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끼워준 결혼반지
한 백화점 문 앞을 지나는데 광고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세계보석박람회 홍보전단이었다.영롱한 빛깔의 보석들이 휘황한 조명등 아래서 저마다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세팅된 반지, 목걸이나 귀고리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
200003092006년 02월 15일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적막했던 집안에 훈풍이 불고, 닫혀 있는 방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다. 큰애네 내외가 태석이 손을 잡고, 일곱 달짜리 손녀를 안고 들어선다. 연이어 둘째네 내외도 아홉 달짜리 손녀를 안고 들어선다. 막…
200003022006년 02월 06일아름다운 여인
어느 날 은행 창구에서 화사한(?) 여인을 만났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온갖 치장을 다한 모습이었다. 의사의 손길을 빌린 듯한 쌍꺼풀 위에 선이 굵은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었고 눈썹은 날아가는 새 모양 같고, 손톱엔 파란 …
200006292006년 01월 31일샌디에이고의 오렌지 꽃향기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첫째, 넓은 뒷마당에 반해서였고 둘째,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집 근처에 있어서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유년시절의 추억을 듬뿍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고국에서 어린 시절 18년 동…
200006222006년 01월 25일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얼마 전 1남2녀의 장남이자 집안의 장손인 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집안의 경사인 덕분에 온 식구는 들뜬 분위기였다. 특히 처음 치르는 혼사라 부모님의 마음은 더욱 분주하신 듯했다. 결혼식 예법은 물론 손님 접대 방…
200006152006년 01월 10일선생님과 우산
한때 촌지 비리 때문에 선생님들이 여론의 표적이 되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그런 소문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기를 기대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200006082005년 12월 23일냄비를 닦아보자
모처럼 유리창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창가에 기대앉아 한가롭게 차를 마셨다. 맑은 유리창 너머에서는 여름을 재촉하듯 따가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유리창 청소를 시작한 김에 대청소를 벌였다. 주방기구들도 윤이 나도록 닦았…
200006012005년 12월 05일잊지 못할 산행
몇 년 전 선배언니와 함께 산에 올랐었다. 모처럼의 외출이라 사진기도 메고 김밥도 싸고, 소풍가는 초등학생의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꽤 가파르고 험했다. 산을 탄다는 표현보다는 …
200005252005년 12월 02일소꿉친구와의 추억
나에게는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다정하게 지내던 분옥이란 소꿉 친구가 있다. 분옥이와 함께 지낸 나의 어린 시절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집 앞 냇가에서 종이배를 띄우기도 하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
200005182005년 11월 17일“할머니 사랑해요”
뒤늦게 깨달은 할머니의 사랑을 적고자 펜을 들어본다. 금년 1월에 할머니가 계신 철원으로 왔다. 할머니가 얼음판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나는 그 구실을 핑계삼아 병원과 시골집을 오가며 착한 손녀 노릇을 할 …
200005112005년 11월 01일우리 동네 작은 논
밤새 목이 아파 뒤척이다 일어난 아침. 창문을 연 순간 너무 반가웠다. 7층 우리집에서 내다본 학교 앞 작은 논에는 밤새 물이 가득 차 있었다.벌써 두달째 계속되는 목타는 봄. 강원도에서는 산불이 크게 번져 주민들이 배를 타고 바다…
200005042005년 10월 17일노랑머리와 나팔바지
요즘은 어디를 가나 노랑머리의 젊은이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어디 노랑머리뿐인가. 빨강 보라 초록… 동화책에서나 봄직한 낯선 모습들이다. 전에는 머리카락 색이 검지 않으면 노랑쟁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는데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
200008312005년 10월 14일15년 만에 만난 개구장이들
세월이 유수(流水) 같다는 표현을 요즘같이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최근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15년 만에 만나 어릴 적 추억들을 화제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때 새록새록 되살아난 그 시절의 즐거운 기억들로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다.우…
200008242005년 09월 26일사오정 커플
“당직 서느라 피곤하고 출출할 텐데 딱 한잔만 하자.” “그래, 그럼 정말 한잔만이다.”번번이 회사 동기의 술친구 제안을 무시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실내 포장마차에 마주 앉았다.사오정 시리즈 하나 못 외우면 미개인 취급받던 시절…
200008172005년 09월 21일그 여자의 손
내 취미는 손금보기다. 아니 손 들여다보기라 해야 옳다. 누구나 다 알 만한 얄팍한 상식 몇 가지로 되지도 않는 사설을 국숫발 뽑듯 뽑아내니까.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엉터리 사주풀이에 아주 즐거워한다는 것이다.어쨌든 나…
200008102005년 09월 05일좋은 거짓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깜박 잊어버려 본의 아니게 거짓말하는 부모가 될 경우도 있다. 거짓말이 반복되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로 뒤덮인 21세기를 살…
200008032005년 08월 18일반갑지 않은 물난리 추억
장마와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갔다. 이때가 되면 비만 와도 온몸이 찌뿌드드하다는 외할머니의 신경통이 걱정되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수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유독 물난리를 많이 겪었기 때문일까. 시뻘건 흙탕물이 혀를 낼름거리듯 집안…
200007272005년 08월 08일어머니 4주기에
여름날의 짙푸른 한나절이 그 수명을 다하고 지금은 땅거미가 스멀스멀 내려앉는 밤의 길목이다. 창문 밖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환한 불빛이 어둠을 부르고 있는 것 같다.거실에서 아이들이 사촌간의 우애를 다지는 앙증스런 소리가 들려온다. …
200007202005년 07월 26일남편의 빈자리
“나, 울릉우체국으로 발령났어.” “뭐? 놀리지 마.” “정말이야.” “농담이지? 사실대로 말해!”“진짜야, 1월4일자야.”작년 12월31일 오후 늦게 남편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승진하고 대기중인 상태로 6개월이 지났기에 곧 발령이…
200007132005년 07월 21일초록의 계절에
초록이 춤춘다. 빗속의 군무가 흥겹다. 싱싱함을 되찾은 가로수들의 율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때로는 성난 파도처럼, 때로는 뭉게구름처럼 강약을 되풀이하는 모양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열정적인 몸짓 같다. 게으른 봄비 탓에 대기는 …
200007062005년 0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