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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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 반도체 주고 희토류 받는 미국  

희토류 독점한 중국 견제… 사우디 데이터센터 건설 엔비디아 수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05-2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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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5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사우디 리야드 왕궁에서 열린 협정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5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사우디 리야드 왕궁에서 열린 협정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지역은 ‘아라비안 방패(Arabian Shield)’로 불린다. 홍해를 면하고 있는 이 지역은 선캄브리아대(Precambrian: 지구가 46억 년 전 형성된 때부터 5억4200만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시작 이전까지) 암석이 방패 모양으로 지표에 넓게 분포한 순상지(楯狀地)다. 알루미늄, 구리, 아연, 니켈, 텅스텐, 금, 리튬, 니오븀, 지르코늄, 티타늄, 베릴륨, 우라늄,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탄탈럼의 경우 전 세계의 25%가 이곳에 묻혀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우디는 이 지역에 매장된 미개발 광물 가치를 2조5000억 달러(약 3463조7500억 원)로 본다. 이는 2016년 추산치 1조3000억 달러(약 1801조1500억 원)의 거의 2배에 해당하며 탐사가 진행되면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사우디는 ‘희토류의 새로운 보고(寶庫)’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이하 현지 시간)부터 16일까지 사우디를 비롯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3국을 순방하면서 대규모 경제협력에 합의했다. 백악관은 대미(對美) 투자 유치 등 경제협력 규모에 대해 사우디 6000억 달러(약 831조3000억 원), 카타르 1조2000억 달러(약 1662조6000억 원), 아랍에미리트 1조4000억 달러(약 1939조7000억 원) 등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은 중동 3국 가운데 유독 사우디와 에너지·국방·자원 분야 경제협력을 내용으로 한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백악관은 “이 협정은 양국 에너지, 안보, 방위산업, 기술 리더십, 글로벌 인프라 및 핵심 광물 접근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사우디와 이 협정을 체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희토류 확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희토류를 차지하고자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를 자국으로 편입하겠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광물 협정을 자국에 유리하게 체결하려고 우크라이나를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21세기 첨단산업의 비타민’이라는 얘기를 들어온 희토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희토류의 ‘새로운 보고(寶庫)’로 떠오르는 사우디와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맺은 것이다. 

    사우디에선 석유를 ‘알라의 축복’이라고 부른다. 국토의 90%가 사막인 사우디가 오늘날 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검은 황금’인 석유 덕분이다.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2위 규모인 약 2683억 배럴로,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원유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이 때문에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자원인 원유를 대신하고자 ‘비전 2030’ 계획을 추진해왔다.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국가 개조 청사진으로 광공업, 관광업, 물류와 금융 등 탈(脫)석유 기반 경제개발 계획이다. 특히 비전 2030에서 중요한 부문은 석유를 제외한 광물 등 자원 개발이다. 사우디는 역시 ‘알라의 축복’ 덕분인지는 몰라도 석유 외에도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이 엄청나게 매장돼 있다. 

    ‘거래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을 간파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손잡고 희토류를 공동개발하는 대신, 사우디에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제공하기로 했다. 실제로 미국 최대 희토류 기업 MP 머티리얼스는 5월 14일 ‘미국-사우디 투자 포럼 2025’에서 사우디 국영 광산 기업 마덴(Ma’aden)과 사우디 내 희토류 공급망 구축에 나서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사우디 서부 지역에 매장된 미개발 광물의 가치는 2조5000억 달러(약 3463조7500억 원)로 추산된다. GETTYIMAGES

    사우디 서부 지역에 매장된 미개발 광물의 가치는 2조5000억 달러(약 3463조7500억 원)로 추산된다. GETTYIMAGES

    사우디와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

    마덴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 등 외국 기업 4곳 중 1곳과 희토류 파트너십을 맺는 것을 검토해왔다. 밥 윌트 마덴 최고경영자(CEO)는 MP 머티리얼스와 탐사·채굴부터 정제, 자석 생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희토류 공급망 개발에 협력한다고 밝혔다. 윌트 CEO는 “이 협정은 사우디의 비전 2030 계획에서 핵심 축인 광물산업 육성 전략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제임스 리틴스키 MP 머티리얼스 CEO도 “이 협정은 두 나라 간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계약으로 사우디는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채굴량의 70%, 정제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에 최첨단 AI 반도체를 제공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사우디 국부펀드가 소유한 AI 기업 휴메인이 추진하는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자사의 최신 고성능 AI 칩 ‘GB300’ 그레이스 블랙웰(Grace Blackwell) 1만8000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엔디비아는 이를 시작으로 향후 5년 동안 수십만 장의 AI 칩을 사우디에 제공해 500MW(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 규모는 70억 달러(약 9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500MW급 데이터센터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의 주요 거점 데이터센터(100MW급)의 5배에 달하는 대규모다. 

    엔비디아는 AI용 H20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 금지 조치로 상당한 손실을 입었는데, 계약으로 단번에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국-사우디 투자 포럼 2025’에서 계약 사실을 발표하며 “AI는 전기와 인터넷처럼 모든 국가에 필수 인프라”라면서 “휴메인과 손잡고 사우디 국민, 기업을 위한 AI 인프라를 구축해 왕국의 대담한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와 휴메인은 AI 기술력을 사우디 국민에게 확산하기 위한 대규모 교육·역량 강화 프로젝트도 병행한다. AI, 시뮬레이션, 로보틱스, 디지털 트윈 분야의 실무 교육을 통해 수천 명의 기술 인재를 육성해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목표인 경제 다각화와 디지털 리더십에 기여한다. 타레크 아민 휴메인 CEO는 “이번 협력으로 사우디는 글로벌 AI 혁신의 핵심 파트너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 경쟁사인 AMD도 미국과 사우디를 연결하는 데이터센터에 100억 달러(약 13조8700억 원) 규모의 칩과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 역시 휴메인과 함께 사우디의 ‘AI 존’ 건설에 50억 달러(약 7조 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메인은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 사업부의 기술을 사용해 사우디 정부용 ‘AI 에이전트 장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오른쪽)가 5월 14일 ‘미국-사우디 투자 포럼 2025’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오른쪽)가 5월 14일 ‘미국-사우디 투자 포럼 2025’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바이든이 만든 수출 규제 전면 개정

    엔비디아, AMD 등이 사우디와 AI 협력체제 구축에 나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5월 13일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AI 확산 규칙’을 철회하고 AI 칩 수출 규제를 전면 개정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3년부터 중동 국가들을 대상으로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최첨단 반도체 수출을 제한했다. 중동 국가들의 독재적 성향과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AI 확산 규칙’에 따라 자국 기업들이 별도 허가를 받지 않을 경우 중동 국가들에 연간 최대 1700장의 AI 반도체만 수출하도록 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별 등급에 따라 AI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방식 대신, 정부 간 개별 협상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즉 중국을 겨냥한 기존 조치는 그대로 유지하되, 다른 국가들에는 자국 첨단 반도체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사우디가 앞으로 AI와 희토류 분야에서 새로운 밀월 관계 구축을 통해 국제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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