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가 세간의 화두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비롯된 ‘양극화 논쟁’은 대통령이 취임 2주년 연설에서 또다시 언급함으로써 정점에 달했다. 양극화에 대한 노 대통령의 최근 인식은 “비정규직이 늘고, 장사는 안 되고,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분명 지난해 우리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강변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때문에 항간에는 대통령이 이제야 서민들의 현실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식은 너무나도 피상적이며 그 해결책은 한마디로 ‘절망’이다.
대통령은 계층 간 소득격차를 양극화 현상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옳다. 그러나 서민들이 절망하는 소득격차는 대통령이 생각하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격차가 아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97년 경제위기 이후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민들의 상황은 그가 관리직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언제든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경제부총리라는 사람은 땅투기로 수십억원의 불로소득을 올리고도 정치적·도덕적 면죄부를 받고, 국민의 1%가 전 국토의 45%를 소유하며, 백화점의 사치품 코너는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판매고가 느는 현실. 이것이 서민들이 느끼는 양극화다.
대통령은 아직도 서민들 생각 너무 몰라
97년 경제위기 때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은 IMF가 요구하는 ‘경제위기 극복프로그램’이었고,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민영화, 금융자율화, 시장개방 등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훨씬 용이해졌고 노동자들, 중간층, 관리직 할 것 없이 일부를 제외한 서민 모두가 직장이 불안정해졌다. 사회공공서비스는 기업에 넘겨졌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가 정부의 경제위기 해결책이었고, 서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양극화의 정체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경제위기에 내놓는 정책은 그때와 한 치도 다를 바 없고, 심지어 장관들도 그 장관들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더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법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양보할 게 과연 있기나 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양보할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나 중간층들이 아니라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잘사는 ‘현대의 귀족’들이다.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의 한 방법으로 사회안전망을 거론했다. “최소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집값, 사교육비도 지속적으로 챙기겠다”는 게 바로 그것. 이를 실행할 방법으로는 교육과 의료의 산업화를 역설했다. 교육과 의료도 ‘서비스 산업’이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매년 유학비로 70억 달러, 해외진료비로 10억 달러가 들어가니 교육과 의료를 산업화해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이야기다.
이는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논리의 비약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기를 쓰면서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인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조금이나마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양극화의 본질이다. 해외진료비가 10억 달러라고? 이건 애초에 통계가 잘못되었다. 정부출연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외진료비는 최대 1억 달러에 그쳤고, 이조차도 대부분 귀족 자제 5000여명의 원정출산에 쓰인 돈이었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부실한 공교육제도 때문에 서민들은 가정도우미를 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고 집을 팔아서 아이들을 해외로 유학 보낸다. 그런데 학교를 영리법인화하고 ‘귀족학교’를 허용하면 교육문제가 해결되는가? 지난해에 1조5000억원의 의료보험 예산이 남았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몸이 아파도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돈이 없어 병원을 못 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병원을 아예 기업화하고, 건강보험에서 벗어나서 진료비를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귀족병원’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인가?
대통령이 말하는 양극화는 서민들이 인식하는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97년 해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뿐이다. 대통령은 양극화의 해결을 이야기하면서 정규직이 더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사회복지는 국가 책임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서비스 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 여러분, 새해 여러분 가정에 희망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과연 올 한 해 우리 서민들의 가정에는 희망과 행운이 가득할 수 있을까? 서민들은 해마다 계속되는 대통령의 이런 ‘관성적’ 안부인사가 아니라 진정한 양극화의 해소책을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은 계층 간 소득격차를 양극화 현상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옳다. 그러나 서민들이 절망하는 소득격차는 대통령이 생각하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격차가 아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97년 경제위기 이후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민들의 상황은 그가 관리직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언제든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경제부총리라는 사람은 땅투기로 수십억원의 불로소득을 올리고도 정치적·도덕적 면죄부를 받고, 국민의 1%가 전 국토의 45%를 소유하며, 백화점의 사치품 코너는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판매고가 느는 현실. 이것이 서민들이 느끼는 양극화다.
대통령은 아직도 서민들 생각 너무 몰라
97년 경제위기 때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은 IMF가 요구하는 ‘경제위기 극복프로그램’이었고,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민영화, 금융자율화, 시장개방 등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훨씬 용이해졌고 노동자들, 중간층, 관리직 할 것 없이 일부를 제외한 서민 모두가 직장이 불안정해졌다. 사회공공서비스는 기업에 넘겨졌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가 정부의 경제위기 해결책이었고, 서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양극화의 정체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경제위기에 내놓는 정책은 그때와 한 치도 다를 바 없고, 심지어 장관들도 그 장관들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더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법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양보할 게 과연 있기나 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양보할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나 중간층들이 아니라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잘사는 ‘현대의 귀족’들이다.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의 한 방법으로 사회안전망을 거론했다. “최소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집값, 사교육비도 지속적으로 챙기겠다”는 게 바로 그것. 이를 실행할 방법으로는 교육과 의료의 산업화를 역설했다. 교육과 의료도 ‘서비스 산업’이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매년 유학비로 70억 달러, 해외진료비로 10억 달러가 들어가니 교육과 의료를 산업화해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이야기다.
이는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논리의 비약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기를 쓰면서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인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조금이나마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양극화의 본질이다. 해외진료비가 10억 달러라고? 이건 애초에 통계가 잘못되었다. 정부출연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외진료비는 최대 1억 달러에 그쳤고, 이조차도 대부분 귀족 자제 5000여명의 원정출산에 쓰인 돈이었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부실한 공교육제도 때문에 서민들은 가정도우미를 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고 집을 팔아서 아이들을 해외로 유학 보낸다. 그런데 학교를 영리법인화하고 ‘귀족학교’를 허용하면 교육문제가 해결되는가? 지난해에 1조5000억원의 의료보험 예산이 남았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몸이 아파도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돈이 없어 병원을 못 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병원을 아예 기업화하고, 건강보험에서 벗어나서 진료비를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귀족병원’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인가?
대통령이 말하는 양극화는 서민들이 인식하는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97년 해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뿐이다. 대통령은 양극화의 해결을 이야기하면서 정규직이 더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사회복지는 국가 책임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서비스 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 여러분, 새해 여러분 가정에 희망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과연 올 한 해 우리 서민들의 가정에는 희망과 행운이 가득할 수 있을까? 서민들은 해마다 계속되는 대통령의 이런 ‘관성적’ 안부인사가 아니라 진정한 양극화의 해소책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