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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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병원 진료기록 공개 늦는 이유 알고 보니…

의료과실 숨기려 환자 기록 조작·은폐 의혹…법상 고의성 밝히기 어려워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3-25 16: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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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지역에 사는 N(29) 씨는 2월 말 병원에서 숨졌다. 평소 건강하던 N씨는 직장 동료들과 워크숍을 떠난 날 저녁 심한 가슴 통증을 느꼈다. 경남에 있는 A병원 응급실을 찾아 심전도 및 혈액검사를 받고 수액주사를 맞았지만 전신이 강직됐고 곧 자발적 호흡이 멈췄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B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3월 24일 현재 N씨의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 그의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 중이다.

    유족들은 A병원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A병원이 N씨의 진료기록 관련 자료를 한꺼번에 주지 않고, 3차례에 나눠 일부씩 전달했기 때문이다. N씨의 부친에 따르면 N씨가 사망한 직후 A병원 측에 “아들의 진료기록을 모두 달라”고 요구했고, 병원 원무과 직원은 간호기록지와 의사의 초진기록지 몇 장만 건넸다. 그런데 간호기록지에는 심전도 및 혈액검사 시행 사실이 있었는데 그 결과는 표시되지 않았다.



    법 틈새로 빠져나가는 병원들

    부친이 원무과를 다시 방문해 검사 결과지를 요구하자, 직원은 심전도검사 결과지 1장과 혈액검사 결과지 2장을 추가로 넘겨줬다. 병원 측 태도가 의심스러웠던 N씨의 유족은 진료기록을 모두 받지 못했음을 알게 됐고, 세 번째로 병원을 방문해서야 심전도검사 추가 결과지 2장을 포함한 나머지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N씨의 여동생은 “A병원과 B대학병원의 진료기록 교부 방식이 전혀 달랐다”고 주장한다. A병원에서는 3차례에 걸쳐서야 모든 진료기록을 받은 반면, B대학병원은 진료기록 전부를 요구하자마자 줬다는 것. 유족은 “A병원 측이 고인의 진료기록 가운데 일부를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A병원 측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족이 요구한 서류만 줬고, 고의적으로 자료를 숨긴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병원 관계자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N씨의 부친이 처음 원무과에 찾아왔을 때 ‘진료기록지’를 요청했다. 우리 병원에서 진료기록지란 의사의 초진기록지와 간호기록지를 뜻한다.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N씨의 유족에게도 두 가지 서류만 줬다. 또한 심전도검사 결과지를 처음에 고의로 한 장만 준 것이 아니며, 최종적으로 유족에게 모든 서류를 건네줬다.”

    이에 대해 N씨의 부친은 “병원 측에 분명 ‘우리 아들의 진료기록을 다 달라’고 요구했다. 병원 관계자의 변명은 말도 안 된다”며 분노했다. 의사면허 소지자인 이용환 법무법인 고도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진료기록’은 진료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말한다”며 “A병원 측이 용어를 핑계로 상식적이지 않은 답변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병원들이 검사결과지를 바로 주지 않거나 진료기록 제공 시간을 늦추는 이유에 대해 “환자 측이 의료소송을 걸 만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병원 측이 환자에게 ‘담당 의사가 부재중이니 내일 오라’거나 ‘병원 전산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핑계를 대고 시간을 벌어 진료기록을 고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럴까. 일부 의료계 종사자에 따르면 진료기록 은폐·조작은 수시로 일어난다. 7년 차 간호사인 이모(30·여) 씨는 “예전에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환자 사망 시 무조건 진료기록을 수정하는 나쁜 관습이 있었다. 유족 측에서 병원에 책임을 물어 의료소송을 제기하는 데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환자가 사망하면 진료 차트에 기록된 의료진의 회진 시간을 수정하고, 환자의 죽음이 병원 책임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자 의료진 진술을 바꾸기도 했다. 병원 잘못으로 환자가 사망했는데 진료기록 조작 후 간호사 개인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애매한 ‘진료기록부’의 범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정모(31·여) 씨는 “성형업계에서는 실제 수술확인서에 기재된 의사가 아닌 ‘유령 의사’가 집도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경우 진료기록부를 대충 쓰는 일이 허다하다. 따라서 환자가 수술 후 진료기록 열람을 요구하면 ‘분실했으니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둘러대고 새로 작성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의료과실 여지가 있으면 병원 영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료기록은 의료소송 제기 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은폐 혹은 조작되면 환자는 병원 측에 의료과실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병원들이 이처럼 진료기록에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허술한 의료법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진료기록과 관련한 처벌 규정은 말 그대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은 의료인이 환자에 관한 기록 열람, 사본 발급, 내용 확인 요청에 따르지 않을 경우 의료인에게 자격정지 15일을 행정 처분하도록 명시하고, 의료인이 진료기록부 등을 보존하지 않으면 자격정지 1개월의 행정 처분을 하고 있다. 의료법 제90조는 병원이 진료기록부·간호기록부·조산기록부를 기록하지 않은 경우 3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의사면허 소지자인 정일채 법무법인 태신 변호사는 “진료기록 위·변조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지만, 조회 거부나 기록 미비는 대부분 행정 처분으로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진료기록의 열람을 보장하는 조항이 의료법상 규정돼 있지만 이마저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의료법 제21조 2항은 ‘환자의 배우자, 그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이 환자에 대한 기록의 열람, 사본 교부 등 그 내용 확인을 요구한 때에는 환자의 치료목적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진료에 관한 기록을 환자 또는 그 가족이 요구할 경우 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청하는 즉시, 서류 일체를 한꺼번에 줘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진료기록 제공을 미루는 병원들에게 법적 과실을 묻기 어려운 이유다.

    진료기록부의 범위를 규정하기 애매한 측면도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14조에 따르면 진료기록부는 ‘진료를 받은 자의 주소·성명·주민등록번호·병력 및 가족력’ ‘주된 증상, 진단 결과, 진료경과 및 예견’ ‘치료 내용(주사·투약·처치 등)’ ‘진료일시분’을 뜻한다. 따라서 ‘검사결과지는 진료기록부에 해당하는가’를 명확하게 밝히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일채 변호사는 “의료법상 검사결과지가 진료기록부에 포함된다고 정확히 명시돼 있진 않지만, 통상적으로 진단결과, 진료 경과 등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용환 변호사는 “진료기록부의 정의에 ‘검사결과지’가 명기돼 있지 않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 ‘진료기록부는 검사결과지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반박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에서 진료기록 교부를 차일피일 미뤄도 환자는 병원의 고의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병원의 의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환 변호사는 “N씨 유족의 경우처럼 ‘모든 기록을 달라’고 했는데 일부 기록만 받았을 경우 당시 상황을 녹음하거나 녹화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나 그 가족은 대부분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해 증거자료를 남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반 환자, 은폐·조작 알기 어려워

    병원 측이 환자에게 “진료기록을 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한 진료기록 조회를 거부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정일채 변호사는 “진료기록지 제출 거부는 병원 측이 ‘자료를 줄 수 없다’고 주장할 때다. 따라서 병원 측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기록 사본 교부를 미루면 환자 측에선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따라서 진료기록의 은폐나 조작이 발생해도 환자가 그것을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동종업계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의료계의 일부 행태도 이에 한몫한다. 모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박모(39) 씨는 “진료기록 조작은 동네 개인병원부터 대형 대학병원까지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서로 쉬쉬하며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박씨는 “다른 의사의 진료기록 조작을 지적해봤자 의료계 전체의 ‘제 살 깎아먹기’로 인식하기 때문에 기록지의 은폐나 조작이 의심돼도 콕 집어 말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진료기록 은폐에 대한 판례는 드물지만, 기록 미비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존재한다. 2001년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C씨는 주사수액을 투여받은 뒤 발작, 출혈로 사망했다. C씨의 진료기록부에는 사망 전 어느 약이 투여됐는지 기록되지 않았다.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C씨 유족은 이 약이 생리식염수라고 주장했고, 의료진은 “뇌압강하제인데 실수로 진료기록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대법원은 “기록서의 다른 부분에는 4시간마다 뇌압강하제를 투여했다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데, 환자의 사망 전 수술 당시에는 같은 약 투여 사실이 ‘실수로 기재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한 “원심에서 투약 약물을 자세하게 심리하지 않은 채 의료진의 진술만 듣고 ‘의료상 과실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각 환자단체는 “진료기록은 상세하게 기재하고 투명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기종 대표는 “진료기록을 누가 언제 작성하고 열람했는지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예전에는 진료기록서 작성을 수기(手記)로 했지만 이젠 컴퓨터로 하면서 조작 여부를 알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진료기록 은폐·변조는 환자가 자신의 진료 정보를 알지 못해 일어난다. 타인이 자신의 진료기록에 언제 왜 접근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진료기록 은폐 및 변조 행태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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