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왼쪽)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1월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오찬 단독회동을 위해 만났다.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의장이 설 연휴 직후 던진 ‘새누리당 어부지리 딜레마’ 발언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나 홀로 가겠다는 것은 사실 좀 현실적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송호창 새정추 소통위원장)이라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연대는 없다’던 안철수 의원 측이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새누리당 “야합은 구태 중 구태”
야권연대에 불을 지핀 쪽은 민주당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설날 ‘세배투어’ 직후 최고위원회의에서 “새 정치를 놓고 경쟁하다 구태 정치를 살리는 결과를 가져와선 안 된다는 것이 민심”이라 말했고, 전병헌 원내대표는 “야권단합하라는 것이 설 민심”이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새누리당은 “야권야합은 구태 중 구태다. 신당이 정치 야합에만 골몰하는 사익 추구는 ‘한여름 밤의 정치쇼’로 끝날 것”(최경환 원내대표), “정치적 상황이 불리해지면 연대하겠다는 것은 여론의 간을 보겠다는 것”(홍문종 사무총장)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결국 2월 5일 안철수 의원이 직접 나서서 “선거만을 위한 연대는 없다”고 차단막을 쳤고, 금태섭 대변인은 “최근 잇따르는 야권연대론에 쐐기를 박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으로서는 당장 3월 창당을 예고하고 새 정치 혁신안을 내놓고 있으며 전국을 돌면서 바람몰이를 하는 마당에 야권연대 논란에 휘말리는 것이 곤혹스럽다.
하지만 안 의원의 야권연대 진화보다 윤 의장의 ‘딜레마론’에 여론 관심이 더 쏠린다. 먼저 선거라는 현실을 통해 정치 이상을 펼쳐야 하는 정당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설 명절 이후 호남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새정추가 공을 들이는 수도권과 부산, 호남에서 성과를 내려면 민주당과의 막판 연대 가능성을 닫아놓을 수도 없다.
여기에 역대 지방선거는 50% 안팎의 투표율(1998년 2회 지방선거 52.7%, 2002년 3회 48.9%, 2006년 4회 51.6%, 2010년 5회 54.5%)을 기록해 대통령선거(대선)나 총선에 비해 낮다. 올해 선거일인 6월 4일(수요일) 하루를 건너뛴 금요일이 현충일인 만큼 직장인이 6월 5일 하루 휴가를 내면 최대 닷새의 황금연휴를 보내게 된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투표율 저조로 안철수 신당보다 조직세가 강한 기존 정당이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온다. 투표율을 끌어올리려고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국 단위로는 처음 사전투표제(투표할 수 없을 경우 5월 30~31일 이틀간 미리 투표하는 제도)를 시행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민주당 역시 야권연대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연일 안간힘을 쓴다. 안 의원의 “야권연대 불가” 발언 이후 전병헌 원내대표는 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협력 대상끼리 견제와 분열을 하는 것은 새누리당을 어부(漁夫)로 만들어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며 ‘어부지리(漁夫之利)론’을 다시 꺼냈다. 안 의원 측 ‘야권연대 불가론’을 ‘야권연대 불가피론’으로 맞선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신당이 ‘마이 웨이’만 고집해 야권이 분열하면 자칫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고, 그렇다고 연대를 추진하다 야합으로 비치면 새 정치라는 대의명분을 잃게 된다. 그만큼 신당의 야권연대 함수는 복잡하다. 딜레마다.
“야권연대는 없다”고 공언해온 윤 의장 등이 설 명절 뒤부터 “국민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봐야 한다”고 밝히는 등 미묘한 변화 기류를 드러낸 것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명분과 실리 사이 딜레마
새정추 관계자 말에서도 현재의 복잡한 심경이 읽힌다.
“창당 초기 야권연대를 얘기하면 신당 바람이 일지 않는다. 현재의 야권연대는 우리에게는 고문이다. 그렇다고 ‘연대 불가’만 고집하다가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 특히 수도권에서의 패배도 고민이다.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승리하고, 이로 인해 자칫 호남 민심이 민주당으로 쏠린다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가도에도 타격을 입는다. 민주당이 연일 야권연대 구애를 펴는 이유도 ‘신당 창당 바람’을 빼는 동시에 ‘쟤네들이 연대를 안 받아서 졌다’는 명분을 쌓으려는 거 아니겠나. 이제 당을 만드는 시점에 연대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우리로서는 좋을 게 없는 만큼 우선은 연대 얘기는 하지 않고 인재 영입과 민심을 지켜본 뒤 4월 가서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게 맞다.”
이는 “많은 국민이 받아주면 그 길을 가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 윤 의장 발언과 맥락은 같다.
새정추 내에서도 ‘새 정치를 하려면 독자노선을 가야 한다’는 의견과 ‘야권분열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야권연대에 대해 ‘잠정 보류’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17개 광역단체장 후보를 모두 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성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안 의원 측 관계자 역시 ‘연대 불가’로 단정하지는 않는다.
“신생구단이 챔피언이 되려면 최소 5~10년은 투자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 현실은 신생구단이 챔피언 구단과 맞붙어 같은 성적을 내야 이기는 걸로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표를 내걸다 보니 17개 광역단체장을 낸다고 한 것이고, 이는 지향점이자 전략이다. 지향점과 명분을 추구하려다가는 자칫 새 정치에 맞지 않는 인물을 영입할 수도 있는 만큼 지향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서울에 마땅한 후보가 없다면 내지 않으면 된다. 그 또한 소극적 연대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전술에 관한 부분이다. 현 시점에서 연대냐 아니냐, 선을 긋는 것 또한 의미가 없다. 민주당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연대를 입에 올릴 수 없다.”
그의 말처럼 당장은 창당과 출전 채비에 ‘올인’(다 걸기)한 뒤 상황을 보자는 게 안 의원 측 관계자들 중론이다. 바꿔 말하면 새 정치에 부합하는 중량급 인사를 영입할 수 없다면 상황을 봐가며 현실적 연대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 연대 방식은 다양하다. 야권이 호남에선 경쟁하고 서울과 부산 등에선 단일후보를 내는 지역별 연대부터 야권이 지역별 경선을 통해 야권 단일후보를 내는 전면적 연대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안 의원 측 새정치신당(가칭)이 2월 11일 정치 혁신 내용을 담은 ‘새 정치 플랜’을 발표하고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새 정치 가치에 동의한다’ 수준으로 화답하면 후보를 내지 않는, 일종의 ‘새 정치 가치연대’가 가능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2월 5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전북 전주시 동학혁명기념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3당 구도로 선거 치르나
“혁신안 발표는 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신당과의 혁신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신당에 쏠릴 관심을 분산하는 일종의 물 타기 전략도 포함됐다. 그러면서 정치 혁신에 대한 생각은 우리와 비슷하니 ‘연대하자’고 제의할 근거도 된다. 우리는 (야권연대 노력을) 할 만큼 해야 한다. 이후 3당 구도로 선거를 치러 야권이 대패하면 신당 책임론이 일 거다.
현재 신당 측과도 비공식 라인을 통해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공천 관련 연대 얘기를 하고 있다. 특히 야권이 약한 영남 지역에서는 기초단체장을 신당이 내면 광역·기초의원은 민주당이 내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이 대거 신당으로 옮겨갈 게 빤한데, 신당으로서도 이런 구시대적 인물을 공천할 수는 없다. 갓 창당한 신당에서 광역·기초의원까지 후보를 낼 상황도 아닌 만큼 양당 모두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낮은 단계 연대’는 각 지역별로 이뤄질 테고, 중앙으로 의견이 올라갈 거다. 그럼 4월에는 큰 그림(야권연대)이 나올 걸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