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 홍태식
소버린 AI 시간 더 걸린다
‘7월 하락’을 예상하는 이유는.“시장 참여자로서 나도 내 전망이 틀렸으면 좋겠다(웃음). 하반기가 녹록지 않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매크로 때문이다. 7월에 미국 부채한도 협상이 있다. 의회 스케줄에 따라 증시가 크게 크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또 2년~2년 반 정도 되는 반도체 사이클도 이제 막바지다. 업황으로는 아직 2분기가 남았지만 주가는 6개월 선행하지 않나. 그래서 7월부터는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반기 내내 빠지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부채한도 협상은 통상 3개월 유예를 거친 뒤 타결되는데, 9월에 그 고비를 넘기면 연말에는 다시 반등할 수 있다. 그즈음 트럼프 관세 리스크가 둔화하고 감세정책에 대한 기대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만 특정해서 본다면 칩 수요가 강력하지 않나.
“이번 사이클에서 B2B(기업 간 거래)인 AI 반도체는 수요가 단단했다. 불경기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인 소비재(스마트폰·PC 등) 쪽은 수요가 살아나지 않았지만 AI 반도체는 어떤 이슈가 있든 굉장히 견조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미국 빅테크가 AI 자본적지출(CAPEX)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지는 불확실하다. 지금 AI CAPEX 증가율이 50%대 중반인데, 계속 줄어 내년엔 한 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감세정책으로 기업 주당순이익(EPS)이 오르면 투자 여력이 좀 더 생긴다. 소버린 AI로 기업에서 각국 정부로 수요처를 다변화하며 다시 한 번 랠리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소버린 AI는 재정 집행에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기업은 의사결정 속도가 다르다. 줄어드는 빅테크 (AI 칩) 수요를 소버린 AI로 릴레이처럼 이어가는 그림을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한 번 큰 공백기가 생길 수 있다. 그게 하반기 조정 요인 중 하나다.”
AI 반도체 쪽에선 ‘중국 자립’도 관건이다.
“당장 트럼프가 엔비디아 H100 (성능의) 20~25% 수준인 H20 칩도 팔지 말라고 하니까 중국 AI 업체들이 그동안 허접해서 안 쓰던 중국산 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컴퓨팅 파워 투자를 멈출 수는 없지 않나. 트럼프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우려를 받아들여 ‘B30’이라는 새로운 중국용 칩은 팔게 해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중국 정부가 물밑에서 AI 기업들에 화웨이나 캠브리콘 칩을 쓰도록 엄청나게 지원 내지는 강요를 할 것이다. 캠브리콘의 경우 올해 1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300%가량 증가했다. 미국의 수출 제재가 어느 정도 완화된다고 해도 엔비디아 칩을 아주 수월하게 살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중국 AI 칩 자립 속도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반기 투자, 미국보단 한국
그런데도 왜 국내는 괜찮다고 보나.“국내 반도체주는 그동안 가격이 너무 쌌다. 국내 증시가 가진 여러 약점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문제들을 상법개정안 등 법제화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그러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이뤄질 테고, 현재 역대 최저로 떨어진 외국인 수급이 증가하면서 반도체주가 기저 효과를 누릴 것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는 DJ(김대중 정부) 시절 ‘인포메이션 하이웨이’로 인터넷 인프라를 깔았던 것처럼 이번 반도체 혁명에서도 산업정책과 금융정책이 같이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부 투입 자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증시를 부양해 민간 쪽에서 자금을 끌어오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DJ 때 ‘IT(정보기술) 버블’을 겪은 사람들은 조만간 그때 못지않은 상승장이 올 거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이번 반도체 사이클에서 한국은 대만이나 일본에 비해 덜 민감하게 움직인 측면이 있는데, 이게 뒤늦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투자처로는 역시 SK하이닉스가 꼽히나.
“하반기로 한정해 본다면 고대역폭메모리(HBM) 밸류체인이 가장 무난하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HBM 소부장(소재·부품·장비), AI 인프라용 에너지, 원전 등을 들 수 있다. 또 최근에는 한국 AI 발전을 위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한국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전자정부를 운영해온 나라다. 그때부터 쌓은 막대한 데이터를 지금까진 전혀 활용하지 못했는데, 이걸 풀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글과컴퓨터, 쿠콘 같은 AI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가 많이 올랐다. 솔트룩스 등 에이전트 AI 개발 기업도 최근 주가 흐름이 괜찮다.”
앞으로 정부 정책 수혜를 가장 많이 받게 될 반도체 분야는.
“산업의 낙수 효과 차원에서 주문형 반도체(ASIC·에이식)에 가장 힘을 주는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독대한 뒤 ‘엔비디아 칩 10만 장 조기 확보’라는 기존 계획을 5만 장 확보로 줄이고, 그 대신 ASIC을 많이 쓰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런 다음 국내 대표 ASIC 업체인 퓨리오사 AI를 방문했다. 내 추측으로는 이재용 회장을 만나 삼성 파운드리에 대해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TSMC와 기술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는 아무리 ASIC을 밀어준다고 해도 설계 및 제조를 위해서는 TSMC를 찾아가야 한다. 우리 혈세가 TSMC로 가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에 투입하겠다는 100조 원은 정말 귀한 돈이다. 적자 국채까지 발행해 마지막 한 발을 쏘겠다는 것 아닌가. 자금 투입이 최대 효과를 내려면 산업에서 우리 생태계가 커져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ASIC과 파운드리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이재명 정부 ASIC 힘준다
하반기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조언한다면.“반도체는 사이클을 보고 투자하는 게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질서가 바뀌었다. 이제는 매크로가 반도체 사이클을 잠식해버린다. 배 위에서 배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만 봤는데, 이제 밖에서 엄청난 파도가 덮쳐 오는 것이다. 경기가 안 좋은 상태에서 반도체만 좋아진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AI 반도체는 군비 경쟁 성격이 있어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도 막 투자하지만, 이것도 돈이 말라버리면 더는 하기 힘들다. 거시 환경을 잘 살펴야 할 때이고, 그런 점에서 정책 수혜가 있는 국내가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