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관상학적 편견을 가지고 수사할 때 오히려 혼선을 빚는다고 말한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현장 검증 모습.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박두만 역)는 자신의 육감이 최고라고 믿는 시골 형사로 나온다. 그는 연쇄살인 용의자로 생각되는 이들의 사진을 수첩에 붙여놓고 한 명씩 소환한다. 보기에도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들. 이렇게 자신의 ‘눈’을 강조하며 수사하지만, 객관적 증거를 믿는 서울 형사 김상경(서태윤 역)에게 조소만 받을 뿐이다. 송강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가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구하며, 범인의 신체적 특성을 유추해 목욕탕에서 잠복근무를 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수사를 벌인다.
최종 용의자는 3명. “향숙이는 예뻤다”를 외치는 박노식(백광호 역), 성도착증 환자 류태호(조병순 역), 범인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곱상한 박해일(박현규 역). 결국 박해일이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히지만, 관객은 물론 영화 속 형사들까지 미소년 같은 그가 과연 천인공노할 연쇄살인범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영화는 끝내 누가 범인인지 드러내지 않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타락의 낙인’에 대한 오랜 믿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우리 반응은 둘로 나뉜다. 흉악하고 험상궂은 얼굴이라면 “그럼 그렇지, 범죄 저지를 관상이네”라 하고,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얼굴이거나 잘생긴 얼굴이라면 “아니, 저런 사람이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지?”라며 놀라워한다. 살인범은 정말 사람을 죽일 만큼 잔인하게 생겼고, 사기꾼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할 듯한 교활한 얼굴이며, 강간범은 변태 성욕자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를 관상은 따로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외모로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서양 관상학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왔다. 16세기에 살았던 최초의 범죄학자인 델라 포르타는 범죄자의 신체적 특성과 범죄유형 사이에는 분명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도둑들은 작은 귀, 짙은 눈썹, 작은 코, 자주 움직이는 눈, 날카로운 시선, 벌어진 입술, 길고 가는 손가락을 가졌다”고 기록했다.
관상학이 과학의 외피를 쓰고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된 것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범죄학자 롬브로소에 의해서다. 그는 범죄의 원인을 신체적 특성과 결합한 범죄인류학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범죄자론’에서 두개골과 귀의 모양, 안면의 뼈와 이마 모양, 입술과 치아, 머리카락 등이 범죄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롬브로소의 뒤를 이어 20세기 초 미국의 인류학자 E.A. 후턴도 ‘범죄와 인간’이라는 저서에서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은 살인자나 강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왜소한 사람은 절도범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작고 살이 찐 사람은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이들은 관상과 범죄를 연결하는 자신들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포장했다. 수많은 사례를 분류하고, 통계를 통해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관상학이 ‘과학적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한 학문임을 강조했다. 관상학이 주장하는 객관성을 부정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렇게 서양의 관상학이 범죄와 관상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집중한 반면, 동양의 관상학자들은 개인의 기질과 범죄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동양, 특히 한국의 관상학자들은 ‘범죄형’ 관상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난폭한 기질을 가진 얼굴형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범죄자들은 비록 외모가 평범하거나 곱상하기까지 하더라도 폭력 기질이 얼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눈빛이다. 그들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백이면 백’ 광기 어린 눈빛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들의 눈빛도 이들의 분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상자기사 참조). 관상 전문 사이트 ‘페이스인포’ 최필진 대표는 “범죄자의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광기를 읽을 수 있다”며 “눈썹이 지나치게 짧다거나 눈동자가 중심에 있지 않고 상하좌우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에서도 자기 성격을 못 이기고 범죄를 저지르는, 욱하는 성격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관상과 범죄는 전혀 무관”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 학자와 전문가는 관상과 범죄의 관련성은 전무(全無)하다고 말한다. 두개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심적 특성, 운명 등을 추정할 수 있다는 ‘골상학’을 비롯한 범죄와 관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미 20세기 초에 수명을 다했다고까지 표현한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범죄와 관상이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경찰관 개개인의 처지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얼굴상을 얘기할 수 있지만, 그것을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관상이 있다’는 식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표 교수는 “범죄에 대한 관상학적 접근이 해부학, 통계학, 생리학 등 여러 학문을 동원하며 마치 합리적인 과학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이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덧붙였다.
수사 실무에서도 관상과 범죄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한 강력계 형사는 “과학수사를 강조하는 요즘 경찰이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관상을 보며 수사한다면 아마 여러 명 옷을 벗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경찰수사연구원 오지형 교수실장은 “예컨대 ‘범죄를 많이 저지를 얼굴’이라는 식으로 예단했다가는 수사에 혼선을 빚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용의자의 관상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범죄와 관상(인상)의 관계를 가르치는 ‘범죄인상학’은 수사과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
경찰 소속 몽타주 요원들은 외모와 특정 범죄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조한다. 가운데 사진은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몽타주(좌). 20세기 초반 나치는 관상학적 편견에 사로잡힌 인종차별주의로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어린이의 눈을 통해 인종차별의 허구성을 비판한 영화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
관상학적 편견은 인종차별주의 근원
범죄와 관상이 과학적으로 무관한데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범죄는 특정 외모의 소유자가 저지르는 행위로 인식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아름다운 것은 곧 선한 것’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겉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악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문제는 관상학적 편견이 선입견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관상학적 편견은 대상의 속사정까지 정확하게 알고 판단한 것이라기보다는 첫인상만 보거나 외모, 사진 등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예단해서 내린 결정이다. 이처럼 섣부른 선입견은 대상에 대한 이유 없는 불신과 증오로 확대 재생산된다. 연세대 사학과 설혜심 교수는 “관상학이 인종이나 계급을 구별하는 표지로 쓰일 때 그것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기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는 관상학적 편견으로 인종을 차별하다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20세기 전반의 관상학은 외모를 지적, 윤리적 자질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진화론 및 우생학과 결합해 ‘타락의 낙인’이 유전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독일의 나치는 관상학적 편견을 수용해 열등한 인자들을 ‘품종개량’ 차원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반유대주의를 내걸었고 실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는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인종차별주의에는 외모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극단적인 관상학적 개념이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도 관상학적 편견에서 비롯된 말을 무심코 내뱉는다. “저 사람은 잘 놀 것 같다” “청순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얼굴을 보니 성격이 까다로울 것 같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그런 관상학적 편견이 애꿎은 희생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관상학적 편견 그 자체가 타인에게 저지르는 범죄일지 모른다.
※ 참고 문헌 : ‘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설혜심), ‘Crime and the Man, 1939’(E.A. Hoo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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