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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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거장 피닌파리나·엔초 페라리·맬컴 세이어 디자인 유산

[조진혁의 Car Talk] 포르쉐·페라리·재규어 등 고성능 자동차 뿌리로 자리 잡아

  • 조진혁 자유기고가

    입력2024-06-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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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산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탁월한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였던 그들은 다비드 석상을 빚듯 자동차를 조형했고, 강력한 성능을 품은 아름다운 형상의 탈것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 후 자동차 산업은 달라졌다. 자동차는 성능이나 쓰임만큼 보기도 좋아야 하는 물건이 됐다. 디자인이 가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자동차 산업 태동기에 디자인 언어를 정립한 거장들의 유산은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기능성을 추구한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의 철학이 담긴 1938년 포르쉐 356의 DNA는 오늘날 포르쉐 타이칸에서도 발견된다.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정립된 디자인 언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정교해지고, 더 확장돼가고 있다.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디자인 철학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엔초 페라리의 디자인 철학은 페라리의 기조가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공개된 자연흡기 12기통 모델 ‘페라리 12칠린드리’. [FMK 제공]

    엔초 페라리의 디자인 철학은 페라리의 기조가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공개된 자연흡기 12기통 모델 ‘페라리 12칠린드리’. [FMK 제공]

    이탈리아 스포츠카 역작 설계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와 대표작, 탁월한 감각과 심미성을 한 단어로 축약하면 세르조 피닌파리나(Sergio Pininfarina)라고 하겠다.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피닌파리나는 최초로 독립적인 디자인 하우스를 열어 이탈리아 스포츠카 역작들을 설계했다. 피닌파리나 디자인 하우스는 스포츠카의 혁신적 동력 기술을 우아하게 포장하는 기술이 남달랐다. 대표작은 유려한 곡선의 1966년 ‘알파 로메오 두에토 스파이더’다. 소복이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반질반질한 동산을 이룬 듯한, 매끄럽게 이어지는 곡선은 피닌파리나의 특기다. 이는 보기 좋은 것에 그치지 않고, 공기역학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기능을 품은 우아함이라 하겠다. 피닌파리나의 철학은 페라리나 마세라티 같은 이탈리아 스포츠카에서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 이탈리아 클래식을 표방한 페라리 로마의 길고 날카로운 보닛에선 피닌파리나의 디자인 유산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됐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빽 투 더 퓨쳐’의 들로리안 DMC-12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자로가 디자인했다. [IMDB 제공]

    영화 ‘빽 투 더 퓨쳐’의 들로리안 DMC-12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자로가 디자인했다. [IMDB 제공]

    조르제토 주자로(Giorgetto Giugiaro)는 이탈리아 디자이너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사실 20세기 중반 이후 자동차 디자인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도한 업적을 놓고 보면 20세기 자동차 역사의 절반은 그가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모델은 폭스바겐 골프, 란치아 델타, BMW M1 등 실용성이 돋보이는 차량들로 직선의 미학이 강조된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보다 더 명확한 직선을 가진 영화 ‘빽 투 더 퓨쳐’의 들로리안 DMC-12도 그의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현대자동차 포니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직선에 실용성을 겸비한 폭스바겐 골프 8세대에서도 주자로의 유산을 가늠할 수 있다.

    스포츠카 개념 다시 세운 엔초 페라리

    영국은 과거부터 자동차를 아름답게 만들 줄 아는 나라였다. 롤스로이스, 랜드로버, 재규어 등 오늘날에도 영국 자동차 브랜드는 특유의 기품이 서려 있다. 이미 솟을 만큼 솟은 영국 귀족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 건 맬컴 세이어(Malcolm Sayer)다. 항공기를 설계하던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로 업종을 변경한 후 자동차를 비행기처럼 만들기 시작했다. 1950년대 재규어는 앞쪽에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팽팽한 이두박근 같은 자태는 지금 봐도 근사하다. 하지만 비행기를 설계하면서 공기 저항을 낮추는 방법을 연구해온 그는 유달리 긴 비율을 가진 1961년 재규어 E-타입을 공개했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으로 바람을 얇게 저미고 들어갈 것 같은 형상이다. 항공공학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디자인 접근 방식이 공기역학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맬컴 세이어의 디자인 유산은 재규어 최신 모델 F-타입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페라리 창립자 엔초 페라리. [GETTYIMAGES]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페라리 창립자 엔초 페라리. [GETTYIMAGES]

    그리고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있었다. 1988년 작고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페라리 창립자다. 엔초 페라리는 레이싱에 대한 열정과 성능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통해 스포츠카 개념을 다시 세웠다. 페라리의 디자인과 기능 철학은 “페라리는 항상 페라리여야 한다”이다. 참으로 페라리답다.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젊은 시절 엔초 페라리는 수많은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드라이버였고, 페라리 차량의 숨 막히는 자태를 보면 이를 수긍하게 된다. 페라리는 레이싱 대회에서 더 빠르고 강력한 성능을 보이기 위해 공기역학적 디자인과 가벼운 소재, 강력한 엔진을 조합했다. 이러한 철학은 페라리의 기조가 돼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 공개된 자연흡기 12기통 ‘페라리 12칠린드리’는 가장 순수한 페라리 DNA를 담아낸 모델로 평가받는다. 1950년대와 1960년대 그랜드투어러에서 영감을 받아 우아함과 폭넓은 사용성, 완벽한 성능 조화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거장의 디자인 철학은 자동차 외형에 그치지 않고 성능과 기술, 사용자 경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르조 피닌파리나의 우아함, 조르제토 주자로의 실용성, 맬컴 세이어의 공기역학, 엔초 페라리의 타협 없는 성능 중심 철학은 각 브랜드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브랜드들이 혁신을 거듭할 수 있는 건 그 단단한 근본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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