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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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美, 북 · 미 정상회담 앞두고 갈수록 ‘좁은 문’ 내밀다

  •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8-05-14 17: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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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서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3월 31일 북한 평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를 만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 [AP=뉴시스]

    5월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서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3월 31일 북한 평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를 만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 [AP=뉴시스]

    한반도의 빅게임이 2라운드(북·미 정상회담)로 달려가고 있다. 주역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물론, 조역인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황은 통제하기 힘드니 전형적인 기호지세(騎虎之勢)가 된다. 

    김씨 3대의 공통 정서는 ‘혐중(嫌中)’이다. 북한은 1992년 한중수교를 최대의 배신으로 여긴다. 생전에 김정일은 말끝마다 “중국놈을 믿지 마라”고 했다. 이 때문에 외교 채널을 통한 교류를 5년간 차단했다. 공산당 간 거래만 유지했는데, 이것이 굳어져 지금도 북·중 관계는 공산당이 담당한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정상외교가 아니라 공산당 수뇌끼리 사적으로 만난 것이라 언론발표문조차 나오지 않는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행동들

    북한은 6번의 핵실험 가운데 3번을 김정은 시대에 했다. 김정은 시대 첫 핵실험인 4차는 중국에 통고하지 않고 했기에 북·중 관계가 험악해졌다. 5차를 준비할 때는 중국이 알아차리고 “원유 공급을 끊겠다”며 협박까지 했지만 강행했다. 6차 때 중국은 강한 만류를 포기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이 포함된 대북제재법을 만들었다. 2월에는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 해상무역을 봉쇄하는 명령도 만들었다. 지금 한반도 상공에서는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초계기가 북한 출입 선박을 감시, 추적하고 있다. 이 긴장을 문 대통령이 일부 풀어줬다. 취임 1년 내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4·27 판문점선언을 만들어낸 것.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틀 전 남북이 합동으로 예행연습을 하고, 전날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리허설까지 한 다음 열렸다. 남북이 하나가 돼 만들었으니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사진을 찍을 때 “연출을 잘했습니까”란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골초’인 그가 담배를 나가서 피우고 온 모습은 그가 보여주려 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점심을 판문각으로 돌아가 먹었으니 ‘식후 연초’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찬은 자유의집에서 했기에, 양해를 구하고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왔다. 북한에서는 김 위원장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했다. 부인 이설주와 여동생 김여정이 오연준 군의 노래를 살짝 따라 불러준 것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행동으로 판단된다. 

    그때 미국이 밝힌 것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비밀방북이었다. 폼페이오는 3월 31일 김 위원장을 만났는데, 그 직전에 김 위원장은 특이한 행동을 했다. 3월 25일 평양을 출발해 26~27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고, 28일 북한으로 돌아와 폼페이오를 만난 것이다. 폼페이오가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할 때도 하루 전날 전용기로 중국 다롄으로 날아가 시 주석과 다시 회동한 뒤 돌아와 폼페이오를 만났다. 폼페이오만 오면 ‘그렇게 싫어하는’ 중국으로 달려간 것인데, 이는 부담감 때문일 수 있다. 

    북한은 경호를 매우 중시하기에 의심 국가에게는 절대로 김 위원장의 안위를 맡기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행사는 생중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를 유엔사 관할지역에 있는 자유의집으로 보냈고, 완전 노출된 도보다리에서 문 대통령과 평화롭게 대담하는 모습도 생중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해 남북이 합의한 행동이다. 

    다음 날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4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의집이 제3국보다 더 대표성이 있고 더 나은 장소인가. (이 글을 보는 분에게) 단지 물어보는 것이다’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자 한국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수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으나, 미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북한과 함께 판문점을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밀었다는 사실만 노출한 셈이다.

    평화협정 없이 이뤄진 한중수교

    5월 8일 중국 다롄 방추이다오 해변을 걷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AP=뉴시스]

    5월 8일 중국 다롄 방추이다오 해변을 걷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말로만 하지 않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두 번째로 북한에 보낸 날 그는 이란과 맺은 핵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그날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있는 이란군 기지를 공습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을 설명하고자 미국에 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 다음 날(4월 14일) 미국이 영국, 프랑스와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장을 공습한 것을 연상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핵협정을 타결한 오바마 정부의 존 캐리 전 국무장관도 비난했다. 이는 곧 폼페이오 장관에게 김 위원장을 다시 압박하고 오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징검다리”라면서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애써온 문 대통령에게도 압박을 가한 것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달리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김 위원장에게 ‘좁은 문’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5월 10일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을 방문해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을 이끌고 귀국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석방에 도움을 줘 고맙다”고 말했다. 또 미국인 3명을 직접 공항에서 맞이한 뒤 기자회견에서는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보내준 탁월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하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회담 전에 보내줬다”고 인사했지만, 북한 비핵화는 별건이고 회담 장소는 판문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이 ‘통 큰 결정’을 해도 고맙다고 인사만 했을 뿐 계속 ‘좁은 문’을 내민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거론된 것이 평화협정 혹은 평화조약(강화조약) 체결이다. 협정은 양국 정부(외교부)가 맺는 것이고 조약은 국회의 비준 동의까지 받아야 하므로, 평화조약이 좀 더 엄격하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정전협정은 미국과 북한, 중국이 체결했으니, 북·미가 평화조약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조약은 꼭 맺지 않아도 된다. 

    일본을 항복시킨 미국은 연합국을 이끌고 일본을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유럽전쟁을 일으킨 독일과는 아무것도 맺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도 그랬다. 독일(서독)로부터 항복받은 것만 근거로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서독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게 했다. 소련은 더 나아가 독일은 물론, 일본과도 강화조약을 맺지 않고 수교했다. 제2차 세계대전보다 긴 8년을 일본과 싸운(중일전쟁) 중국도 강화조약 없이 일본과 복교했다. 

    우리 또한 6·25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우리 군을 파병했던 베트남과 강화조약을 맺지 않고 다시 수교했다. 미국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하는 걸프전을 치른 후 이라크와 정전협정을 맺은 바 없이 10여 년을 지냈고, 2003년 시작한 이라크전쟁을 끝낸 다음에도 이라크를 상대로 강화조약이나 협정을 맺은 바 없다. 그러나 북베트남을 상대로는 파리에서 정전협정을 체결(1973)하고 미군을 철수시켰다. 2년 뒤 북베트남이 이 협정을 어기고 남베트남을 무력 통일할 때는 지켜보기만 했다. 

    이는 조약이나 협정이 있어야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협정과 조약의 유효 기간은 그 현상이 ‘유지되는 때’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주목할 것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정전체제를 유지해온 한반도다. 6·25 정전협정은 체결 3년 뒤 2개 나라로 갈 것인지, 통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치협상을 하라고돼 있었지만 양측은 협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전상태를 유지해왔는데 이는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의 역외균형전략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뉴스1]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뉴스1]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이나 조약을 맺을 가능성은 적다. 만약 맺는다면 유엔사는 해체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연합사 해체를 전제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 중인데,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전체제가 오히려 평화체제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한 위기에 빠지지 않고 남북이 공존하려면 영원한 분단으로 가야 한다. 

    이는 중차대한 문제이니 남북은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은 평화조약을 맺고, 이어 우리는 ‘군사분계선 이남과 그 부속도서로 한다’, 북한은 ‘군사분계선 이북과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영토조항을 바꾸는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은 국민투표까지 요구하는 만큼 심각한 정치논쟁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는 정전상태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를 보장해주고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깨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이 통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지만, 거꾸로 영원한 분단을 의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여기에 수십 년을 투자해 만든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숙제를 추가로 부과받게 되니 남북한이 모두 몸살을 앓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귀재답게 북한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주문할 수도 있다. 북핵 폐기를 확인하려면 사찰단이 장기간 북한에 체류해야 하는 만큼 이들의 안전을 위해 미군을 북한에 주둔시키겠다고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면 협상을 결렬하고 다시 북한을 조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예선전에 불과한 폼페이오 장관과 만남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김 위원장을 두 번째로 만난 시 주석은 북·중 관계를 ‘순치(脣齒)’라고 했다. 이는 북한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북한은 문 대통령의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 걸림돌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이 잘되면 남북 철도와 항공로 연결, 식목 사업 등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집행하려면 북·미 정상회담이 잘 끝나 대북제재에서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 

    중국은 그러한 예외가 만들어지면 한국보다 더 많이 투자해 북한을 끌어안으려 한다. 미국의 지나친 사찰에 지친 북한이 반미 성향을 보이면 더욱 좋아할 테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가 내놓은 미국의 역외균형전략에 따라 대만 독립을 추진하고 일본을 정상 국가로 만들어줌으로써 중국 견제를 강화할 것이다. 결국 한반도 문제는 미·중 문제가 되는 것이니, 우리의 입지는 좁아진다. 북·미 정상회담 앞에 너무 많은 암초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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