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직후 미국 언론은 일제히 이 내용을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두 회사의 온라인시장 진출을 고착화된 미국 방송업계의 판도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HBO는 케이블TV 전용 영화 및 드라마 채널로 가입자 수 기준 미국 내 영화채널 1, 2위를 다툰다. CBS는 지상파방송사로 이미 자체 망(플랫폼)을 갖고 있고 케이블채널,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에도 콘텐츠를 공급해 수익을 내는 전통 매체다.
이 업체들이 온라인 서비스에 주목한 이유는 TV 시청 패턴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민텔(MINTEL)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회원제 동영상 스트리밍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25% 증가했다. 전체 미국 동영상시장의 50%에 육박하는 수치다. 온라인 방송 스트리밍 선두업체 넷플렉스는 9월 말 기준 미국 내 가입자 3720만 명을 확보했고, 해외를 포함하면 가입자가 50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전체 동영상 이용자 중 모바일 이용자는 2011년 13%에서 2013년 2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TV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유료방송 코드를 뽑고 온라인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을 일컫는 ‘코드커터(Code Cutter)’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반면 방송시장 플랫폼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보이던 케이블채널 가입자는 점점 줄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L은 미국 케이블채널 가입자 수가 2010년 6039만 명, 2011년 5859만 명, 2012년 5694만 명, 지난해 5500만 명, 올해 5350만 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료방송 코드 뽑는 ‘코드커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지상파방송을 제외한 미국 유료방송 업계는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제작사로 나뉘어 있었다. 케이블채널, 위성방송, 인터넷망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 사용료를 콘텐츠 제작사에 지급하면 콘텐츠 제작사는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채널을 할당받아 방송을 송출하고 가입자 수익, 광고 수익을 거뒀다. 이 때문에 채널 배정 권한이 있는 플랫폼 사업자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국 방송 산업은 지상파, 케이블채널, 위성방송, IPTV로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대대적인 인수합병(M&A)을 시작했다. 지역별로 흩어져 있던 케이블채널은 컴캐스트, 타임워너케이블, 차터 같은 대기업으로 흡수됐고, 대형 제작사와 플랫폼사는 각각 수직계열화를 단행했다. 언론학자 벤 H. 바그디키언은 2009년 출간된 ‘미디어 모노폴리’ 개정판에서 미국 미디어 기업이 M&A로 점점 대형화, 독점화, 체인화(수직계열화)되며 소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TV에 꽂으면 스마트폰 기반 영상 서비스 ‘티빙’을 TV에서 즐길 수 있는 CJ헬로비전의 ‘티빙스틱’(왼쪽). SK브로드밴드의 ‘Btv’로는 실시간 방송과 VOD를 즐길 수 있다.
HBO와 CBS는 플랫폼 사업자 대형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확대 분위기에서 모험을 했다. 그동안 콘텐츠 제작사들은 협상 주도권이 있는 플랫폼 사업자의 눈치를 봐왔기 때문에 독자 서비스를 한다는 건 사실상 기존 플랫폼 업체로부터의 독립선언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정부 주도로 접속료 제도 개편 논의
하지만 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OTT 시장 포화로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는 3분기 신규 가입자 수가 계획했던 368만 명에 미달하는 300만 명 증가에 그쳤다. 데이터 트래픽 증가 때문에 망 비용을 별도로 부담해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초 버라이즌, 컴캐스트 등과 ‘피어링’(일반적으로 쓰는 통신망 외에 별도로 돈을 내고 독자 회선을 할당받는 형태) 계약을 맺었는데, 플랫폼 사업자가 통폐합으로 규모를 키우면서 피어링 비용을 점점 올려 온라인 스트리밍 사업자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케이블방송이 강세였고, 케이블방송 월 이용요금이 70달러(약 7만3451원)를 상회한다. 우리는 지상파가 전국을 커버할 수 있고 콘텐츠시장에서 영향력도 막강하다. 전체 방송광고시장 중 지상파와 지상파계열 방송채널사용사업자(유료방송 채널을 할당받아 콘텐츠를 공급하는 업체·PP) 비율이 70.6%에 달한다.
가입자당 매출액이 평균 1만 원대인 유료방송 업계는 일찌감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했다. CJ헬로비전 ‘티빙(tving)’, 현대HCN ‘에브리온TV’, IPTV 업계 모바일 및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Btv’ ‘올레tv모바일’ ‘U+HDTV’ 등이 쏟아져 나왔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성장했지만 결국 콘텐츠는 지상파에서 나왔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으로부터 가입자당 콘텐츠재송신료(CPS) 280원을 받고 스트리밍 서비스용으로 콘텐츠 이용료를 추가로 받는다. 지상파는 이들과 별도로 자체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푹(pooq)’도 출시했다.
콘텐츠 쏠림현상이 심하다 보니 여타 PP가 독자 채널을 이용해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기 힘든 구조가 됐고, 지상파 콘텐츠를 둘러싼 플랫폼 사업자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 상황에서 한국 유료방송업계의 해법 역시 대형화다. 5대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로 통폐합된 케이블방송 업계는 매물로 나온 씨앤앰을 놓고 결전을 벌일 태세다. KT 위성방송·IPTV 합산 규제 논란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국내에서도 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이 망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통신망 비차별성을 골자로 한 오픈인터넷(망중립성) 규칙을 도입해 유무선통신망 사업자가 이용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하던 규정을 개정했다. 피어링을 상호접속계약으로 분류하고 망중립성 보호 테두리에서 빼기로 한 것이다. 플랫폼 통폐합으로 영향력이 커지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내는 피어링 이용비는 점점 오르고 있다. 한국 통신망 업체들도 꾸준히 사업자의 통신망 이용 대가를 요구해왔다.
국내는 정부 주도로 상호접속료 제도를 개편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7월부터 미래창조과학부 통신경쟁정책과에서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포괄하는 인터넷 데이터 상호접속료 산정 연구반이 꾸려졌다. 통신망 투자비, 운영비 등 원가를 산출해 정부와 업체가 함께 데이터 트래픽당 상호접속료를 정하고, 실제 사용하는 트래픽 양에 따라 대금을 지불하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업자 간 힘의 논리와 계약이 지배하는 미국과 달리 매체 다양성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