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해군 P-3C 해상초계기. 해군 제공
끝까지 민간인 거주지 피한 해군 조종사들
이날 사고기는 터치앤드고 실시 중 다시 이륙해 상승하다가 변을 당했다. 이륙 후 상승·선회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기체가 안정을 잃은 것이다. 조종 안정성을 상실한 사고기가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한 민간인 거주지로 추락할 위기에 처하자 조종사는 기체를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야산에 추락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경주공항은 바다와 아주 가깝다. 게다가 당시 사고기는 터보프롭 엔진을 사용해 속도가 비교적 느린 상태였다. 리스크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 인근 바다에 불시착하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군 조종사들은 찰나의 순간에도 민간인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정신에 따라 스스로를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였을 4명은 그렇게 순국했다.군 당국은 최성혁 해군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아직 조사 초기 단계지만 조종 실수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을 개연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정조종사인 고(故) 박진우 중령은 1700시간, 부조종사인 고 이태훈 소령는 900시간 비행시간을 가진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조류 충돌이나 기상 급변에 따른 난기류 등도 원인으로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하지만 엔진이 4개인 터보프롭 항공기 P-3CK는 조류 충돌에 따른 사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당일 포항 기상이 양호했던 만큼 난기류에 의한 사고 개연성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추락한 사고기의 P-3CK 기체번호 10-0917 그 자체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P-3C 계열 초계기는 1995∼1996년 폐쇄된 생산 라인을 복원해 만든 8대와 2010년대 미국의 퇴역 기체를 ‘재생’한 8대 등 총 16대였다. 이번 사고기는 10-0917이라는 기체번호만 보면 2010년 생산된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1967년 1월 17일 미 해군에 인도돼 25년간 말 그대로 마르고 닳도록 사용되다가 퇴역해 애리조나 투산사막에 20년 동안 장기 보관돼 있던 기체를 가져와 복원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P-3CK는 기체를 완전히 분해한 뒤 거의 모든 부품을 교체·보강하고, 이를 재조립한 신품과도 같은 항공기로 소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체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P-3CK는 먼저 도입된 P-3C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사실상 다른 기체다. 애초에 P-3B 기체에 새로운 항공전자장비와 대수상레이더, 적외선·전자광학시스템, 통신 시스템을 얹은 것이기 때문이다. 공개된 ‘교체 장비’만 해도 주익과 수평안전판, 보조익·플랩·방향타·승강타·연료체계 구성 요소·유압장치 등 비행 제어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부품이 해당된다. 즉 P-3CK는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전 세계에 단 8대뿐인 기종이다. 그만큼 부품 수급과 정비에 문제가 생기기 쉬운 기종이라는 얘기다. 해군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P-3CK가 신뢰성 문제 때문에 ‘작전’보다 ‘훈련’ 용도로 주로 쓰인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다.

5월 29일 훈련 중이던 해군 P-3CK 해상초계기(원 안)가 경북 포항 동해면 야산에 추락하는 모습. 해군 제공
극악한 한반도 對잠수함 작전 환경
P-3CK가 마주한 작전 환경도 극악하다. 한반도 해역 수중은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하는 데 세계 최악인 환경으로 악명 높다. 동·서·남해 모두 수심과 해저 지형, 해수(海水) 성질이 달라 각기 다른 대잠 전술과 장비 세팅이 필요하다. 잠수함을 찾아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미 한반도 주변 바다는 북·중·러 잠수함의 천국이다. 서·남해에는 중국 북해·동해함대 핵잠수함 4척을 포함한 잠수함 40여 척이, 동해에는 핵잠수함 15척을 포함해 러시아 태평양함대 잠수함 24척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크고 작은 잠수함·정 80여 척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해군은 고작 16대의 초계기로 그 넓은 바다를 감시한다. 잠수함은 물론이고 주변국의 군함과 민간 선박, 중국의 불법조업 어선단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한번 뜨면 특정 해역만 감시하는 게 아니라 남해에서 동해로, 동해에서 남해로 수천㎞씩 비행한다. 참고로 한국처럼 북·중·러 위협에 맞서는 일본의 경우 한때 100대 넘는 해상초계기를 보유했고 현재도 75대를 운용 중이다.필자는 초계 작전에 나서는 P-3C에 동승한 적이 있다. 당시 초계기는 서해안을 훑고 내려가 남해와 제주 남방해역까지 순찰하고 돌아왔다. 처음 탑승했을 때는 임무 장비로 가득한 초계기에 왜 식사용 테이블과 화장실이 있는지 의아했다. 중·저고도 비행이라는 힘든 임무를 거의 매일 6~8시간씩 반복해야 하는 초계기의 운용 환경을 직접 보자 궁금증이 바로 해소됐다.
이처럼 한국 해군의 P-3C 계열 기체는 노후화와 기체 피로도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위중한 안보 위협과 전력 부족 탓에 혹사당하고 있다. 최근 신형 해상초계기인 P-8A 모델이 도입됐지만 6대에 불과하다. 결국 기존 노후 기체들이 앞으로도 계속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후 기체들의 임무 소요를 줄이려면 P-8A의 비행시간을 늘려야 한다. 카탈로그 제원만 놓고 보면 P-3C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비슷한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신형 P-8A는 운용 기지가 가진 한계 때문에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무안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통해 여유 공간이 충분한 활주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참사 당시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길이는 2797m였고 사고 기종은 보잉 737-8AS였다. 이 기종은 737-800 시리즈의 변형 중 하나로, 기본적으로 P-8A 해상초계기의 바탕이 되는 기종이다. 여객기로서 737-800의 공허중량(항공기 자체 무게)은 41.5t이다. 여기에 연료와 인원·화물을 만재했을 때 최대이륙중량(MTOW)은 79t이다. MTOW 상황에서 표준 이륙 활주거리는 2300m, 최소 착륙 활주거리는 2440m다. 그러나 군용기로 개조된 P-8A는 각종 임무장비와 무장이 추가됐기 때문에 기본 공허중량이 62.7t, MTOW는 85.8t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MTOW 최소 이륙 활주거리는 2652m로 증가했다. 착륙 활주거리 역시 자료마다 다르지만 약 2900m까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MQ-4C 무인 초계기, 30시간 임무 수행 가능
2023년 11월 20일 미국 하와이 카네오헤만 해병항공기지에서 착륙을 시도하던 미 해군 P-8A가 활주로를 이탈해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분한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오버런’ 사고였다. 사고가 발생한 기지의 활주로 길이는 2369m였다. 그런데 한국 해군이 P-8A를 배치한 포항경주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무안이나 카네오헤보다 훨씬 짧은 2133m다. 민군 겸용 공항인 포항경주공항의 경우 같은 737 계열 항공기를 사용하는 국내선만 취항하고 있다. 승객과 연료를 만재해 기체가 MTOW 상태일 경우 이륙이 불가능하고, 중량을 줄여도 착륙 과정에서 오버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활주로 양 끝단에 마을과 아파트, 공장이 있어 주변 부지를 수용해 활주로를 확장하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포항에 배치된 P-8A는 연료와 임무장비, 무장을 만재하고 날아오를 수 없다. 그만큼 임무 시간이 짧아진다는 얘기다.점증하는 수중·해상 위협에 기존 무기체계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워지자 각국은 무인 해상초계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일본·호주·폴란드 등 세계 각국이 RQ-4 글로벌호크를 개조한 MQ-4C 트리톤, MQ-9 리퍼를 개조한 MQ-4B 시가디언 등 무인 해상초계기를 운용 중이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해상·지상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MQ-4C는 고성능 AESA 레이더와 전자광학·적외선 센서를 갖췄다. 여기에 디젤 잠수함이 스노클링할 때 뿜어내는 탄화수소를 포착할 수 있는 센서까지 탑재한 채로 30시간 동안 체공하며 임무 비행이 가능하다. 이보다 소형인 MQ-9B도 AESA 레이더와 전자광학·적외선 센서, 수중 물체를 탐지·추적할 수 있는 소노부이까지 탑재하고 14시간 동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특히 MQ-9B의 경우 1000m 길이 활주로만 있어도 MTOW 상태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다. 비행시간 당 유지 비용 역시 미국 국방부의 2024 회계연도 자료 기준으로 3600달러(약 500만 원)로 7486달러(약 1030만 원)인 P-8A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해군 MQ-4C 트리톤 무인 해상초계기. 미국 해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