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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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탈해간 권력 … 진상 규명하라”

이회창 씨, 兵風 재판 승리후 대여 공세 목소리 높여 … 명예회복 이어 정계복귀 수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5-20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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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탈해간 권력 … 진상 규명하라”
    대법원이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 씨 등에 대해 ‘1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린 5월1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이 전 후보의 단암빌딩 사무실은 여느때보다 많은 사람이 찾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물론 평소 이 전 후보를 지키던 인사 등 방문객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한 축하와 덕담을 건넸다.

    이 전 후보는 웃는 얼굴로 이들을 대했지만 중간 중간 긴장감을 드러냈다. A 의원과 마주 앉아 2년여 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감정의 일단을 드러냈을 때도 이 전 후보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생각을 해봐라. 병풍 공작으로 국민들(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것이 지지도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그런데 그것(병풍 공작)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면, 권력을 찬탈해간 것 아니냐.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 전 후보의 분노는 한동안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진상조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A 의원은 “걱정 마라. 당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다”고 그를 위로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당으로 돌아온 A 의원은 K, J, N, P 의원에게 단암빌딩의 강경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이 분위기는 당 지도부에도 전달됐다.

    대법원의 병풍 의혹 확정 판결을 계기로 2002년 대선을 관통했던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상규명 대상에는 이 전 후보의 ‘최규선 씨 자금 20만 달러 수수설’과 한인옥 씨의 ‘기양건설 자금 10억원 수수설’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전 후보 측은 이를 3대 의혹사건으로 규정,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2월 새로 출범한 창사랑(회장 백승홍 전 의원)도 향후 조직의 활동 목표를 진상규명에 맞췄다. 백 회장은 “6월20일 창사랑 회원들이 대전에서 모여 이른바 3대 의혹사건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 및 수사 촉구 궐기대회를 연말까지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 회장은 창사랑 회원들과 전국을 돌며 진상규명을 촉구할 계획이다.

    “진상규명 목적은 차기 대선서 재발 방지”

    이 전 후보의 감정선이 출렁거린 다음날인 11일, 침묵하던 한나라당에서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강재섭 대표는 최고위원 중진 연석회의에서 “이런 사건이 모두 국민을 기만해서 이른바 공작에 의해 표를 모은 전형적 사건”이라 비판했다. 대변인실도 “즉각 진상조사에 나서라”고 여권을 압박했다.

    병풍 의혹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이 전 후보 측은 법적으로나마 의혹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단암빌딩을 지키고 있는 이종구(전 이회창 후보 공보특보) 씨의 설명이다.

    “패자는 말이 없지만, 이번 판결로 병역 의혹은 오로지 정권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야만적 정치공작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또다시 조직과 자금, 정보를 가진 집권여당의 제2, 제3의 공작은 일어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진상조사는 불가피하다.”

    한마디로 2007년에 있을지도 모를 제2의 공작을 방지하자는 것이 진상규명의 목적이라는 것. 그러나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될 경우 이는 단순히 과거 의혹에 대한 진실게임으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진상규명 작업은 이 전 후보의 정계복귀를 위한 절차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병풍 등 지난 대선을 관통했던 대부분의 이슈는 이미 법원에서 승소했다. 이에 대한 검증 작업이 이뤄질 경우 언론과 여론은 이 전 후보의 억울함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류를 타면 이 전 후보는 자연스럽게 정치 중심에 설 수 있다. 이 전 후보 측은 그동안 재판과 관련, 여러 곳에서 중재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 후보 측이 이를 거부했다. 한나라당 한 인사의 설명이다.

    “찬탈해간 권력 … 진상 규명하라”

    이회창 전 총재의 사무실이 있는 단암빌딩 전경(왼쪽). 2002년 8월 기자회견 중인 김대업 씨.

    “이 전 후보 측은 그동안 여러 곳에서 (재판과 관련) 원만한 ‘합의’를 요청받았다. 그러나 이 전 후보는 주변의 이런 의견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판결을) 기다렸다.”

    이 전 후보 측이 마지막 판결까지 기다린 뒤 모든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한꺼번에 제기, 명예회복과 정치적 기반 조성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한나라당 주변에는 그의 정계복귀와 관련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 전 후보의 정계복귀는 대선 출마와 킹 메이커론으로 크게 나뉜다. 이 전 후보가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는 당내 일부 인사들과 창사랑이 적극 주도한다. 백승홍 회장은 “이 전 후보가 연말께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 회장은 “은퇴 약속을 지키는 것도 아름답지만, 나라가 어려우면 이를 뛰어넘는 결단을 보이는 것도 정치 지도자의 몫”이라며 이 전 후보의 정계복귀 명분을 국가위기론에서 찾았다. 백 회장은 나아가 “이 전 후보가 때가 되면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후보의 정계복귀에 필요한 현실적 명분은 생각보다 훨씬 빈약하다. 더구나 정치 지형은 2년 전과 판이하다. 그를 위해 헌신할 조직도 사람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이 그를 ‘흘러간 물’로 보고 있다. 박근혜-이명박-손학규 등 3용(龍)의 보이지 않는 견제도 만만찮다.

    이런 한계를 읽은 일부 인사들은 이 전 후보의 몫을 당의 관리로 국한하는 이른바 킹 메이커론을 언급한다.

    킹 메이커론은 이 전 후보가 ‘대선 출마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치활동 재개의 명분으로 삼아 정계에 복귀, 반발 분위기를 피하자는 계산에서 출발한다. 대신 차기 대선후보 그룹과 보수세력 관리를 통해 정치적 활동공간을 확보한다는 것.

    그러나 킹 메이커론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찮다. 대선후보가 아닌 킹 메이커를 자임할 경우 과거와 같은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어렵다. 스스로 2인자를 자처하는 정치인에게 줄을 설 정치인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전 후보의 특보를 지낸 한나라당 한 인사는 “대선에 출마하면 몰라도 다른 역할(킹 메이커)을 한다면 굳이 내가 그의 옆에 설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킹 메이커 이회창이 아닌 대선후보 옆 자리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전 특보는 이 전 후보의 정치활동을 묻는 질문에 “이 전 후보는 정치활동 재개 문제가 거론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고 핵심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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