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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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이탈리아 세리에A

[위클리 해축] 1990년대 전성시대 연상케 하는 치열한 순위 경쟁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4-12-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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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축구 팬이라면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 세리에A의 전성기를 기억할 것이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와 독일 분데스리가 시대가 막을 내리고 1980년대 중반 시작된 세리에A의 르네상스는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당시 세리에A는 유럽축구연맹(UEFA) 리그 랭킹에서 13년 동안 1위를 고수했고, 1989∼1998년 단 1번을 제외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팀을 항상 배출했을 정도다.

    12월 1일 이탈리아 세리에A SSC 나폴리가 토리노와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뒀다. [GETTYIMAGES]

    12월 1일 이탈리아 세리에A SSC 나폴리가 토리노와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뒀다. [GETTYIMAGES]

    발롱도르 독차지한 전성기 세리에A

    당연히 당대 슈퍼스타 모두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다. 지금으로 치면 EPL 같은 분위기였다. 그 시절 발롱도르(매년 축구 전문매체 ‘프랑스 풋볼’ 주관으로 최고 축구선수에게 수여하는 상) 수상자 명단은 파올로 로시, 미셸 플라티니, 루드 굴리트, 마로크 판 바스텐, 로타어 마테우스, 로베르토 바조, 조지 웨아, 호나우두, 지네딘 지단 등 이탈리아 세리에A 출신으로 꽉 채워졌다. 세리에A가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자국 리그에서도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졌다. 이탈리아 전국구 클럽인 토리노의 유벤투스, 밀라노의 AC 밀란과 인테르 밀란, 수도 로마의 SS 라치오와 AS 로마, AC 피오렌티나, AC 파르마가 이른바 ‘7공주’로 불리며 리그 인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세리에A 7공주 전성시대는 21세기 들어 빛이 바래고 말았다. 전력 보강에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붓는 팀들의 경쟁이 치킨게임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축구는 지금처럼 계산된 마케팅에 토대를 둔 비즈니스 모델로 거듭나기 전이었다. 중계권료 수입이 있었지만 지출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기에 모기업의 지원이 절대적 비율을 차지했다. 제대로 된 수익 모델 없이 흥청망청 돈을 쓰던 일부 구단은 결국 파산했다. 설상가상으로 승부 조작 사건이 세리에A를 엄습해 급격한 추락이 시작됐다.

    세리에A SSC 나폴리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 [GETTYIMAGES]

    세리에A SSC 나폴리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 [GETTYIMAGES]

    ‌이후 세리에A는 르네상스 시절 영광을 잃었지만 긴 시간 리그 안정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번 시즌 순위표를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 느낌이 묻어나는 치열한 경쟁을 확인할 수 있다. 팀당 13∼14경기씩 치른 현재 선두 SSC 나폴리(32점)와 6위 유벤투스(26점)의 승점차가 6점이다(이하 12월 3일 기준). 그 사이 순위를 아탈란타 BC(31점), 인테르 밀란(28점), 피오렌티나(28점), 라치오(28점)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나폴리가 세리에A ‘우승 청부사’로 불리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영입하고 나서 선두를 달리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다. 디펜딩 챔피언이지만 리그 10위로 내려간 지난 시즌 순위를 콘테 감독이 원위치로 되돌린 것이다. 나폴리 부임 첫 시즌 올해 콘테 감독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구단과 관계도 아직 원만하다. 조금만 불만이 쌓이면 동네방네 불만을 쏟아내던 특유의 모습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세리에A 상위권에 오른 나머지 팀의 면면도 강력하다. 우선 2위 아탈란타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 이 팀은 1990년대 잠깐 회장을 맡았던 안토니오 페르카시가 2010년 구단주로 복귀한 후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리그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고 유럽 대항전에 나가면 다크호스 후보로 거론된다. 이번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5경기에서 승점 11점을 획득해 16강 토너먼트 직행을 노린다.

    인테르 밀란은 매우 저평가된 팀이라는 게 필자 생각이다. 지난 시즌 리그 챔피언으로,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유일하게 무실점을 기록 중이다. 시모네 인차기 감독의 전략과 전술은 지금보다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요즘 보기 힘든 3-5-2 포메이션을 쓰면서도 흥미롭고 공격적인 경기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를 괴롭혔던 것처럼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서운 기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의외의 선전 바로니號 라치오

    피오렌티나는 최근 리그 7연승 행진 중이다. 새롭게 합류한 라파엘레 팔라디노 감독의 지도력이 심상치 않다. 1984년생 젊은 나이로 자국 신예 감독 중에서도 단연 선두로 떠오른 인물이다. 2022∼2023시즌 승격 팀 AC 몬차 감독으로 중도 부임해 팀을 2시즌 연속 중위권으로 이끌었다. 이번 시즌에는 전력이 더 좋은 피오렌티나에서 자신의 전술을 더욱 과감히 펼치고 있다. 2016년 16세 나이로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화려하게 데뷔한 스트라이커 모이세 켄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는 점에서 이들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재정 문제로 4부 리그까지 강등되고 팀 이름까지 뺏긴 피오렌티나가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한다면 도시가 온통 구단 상징색 보랏빛으로 물들 것이다.

    이번 시즌 라치오의 선전은 어떤 점에선 이변일지 모른다. 2022∼2023시즌 2위를 기록한 라치오는 지난 시즌 위기가 이어져 7위까지 내려앉았다.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이 사임했고 소방수로 시즌을 잘 마무리한 이고르 투도르 감독도 팀을 떠났다. 급하게 데려온 감독은 하부 리그와 하위권을 전전하던 마르코 바로니였다. 씀씀이가 크지 않은 구단과 명성이 높지 않은 감독의 만남은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상위권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바로니 감독의 라치오는 현재 기대 이상 성과를 내고 있다. 리그에서 선전하는 것은 물론, 유로파리그에서도 당당히 선두를 달리며 단숨에 우승 확률을 높였다. 라치오의 마지막 유럽 대항전 우승은 1999년 UEFA컵이었다. 최근 결승전을 치를 빌바오로 향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유벤투스는 최소 실점으로 유일한 무패 팀이지만 8경기나 비기는 바람에 승점을 26점밖에 얻지 못했다. 첫 시즌을 맞은 티아고 모타 감독은 전임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의 축구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게 과제다. 최근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고민이 크다. 유벤투스는 지난 애스턴 빌라와의 챔피언스리그 원정 당시 벤치에 필드 플레이어가 4명만 앉아 있었을 정도로 선수 부족을 겪고 있다. 부상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팀이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시즌에만 감독을 벌써 2번 바꾼 AS 로마가 15위로 처진 것만 빼면 상위권에 있어야 할 팀들이 제자리에서 순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팬들 입장에선 옛 추억을 소환하는 이탈리아 세리에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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