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서울 상암동 평화의공원 평화광장에서는 동아일보와 ㈔나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제2회 ‘천사데이 희망의 나눔 걷기’ 행사가 열렸다.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시민 3000여 명이 다문화가정 어린이들과 함께 하늘공원까지 걸으며 나눔의 의미를 되새긴 행사였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천사데이 희망의 나눔 걷기’는 앞으로도 해마다 ‘천사데이’인 10월 4일에 열릴 예정이다.
유행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 ‘천사데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10월 4일을 숫자로만 쓰면 1004(천사)가 된다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10월 4일 하루만이라도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나눔의 날’로 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에는 전국적에서 뛰거나 걷는 구간만큼 기부하는 마라톤대회, 바자회, 봉사활동 등 다양한 나눔 실천 행사가 펼쳐진다. 빼빼로데이, 삽겹살데이, 구구데이 등 여타 ‘·#52059;·#52059;데이’가 특정 제품 소비를 조장할 목적에서 시작된 데 비해 천사데이는 선한 의미를 담고 있다.
백두원(41) 씨는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천사데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이 1983년 처음 ‘100원이 한 생명을 살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저금통을 이용한 모금캠페인을 벌이며 생활 속에 기부문화를 확산한 것처럼, 백씨는 천사데이 운동을 통해 생활 속에 나눔문화를 확산한 셈이다.
생활 속 나눔문화 확산 주도
1990년 MBC ‘칭찬합시다’의 190번째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삶은 ‘나눔’ 자체다. 2001년 지금은 ‘사회봉사대상’으로 이름이 바뀐 MBC ‘좋은 한국인 대상’ 최연소 수상자이기도 하다. 흔히 기부, 봉사, 나눔은 돈 있는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생활보호대상자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고학생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신문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그래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생기면 외면할 수 없더라고요. 누구보다도 그 고통을 잘 아니까요. 저는 돈이 없기에 도와줄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집에 불이 나서 전 재산을 잃은 친구가 있으면 모금함을 만들어 학교를 돌며 성금을 모은다든지 하는 방법으로요.”
자기 배가 고파봐야 굶주린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는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소년소녀가장을 돌보기 시작했지만, 수중엔 그들을 도와줄 만한 돈이 없었다. 1993년 봄 친구 2명과 함께 무작정 기타를 둘러메고 경기 동두천역 앞에 나가 성금통을 놓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무지 창피했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몇 달이 지나니까 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한 거예요.”
거리공연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모아 1994년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하는 모임인 ‘참빛’을 만들었다. 아내 김은민 씨를 만난 것도 참빛 활동을 통해서다. 백씨가 소년소녀가장에게 아버지 노릇을 했다면, 김씨는 엄마 노릇을 했다. 자연스럽게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고 한다.
“아내에게 미안한 게 많죠. 저는 결혼 전부터 오갈 데 없는 아이가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재워주고 먹여주곤 했어요. 그래서 가출한 아이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결혼했으니 이젠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잖아요. 신혼 초, 단칸방에 살 때도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이 있으면 안방을 내줬어요. 우리는 마루에서 잤고요.”
그가 천사데이를 처음 구상한 것은 2002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우리 민족의 전통인 품앗이를 오늘에 되살리는 새로운 풀뿌리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동두천 어르신들을 모시고 ㈔천사운동본부를 만들어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였다. 김재홍 동두천장학회 회장의 코멘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천사데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 4일 ㈔천사운동본부 주최로 소년소녀가장과 소아암 환우를 돕기 위한 ‘천사데이,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면서 천사데이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천사데이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한간호협회 병원간호사회는 2005년부터 매년 10월 4일이면 소속 병원별로 다양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친다.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는 2010년부터 천사데이를 전후해 모금활동을 전개한 뒤 나눔단체에 기부한다. 엔트리브소프트는 ‘바자회’를, 신한생명은 ‘릴레이 봉사’를 펼치며 올해부터 천사데이에 동참했다. 경남 거창군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10월 4일을 ‘아림 1004의 날’로 선포하고 나눔사업을 펼치고 있다.
백씨는 지금도 자기 집 없이 전세를 살고 있다. 그는 나눔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이 재산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나눔단체 관계자, 기업인은 물론 가수 김장훈과 박상민, 개그맨 김용만, 탤런트 최수종과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다. 개그맨 김준호가 개그맨 봉사모임을 만든 것도 그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나눔으로 인연을 맺었다. 1995년 현대건설 회장으로 재직하던 이 대통령은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했는데, 그중 한 명을 백씨도 도와주고 있었다. 소년소녀가장을 통해 백씨의 선행을 알게 된 이 대통령은 백씨의 대학등록금은 물론, 어머니가 아팠을 때 수술비와 3년 동안 병원 치료비를 지원해줬다. 이 인연으로 그는 MB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 들어갔다.
뜻 맞는 사람끼리 ‘천사재단’ 준비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면서도 그의 나눔활동은 계속됐다.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것은 물론, 청와대 직원을 모아 주기적으로 장애아동시설인 승가원을 찾았다. 사회통합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실 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을 펴나갔다. KBS가 2010년 10월 4일부터 12월 24일까지 펼친 ‘2010 대국민 천사 프로젝트-80일간의 약속, 천사를 찾습니다’ 캠페인, 2010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나눔대축제’ 등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현재 대한민국 나눔운동의 구심점이라 할 만한 ㈔나눔국민운동본부가 2011년 6월 출범한 데도 그의 힘이 컸다.
지난 봄 청와대를 나온 그는 현재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 선임보좌관으로 일한다. 김상민 의원은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를 만들어 청년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인물. 나눔과 봉사가 두 사람을 엮어놓은 셈이다. 그는 요즘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천사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사단법인 천사운동본부를 만들어 활동해봤는데 나눔과 봉사, 기부 활성화 사업을 펼치는 데는 재단법인이 더 용이한 부분이 많겠더라고요.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지인을 모아 천사재단을 만들려고 해요.”
사단법인이든 재단법인이든 그의 목표는 하나다. 천사데이를 통해 나눔운동을 더 널리 확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처럼 10월 4일 천사데이가 전 세계인이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로 자리 잡는 것이다.
유행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 ‘천사데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10월 4일을 숫자로만 쓰면 1004(천사)가 된다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10월 4일 하루만이라도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나눔의 날’로 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에는 전국적에서 뛰거나 걷는 구간만큼 기부하는 마라톤대회, 바자회, 봉사활동 등 다양한 나눔 실천 행사가 펼쳐진다. 빼빼로데이, 삽겹살데이, 구구데이 등 여타 ‘·#52059;·#52059;데이’가 특정 제품 소비를 조장할 목적에서 시작된 데 비해 천사데이는 선한 의미를 담고 있다.
백두원(41) 씨는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천사데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이 1983년 처음 ‘100원이 한 생명을 살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저금통을 이용한 모금캠페인을 벌이며 생활 속에 기부문화를 확산한 것처럼, 백씨는 천사데이 운동을 통해 생활 속에 나눔문화를 확산한 셈이다.
생활 속 나눔문화 확산 주도
1990년 MBC ‘칭찬합시다’의 190번째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삶은 ‘나눔’ 자체다. 2001년 지금은 ‘사회봉사대상’으로 이름이 바뀐 MBC ‘좋은 한국인 대상’ 최연소 수상자이기도 하다. 흔히 기부, 봉사, 나눔은 돈 있는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생활보호대상자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고학생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신문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그래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생기면 외면할 수 없더라고요. 누구보다도 그 고통을 잘 아니까요. 저는 돈이 없기에 도와줄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집에 불이 나서 전 재산을 잃은 친구가 있으면 모금함을 만들어 학교를 돌며 성금을 모은다든지 하는 방법으로요.”
자기 배가 고파봐야 굶주린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는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소년소녀가장을 돌보기 시작했지만, 수중엔 그들을 도와줄 만한 돈이 없었다. 1993년 봄 친구 2명과 함께 무작정 기타를 둘러메고 경기 동두천역 앞에 나가 성금통을 놓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무지 창피했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몇 달이 지나니까 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한 거예요.”
거리공연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모아 1994년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하는 모임인 ‘참빛’을 만들었다. 아내 김은민 씨를 만난 것도 참빛 활동을 통해서다. 백씨가 소년소녀가장에게 아버지 노릇을 했다면, 김씨는 엄마 노릇을 했다. 자연스럽게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고 한다.
“아내에게 미안한 게 많죠. 저는 결혼 전부터 오갈 데 없는 아이가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재워주고 먹여주곤 했어요. 그래서 가출한 아이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결혼했으니 이젠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잖아요. 신혼 초, 단칸방에 살 때도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이 있으면 안방을 내줬어요. 우리는 마루에서 잤고요.”
그가 천사데이를 처음 구상한 것은 2002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우리 민족의 전통인 품앗이를 오늘에 되살리는 새로운 풀뿌리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동두천 어르신들을 모시고 ㈔천사운동본부를 만들어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였다. 김재홍 동두천장학회 회장의 코멘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천사데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 4일 ㈔천사운동본부 주최로 소년소녀가장과 소아암 환우를 돕기 위한 ‘천사데이,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면서 천사데이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나눔문화에 앞장서고 있는 가수 김장훈 씨(오른쪽)와 함께한 백두원 씨.
백씨는 지금도 자기 집 없이 전세를 살고 있다. 그는 나눔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이 재산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나눔단체 관계자, 기업인은 물론 가수 김장훈과 박상민, 개그맨 김용만, 탤런트 최수종과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다. 개그맨 김준호가 개그맨 봉사모임을 만든 것도 그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나눔으로 인연을 맺었다. 1995년 현대건설 회장으로 재직하던 이 대통령은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했는데, 그중 한 명을 백씨도 도와주고 있었다. 소년소녀가장을 통해 백씨의 선행을 알게 된 이 대통령은 백씨의 대학등록금은 물론, 어머니가 아팠을 때 수술비와 3년 동안 병원 치료비를 지원해줬다. 이 인연으로 그는 MB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 들어갔다.
뜻 맞는 사람끼리 ‘천사재단’ 준비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면서도 그의 나눔활동은 계속됐다.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것은 물론, 청와대 직원을 모아 주기적으로 장애아동시설인 승가원을 찾았다. 사회통합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실 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을 펴나갔다. KBS가 2010년 10월 4일부터 12월 24일까지 펼친 ‘2010 대국민 천사 프로젝트-80일간의 약속, 천사를 찾습니다’ 캠페인, 2010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나눔대축제’ 등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현재 대한민국 나눔운동의 구심점이라 할 만한 ㈔나눔국민운동본부가 2011년 6월 출범한 데도 그의 힘이 컸다.
지난 봄 청와대를 나온 그는 현재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 선임보좌관으로 일한다. 김상민 의원은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를 만들어 청년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인물. 나눔과 봉사가 두 사람을 엮어놓은 셈이다. 그는 요즘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천사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사단법인 천사운동본부를 만들어 활동해봤는데 나눔과 봉사, 기부 활성화 사업을 펼치는 데는 재단법인이 더 용이한 부분이 많겠더라고요.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지인을 모아 천사재단을 만들려고 해요.”
사단법인이든 재단법인이든 그의 목표는 하나다. 천사데이를 통해 나눔운동을 더 널리 확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처럼 10월 4일 천사데이가 전 세계인이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로 자리 잡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