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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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비자금, 5·18민주화운동 왜곡 자양분으로 활용 개연성”

전두환·노태우 1조 원대 비자금 조성, 공익재단·기업 통해 후손 세습 의혹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입력2025-05-16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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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8월 28일 당시 영부인 이순자 여사(오른쪽)와 함께 청와대에 첫 등청하는 전두환 대통령(왼쪽). 동아DB

    1980년 8월 28일 당시 영부인 이순자 여사(오른쪽)와 함께 청와대에 첫 등청하는 전두환 대통령(왼쪽). 동아DB

    5·18민주화운동은 올해로 45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진상 규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0년 5월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시민들이 신군부에 맞서 일어난 항쟁임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군부는 5공 당시 ‘광주사태’로 지칭하며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갔다. 

    지난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는 40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 특수군이나 간첩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명시했다. 또한 헬기 사격은 물론, 보안사 등 국가권력이 5·18 유족과 피해 단체를 분열·와해하려고 공작을 펼쳤다는 의혹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진상 규명 불능’으로 남은 영역들이 있다. 바로 발포 경위와 책임자 규명이다. 5·18진상조사위는 책임자 규명을 위해 신군부 수뇌부, 현장 지휘관, 사병 등의 진술을 확인했지만 검증이 미흡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전두환·노태우, 지금도 5·18 왜곡 확대 재생산

    이처럼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아직도 미해결 과제로 남은 것은 1980년부터 10년 넘게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재임 기간 중 부정 축재한 막대한 자금을 장시간 은닉하고 세습해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탓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12·12 군사쿠데타 주역이자 신군부 독재를 이끈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5·18 왜곡에 앞장서 왔다. 전 전 대통령은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했음에도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는 북한이 개입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의심을 조장해 그의 회고록은 허위사실 유포로 금서가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회고록에서 “광주사태는 유언비어가 확산되면서 민심이 격앙됐다”며 5·18민주화운동을 유언비어 때문에 발생한 단순한 사태로 왜곡, 축소했다. 이에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5·18민주묘지를 찾은 아들 노재헌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가능한 한 빨리 회고록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노 원장은 이전에도 “(사실관계를) 바로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3월 발표된 한 교육시민단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59개 초중고교 도서관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주장을 담은 책 386권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에는 2018년 법원으로부터 출판·발행·인쇄·복제·판매·배포 및 광고 금지 판결을 받은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도 위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공공도서관 대부분에 비치된 것이 확인됐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 일가는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어린이용 만화전기를 출판해 전국 도서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에 당선한 노태우 대통령(왼쪽)이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동아DB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에 당선한 노태우 대통령(왼쪽)이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동아DB

    신군부 후예들, 비자금으로 자산 증식 의혹

    신군부의 5·18 왜곡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여전히 재력을 토대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군부 인사들은 5·6공을 거치면서 대통령, 장관, 안기부장, 국회의원, 군 요직 등을 독점하며 정부, 국회, 군에서 막강한 기반을 다졌다. 또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공익재단 등을 통해 과거 미화 사업을 해오고 있다.

    전 전 대통령 퇴임 후인 1985년 5공 비리가 불거지면서 이들의 정치자금 환수가 문제가 됐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는 전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 140억 원만 국고로 환수했을 뿐 개인 재산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놨다. 1997년 대법원은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전 재산 29만 원’이라는 발언과 함께 모르쇠로 일관했고 검찰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2023년 승소한 전두환 일가의 부동산 매각 대금 55억 원 환수 소송을 끝으로 미납금을 추징하지 못해 전체 추징금의 약 40%인 867억 원이 미납된 상태다.

    정부는 전 전 대통령이 살던 연희동 자택이라도 추징하려고 소송을 냈지만 올해 2월 법원은 전 전 대통령 사망으로 추징금이 소멸됐다며 정부의 부동산 소유권 이전 소송을 각하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7년간 1조 원에 가까운 불법자금을 챙겼고 이 중 상당 부분이 손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추징금을 완납한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 역시 비자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을 표방하며 대통령에 당선한 직후 전 재산이 5억2000만 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995년 4000억 원대 가명계좌와 비자금설이 폭로되면서 5000억 원 비자금 조성 사실을 털어놓았다.

    당시 검찰은 대통령 재직 중 35개 기업에서 받은 금원 중 직무 관련 대가성이 있는 뇌물로 인정된 범위에서만 수사를 진행해 4600억 원가량 비자금 규모를 밝혀냈다. 그중 사용처가 드러난 금액은 3690억 원으로 900여억 원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안방 비자금’ 등 총 1조 원대로 추산했지만 당시 검찰은 자택을 압수수색하거나 가족 수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친동생, 사돈에게 비자금을 맡겼다며 소송전을 벌였고, 결국 2013년 동생과 사돈이 대납하는 형식으로 16년 만에 추징금 납부를 마무리하며 면죄부를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재산분할 소송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옥숙 여사가 자필로 쓴 ‘904억 원’ 메모를 공개하며 비자금 논란이 재점화됐다. 메모에는 현금성 자산 218억5000만 원을 포함해 900억 원대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 보관처 등이 기록돼 있었고, 이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 확인 및 환수 과정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이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해 4월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해 4월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김 여사가 2000년쯤 차명으로 보험료 210억 원을 납부한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아들이 이끄는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에 147억 원을 기부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당 재단은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주로 하는데, 노재헌 원장과 재단 관계자들이 차명 회사를 통해 차명 부동산 투자를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10월 대검찰청에 노 전 대통령 일가를 비자금 은닉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이에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에 사건을 배당해 수사 중이며, 지난해 고발인 조사에 이어 재단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금까지도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소환 조사 등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 역시 압류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기관들이 신군부 비자금 환수에 소극적인 이유는 비자금 조성 시점이 30~40년 전이고 당사자들이 사망해 실체를 밝혀도 집행이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된 비자금을 적법한 자금으로 세탁했다면 현행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부칙에서 이 법 시행(2001년 11월 28일) 전에 발생한 범죄수익이라도 법 시행 후 해당 범죄수익에 대한 은닉·가장·수수 행위가 있었다면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응답자 73% “신군부 비자금 환수해야” 

    근본적으로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중대 범죄에 대해 추징 대상과 시효를 연장하는 입법 통과가 해법으로 제시된다. 22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 진보당 윤종오 의원 등이 연이어 관련법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에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계엄과 탄핵,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상황에서 신속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5월 13일 발표한 전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부정 축재한 비자금을 환수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3%가 ‘매우 필요하다’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신군부 범죄에 대한 역사적·법적 단죄를 하지 못하고 부의 세습까지 이뤄진다면 5·18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과거사 정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진정성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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