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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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울수록 커가는 ‘행복 갈증’

대한민국 유난히 낮은 행복지수…그래도 우린 또 다른 행복 꿈꾼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12-27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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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울수록 커가는 ‘행복 갈증’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집이 언제 팔릴까요?’예요. ‘지금 내놓아도 되느냐’ ‘전세를 놓는 게 좋으냐, 파는 게 좋으냐’ 등등 묻는 말은 달라도 듣다 보면 집 한 채 가진 서민이 불안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느껴지죠. 정말 경기가 안 좋구나 싶습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역술원 ‘통’을 운영하는 이철용 한국역술인협회 고문의 말이다. 1970~80년대 빈민운동을 하다 13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외환위기 이후 역술가로 변신한 그는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왔지만, 요즘처럼 하나같이 ‘돈 걱정’을 하는 때는 처음”이라며 “특히 ‘어떻게 돈을 벌까’보다 ‘어떻게 하면 손해보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지금 사는 정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했다.

    영화 ‘관상’ 시나리오를 감수한 관상가 김용남 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조그만 카페 하나 시작하려고 하는데 잘 될까요?”라는 것이다. 그는 “업종은 하나같이 카페고, 다들 ‘조그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며 “예전에는 건강운이나 학업운, 출세운을 궁금해하는 이도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다들 ‘먹고살 수는 있겠느냐’부터 묻는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한 역술원에서 만난 김모 씨도 “아파트를 팔아 조그만 가게라도 해볼까 싶은데 어떨지” 물으러 찾아왔다고 했다. 2009년 경기 남양주시의 112㎡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김씨는 “호재가 많다기에 ‘머지않아 크게 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집값이 계속 떨어져 지금은 분양가에서 3000만 원쯤 빠진 상태다. 거래도 거의 안 된다. 급매로라도 팔고 그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좀 더 두고 봐야 할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2013년 12월 18일 발표한 ‘한국사회의 안전과 위협’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이런 세태를 잘 보여준다. 응답자들의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소가 ‘경제생활’로 나타난 것. 마음의 불안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0, 극도의 불안과 위험을 느끼는 상태를 100이라고 할 때 현재 우리 국민의 ‘경제생활’ 위험지수는 40.21이었다. 반면 ‘정치 및 대외관계’, 즉 북한의 위협이나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등에 의해 위험을 느끼는 지수는 35.94로 오히려 낮았다. 응답자들은 ‘경제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이유로 ‘경기침체 및 저성장’ ‘주택 및 전셋값 불안’ ‘실업 및 빈곤’ 등을 꼽았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서민들

    게다가 우리 국민은 자신이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다고도 판단한다. 통계청이 2013년 12월 4일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 응답자의 46.7%는 현재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답했다. 이는 통계청이 관련 조사를 시작한 1988년 이후 사상 최고치로, 자신을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009년 42.4%, 2011년 45.3% 등 최근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응답자의 59.8%는 고용 불안도 호소했다. 연령별로는 30대(65.1%)가, 종사자별 지위로는 임금근로자(64.5%)가 가장 많이 고용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청년층(13~29세)의 직업 선호도는 공무원(28.6%), 대기업(21.0%), 공기업(17.7%) 순으로 조사됐다. 자영업은 8.5%,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각각 2%대에 그쳤다. 이에 대해 관상가 김용남 씨는 “요새는 ‘횡재’나 ‘대박’을 바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직업운을 물을 때도 ‘승진하겠느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자녀 대학 학과를 정할 때도 ‘거기 가면 취업에 유리하냐’고 묻는 식”이라고 밝혔다.

    불안한 이들은 성형외과 문도 두드린다. 요즘 서울 강남 성형외과 타운에서는 비뚤어진 코를 바로잡거나, 콧구멍이 정면에서 보이지 않도록 모양을 고쳐 돈을 모으게 해준다는 이른바 ‘관상성형’이 성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금성형’에 대한 관심도 높다. 서울 아이미리벨로 성형외과 엄윤희 실장은 “많을 때는 하루에 서너 명씩 손금성형수술을 한다. 40~50대 자영업자나 영업 관련 직종 종사자가 주로 병원을 찾는다”고 밝혔다. 보통 세로 손금 중 재물선을 길고 뚜렷하게 해달라고 주문하지만, 종종 역술인의 조언을 받아 손바닥 위에 손금을 그려온 뒤 그대로 만들어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철용 고문은 “요즘 역술원을 찾는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돈’”이라며 “돈을 행복의 제1 요소로 여기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듯 보인다”고 했다.

    신경정신의학과 쪽에서는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열등감, 사회적 압박감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박성종 ‘제너럴 닥터’ 의사는 “내가 남보다 뒤처지는 게 아닐까,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 병원을 찾는 이가 많다”며 “특히 다른 사람 눈에 좋게 보이는 게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음의 병을 앓다가 병원을 찾은 이가 바라는 건 사회가 정해준 방향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안 단국대 교수는 최근 펴낸 책 ‘행복 저글링’에서 ‘인생이란 일, 돈, 건강, 관계, 자아라는 다섯 개의 공을 갖고 하는 저글링’이라고 했다. 이 다섯 개 공을 잘 던지고 받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점집과 병원을 찾는 이들은 상당 부분 이 균형이 깨져 있는 셈이다.

    채울수록 커가는 ‘행복 갈증’

    2013년 12월 26일 서울 도선사에서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



    균형 잃은 삶 마음의 병

    채울수록 커가는 ‘행복 갈증’
    각종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글로벌리서치 전문기업 입소스(Ipsos Global Public Affairs)가 2011년 말 세계 24개국 1만8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23위로, 꼴찌 헝가리에 이어 조사 대상 중 두 번째로 국민 행복도가 낮은 나라로 나타났다. 당시 설문 문항은 ‘모든 조건을 고려할 때 당신은 ‘아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이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은 7%에 불과했다. 반면 1위 인도네시아는 51%, 2위 인도와 멕시코는 응답자 43%가 ‘매우 행복하다’고 답했다.

    다른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2012년 세계 148개국 15세 이상 국민 1000명씩을 뽑아 조사한 행복도 조사에서 97위, 2013년 9월 유엔이 발표한 ‘2013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조사 대상 156개 국가 중 4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행복 순위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매우 낮게 나오는 점에 주목한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가 이룬 엄청난 성과에도 한국인은 과거에 비해,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 국민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도덕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의 말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12년 한국의 투명성이 세계 45위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탈세율은 그리스나 스페인 수준이고, 보험사기 등 각종 부정행위도 빈발한다. 최근 불거진 원자력발전소 비리는 한국인뿐 아니라 주변국 국민과 먼 후손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비도덕적인 행동이 만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인 한국인의 특성상, 페어플레이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가 매우 크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신흥경제국이 대부분 경제력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진다”며 “이는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고 사적인 생활보다 공적인 구실을 강조하는 이들 국가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대학에 다니고, 몇 m2짜리 아파트에 사느냐보다, 마음 통하는 친구가 몇 명 있고, 그들과 얼마나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돼야 구성원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서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행복의 조건으로 “세상이 정한 잣대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지 말고 행복의 잣대를 스스로 설계할 것,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맺을 것”을 꼽았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런 삶을 꿈꾼다. 모바일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와 코카콜라가 2013년 11월 우리나라 10∼3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젊은이가 새해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잘될 거야’(19.0%)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해’(12.0%), ‘응원할게’(10.8%)가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잘될 거야’를 듣고 싶은 비율 또한 높아졌다는 점. 10대 16.7%, 20대 19.9%, 30대 20.5%가 각각 새해 첫날 ‘잘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응답했다. 나이가 들수록 취업 등 사회적 요구는 높아지고, 이를 충족하기는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잘될 거야’라는 ‘따듯한 위로’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매년 세밑이면 신도들 소원을 받아 경내에 ‘새해맞이 소망등’을 다는 서울 도선사 기획실장 미등 스님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가장 많이 접수되는 소망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라며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밝혔다. 세계 50개국 100여 명 학자가 집필한 ‘행복’에 대한 정의를 모은 책 ‘세상 모든 행복’에서 긍정심리학자 크리스토퍼 패터슨은 ‘힘든 업무를 견디게 하는 것도,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는 것도 모두 사람이다. 친구, 이웃, 동료, 가족, 배우자와 관계를 유지하면 멋진 인생, 행복한 삶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했다. 2014년 ‘행복’을 꿈꾸는 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채울수록 커가는 ‘행복 갈증’

    연말연시를 맞아 서울 도선사에 걸려 있는 ‘새해맞이 소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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