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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5월 2일 대선 후보 시절 ‘한국노총-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정책협약식’에서 말한 내용이다. “아프면 쉴 수 있고,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으며,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기조 아래 이 대통령은 주4일제, 상병수당, 정년 연장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표 참조). 기존 정부가 방향성만 제시하거나 도입을 미뤄온 영역에서 구체적인 제도 개편을 예고한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노후 고용 안정, 질병 시 소득 보장 등 직장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주4일제,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의 관심이 가장 컸던 노동 공약은 주4일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30년까지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주4.5일제를 먼저 정착한 뒤 장기적으로 주4일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자발적으로 주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는 세제 헤택과 노무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확산을 유도할 방침이다.그러나 주4일제 도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도입 초기 수혜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30대 이모 씨에게 주4일제는 ‘그림의 떡’이다. 그는 매주 이틀 이상을 퇴근 후 같은 회사 공장으로 향한다. 생산직 인력을 충원하지 못한 회사 사정 때문에 사무직임에도 업무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돌아가면서 주말 특근도 하는 마당에 중소기업이 주4일제를 도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5일제로 전환하던 시기인 2000년대 초와 지금은 노동환경도 다르다. 서비스업 종사 비율은 약 16% 증가한 반면, 제조업 종사 비율은 약 10% 줄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노동생산성이 낮아 근로시간을 줄이면 임금 감소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국내 전체 취업자 중 서비스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75%에 육박한다. 여기에 5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 플랫폼 노동자 등 제도 밖에 놓인 취약 노동층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법을 바꾸더라도 현장 여건이 성숙하지 않으면 불법·편법 관행이 지속되기 쉽다”며 “주4일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인건비 일부를 정부가 분담하는 방안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컨설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병수당은 시범운영, 정년 연장은 논의 중
상병수당은 업무 외 질병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울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 일부를 보장하는 제도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상병수당 확대를 공약했다. 5월 22일 페이스북 계정에 “아프면 쉴 권리인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모두에게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글을 올렸다.OECD 회원국은 대부분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2022년부터 상병수당을 시범도입했다. 1단계는 서울 종로, 경남 창원 등 6개 지역에서 시행돼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만 15~64세 취업자에게 최저임금 60%를 지급했다. 2023년 7월 시작된 2단계는 경기 안양 등 4개 지역에서 시행 중이다. 지급 방식은 동일하지만, 중위소득 120% 이하라는 소득 기준이 있다. 3단계는 충북 충주 등 4개 지역에서 일하는 만 15~64세 취업자를 대상으로 소득 제한 없이 직전 3개월의 평균 소득 60%를 지급한다. 당초 올해 본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2027년으로 미뤄졌다.
정년 연장 논의도 이재명 정부 들어 속도를 낼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저출생-고령화 대응 방안으로 법정 정년 연장을 제시했다. 60세인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늘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점과 퇴직 시기를 맞추는 것이다. 민주당은 정년 연장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9월까지 논의를 마무리하고, 12월까지 법제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년 연장이 논의되는 핵심은 소득 공백이다. 법정 정년은 만 60세지만, 국민연금은 만 62~63세부터 나온다. 2033년부터는 만 65세로 더 늦춰진다. 노동계는 수급 공백을 줄이려면 정년을 65세까지 늘려야 한다고 본다. 반면 경영계는 인건비와 청년 고용 위축을 우려해 선택적 계속고용제를 선호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정년을 연장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요즘은 ‘신노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노인 개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일할 수 있는 고령 인구는 계속 일하는 것이 건강과 생산성 측면에서도 이롭다는 얘기다. 조 명예교수는 “임금피크제나 선택적 고용제를 함께 설계해야 청년 고용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