하계 종목을 포기하고 동계 종목인 컬링으로 마음을 굳혔다. 2018 평창패럴림픽 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셋. 하지만 열정만큼은 여느 젊은 선수들 못지않았다.


그토록 바랐던 패럴림픽, “메달 꼭 딴다”

휠체어컬링은 선수 개인의 기량 못지않게 팀워크가 중요한 운동이다. [지호영 기자]

휠체어컬링은 선수 개인의 기량 못지않게 팀워크가 중요한 운동이다. [지호영 기자]

컬링에 입문한 지 4년 만인 2009년 그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 뽑혀 미국 유티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올랐고, 2015년 스위스 대회 1위, 2016년 핀란드 대회 1위, 2016년 US오픈 1위, 2017년 미국 케이캅 1위 등 국제대회에서 마음껏 기량을 뽐냈다. 2016년 9월 서울시가 장애인·비장애인 컬링팀을 동시에 창단한 덕분에 방 선수도 실업팀에 소속돼 운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휠체어컬링 실업팀은 서울과 인천시에서만 운영 중이다. 

“저에게 이런 운동감각이 있는 줄 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스포츠를 접하면서 또 다른 인생의 빛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은 장애를 거의 잊고 살 만큼 운동에 심취해 있어요. 지금의 제 모습이 그냥 좋아요.(웃음)” 

장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그를 보며 함께 기뻐해 주는 이들은 단연 가족이다. 특히 연로한 어머니는 날마다 경로당에서 딸 자랑에 여념이 없다고. 방 선수는 “한때는 아픈 딸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했을 테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번 패럴림픽에서 꼭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서울 노원구에서 막내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에는 국가대표팀 훈련과 해외 전지훈련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가끔 쉬는 날에는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수다도 떨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동생이 제가 좋아하는 식혜와 조기조림을 만들어줘 맛있게 먹고 왔어요.(웃음) 가족이 없었다면 그 힘들던 시간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를 처음 복지관으로 안내했던 것도 동생이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통해 용기도 얻을 수 있었죠. 컬링선수로 사는 지금의 삶은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그리고 저를 응원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방 선수는 신체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운동을 적극 권한다. 그는 “장애인으로만 살아가기에는 인생이 아깝다”며 “하루빨리 밖으로 나와 스포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장애로 인한 마음의 벽을 허물어 버리라”고 조언한다. 

현재 그의 인생 목표는 오로지 운동에 맞춰져 있다. “평창패럴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겠다”는 그의 다짐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주간동아 2017.12.27 1119호 (p26~30)

  • 이천=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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