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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카슈끄지의 유령’ 사우디를 어디까지 흔들까

사우디 왕세자의 국가운영 역량 도마에 올라

‘카슈끄지의 유령’ 사우디를 어디까지 흔들까

[shutterstock+자말 카슈끄지 인스타그램]

[shutterstock+자말 카슈끄지 인스타그램]

“사우디아라비아에게선 여전히 ‘정상 국가’ 혹은 ‘지역의 중심 국가’에 어울리는 모습이 안 보인다.” 

사우디 당국이 자국에 비판적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10월 2일(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동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반응이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왕세자가 여성의 운전 허용과 탈석유 경제개발 정책 같은 파격적 조치로 ‘개혁의 아이콘’인 양 부각됐지만, 이슬람 종주국을 이끌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오히려 최근 사우디의 국가운영이 더욱 폐쇄적이고 극단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타르의 인문·사회과학계열 대학원대학인 도하인스티튜트(DI)의 칼릴 알 아나니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카슈끄지 사건을 계기로 최근 사우디가 일으킨 문제들이 한꺼번에 부상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의 국가운영 방식과 역량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카슈끄지 살해로 MbS가 실권을 장악한 이후 사우디의 반대파 숙청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살해 방식이 잔혹할 뿐, 사우디가 자국에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얼마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수십 명의 사우디 내 최고위급 인사를 부정부패 등 혐의로 체포해 호텔에 감금한 이른바 ‘리츠칼튼 사태’와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를 억류했던 일이 재조명되고 있다. 

리츠칼튼 사태는 국제적 사업가이자 억만장자인 알 왈리드 빈 탈랄(63) 왕자 등 MbS에 비판적이거나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고위 인사들을 겨냥한 일종의 ‘숙청 조치’였다. 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충성 서약을 하고 상당 부분의 재산을 국가에 강제 헌납한 뒤에야 풀려났다.


극단적 방식의 반대파 숙청

지난해 11월 사우디를 방문했다 억류된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 정부의 압박에 의해 현지에서 “헤즈볼라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며 사퇴 성명을 발표했다. 레바논의 친이란 성향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에 강경 대응하지 못하고 협력을 모색했다는 괘씸죄로 일국의 총리를 강압해 벌인 일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재로 하리리 총리가 겨우 풀려나 해프닝에 그치긴 했지만 국제사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한 중동 전문가는 “다른 나라의 총리도 마음에 안 들면 억류하고 협박할 정도로 인권 의식이 낮고 무자비하다는 것을 카슈끄지가 잠시 잊었던 것 같다”며 사우디의 반정부 인사 대응 방식을 비꼬았다. 

MbS가 주도한 사우디 외교 행보도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터키와 이란에 비해 전략이나 성과가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사우디가 적대시하는 카타르, 무슬림형제단(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단체로 왕정에 비판적)과 우호적 관계인 터키는 카슈끄지 살해사건을 통해 MbS의 약점을 제대로 잡았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도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를 압도하고 있다. 이란은 군사력은 물론이고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십수년 동안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구축 중이다. 

반면, 사우디는 MbS가 국방장관이던 2015년 야심차게 주도한 ‘예멘 내전’ 개입에서도 별다른 성과 없이 정치적·경제적 부담만 키우고 있다.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군은 시아파 계열의 후티 반군과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이 후티 반군의 이란에 대한 의존도만 더욱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사우디 공군 조종사들의 ‘실력 부족’으로 자주 발생하는 민간인 오폭도 예멘 민심을 이란으로 기울게 만들고 있다. 졸탄 바라니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란은 사우디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예멘에서 영향력을 확보했다”며 “시간이 갈수록 사우디의 부담만 커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경제와 문화, 즉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도 성과는 초라하다. 총 5000억 달러(약 569조 원)를 투자해 서울 면적의 약 44배에 이르는 첨단 미래형 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네옴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이후 특별한 진전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로 불리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증시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 역시 8월 말 무기한 연기됐다. 이를 두고 경제개발과 산업구조 변화라는 목적을 지녔던 계획이 오히려 정책의 예측 가능성만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왕세자 교체설까지 등장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가 10월 23일 리야드 야맘마궁에서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이 배포한 이 사진을 놓고 ‘잔인한 악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AP=뉴시스]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가 10월 23일 리야드 야맘마궁에서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이 배포한 이 사진을 놓고 ‘잔인한 악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AP=뉴시스]

카슈끄지 살해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MbS는 도덕성과 국가운영 역량을 동시에 의심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왕세자가 된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일각에선 ‘왕세자 교체’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MbS의 아버지인 살만 국왕의 친동생으로 ‘반MbS’ 성향인 아흐마드(76) 전 사우디 내무장관이 사실상 영국 망명 생활을 접고 10월 30일 귀국했다. 또 11월 3일엔 리츠칼튼 사태 때 부패 혐의로 체포됐던 칼라드 빈 탈랄(56) 왕자가 석방됐다. 칼라드는 알 왈리드의 동생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체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결정은 살만 국왕만 내릴 수 있는데 그동안 왕위를 형제에게 물려주던 전통을 깨고 친자 상속으로 돌아선 장본인으로서 이를 번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우디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 역시 이란 견제와 무기 수출 같은 ‘중요한 거래’가 걸린 전략적 파트너인 사우디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 눈치다. 더구나 MbS는 ‘백악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막역한 사이로 이란 견제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터키 역시 경제난 극복을 위해 ‘큰손’인 사우디와 계속 척을 질 순 없고, 미국 눈치도 봐야 한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선 터키와 사우디가 물밑 협상을 통해 적당히 합의점을 찾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사우디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알 아나니 교수는 “터키는 평소 자국을 견제해온 MbS와 사우디에 불만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판돈을 키우려 할 것”이라며 “터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해 MbS에 치명적인 증거들이 공개될 경우 사우디와 MbS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8.11.09 1163호 (p50~51)

  • | 도하 =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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