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막살이 돌밭에서 차 마시며 살리라
이른 아침에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烏竹軒)으로 가본다. 보물 제165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우리나라 민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라고 한다. 검고 가는 오죽들이 학 다리처럼 늘씬하다. 바로 저 반듯한 집에서 율곡이 태어…
200510112005년 10월 05일차 한 잔 속에서 주역 이치를 읽다
포은 정몽주의 혼을 만나려면 개성 선죽교를 가야 하리라. 그러나 분단 시대를 사는 나그네는 충렬서원 위에 있는 포은의 묘소 앞에서 ‘단심가(丹心歌)’의 결기를 느껴본다. 포은이 차를 마시고 다시(茶詩)를 쓴 때는 말년이 아닌가 싶다…
200510042005년 09월 28일영아차 마시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솔솔
나그네가 사는 데서 30여 리 떨어진 곳에 개천사라는 절이 있다. 개천사 스님들은 고려 때 이미 차를 만들어 마셨던 것 같다. 이색이 ‘개천사의 행제(行齊) 선사가 부친 차에 대하여 붓을 움직여 써서 답장하다’라는 다시(茶詩)에서 …
200509202005년 09월 13일산승의 가풍은 차 한 잔이 전부라네
지금 나그네가 가고 있는 신륵사는 나옹선사가 열반한 곳이다. 나그네는 일찍이 나옹선사의 그림자를 좇아 만행한 적이 있다. 선사가 흘린 향기로운 발자국을 줍고 다녔던 것이다. 오대산 북대 미륵암에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
200509132005년 09월 09일절대 고독 달래주던 마음의 벗
추사 김정희 고택을 가는 도중에 동행한 후배가 묻는다. 산중에서 혼자 사는 것이 외롭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그네는 외로움이 힘이라 말한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기에 불편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어떤 날에는 혼자 마시는데도 찻잔을 두 …
200509062005년 08월 31일세상이 차의 청허함을 알겠는가
진정한 다인이 되려면 직접 차씨를 심고 길러 차를 덖어 마셔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노동의 신성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 비승비속(非僧非俗)이 되어 설잠(雪…
200508302005년 08월 25일차 한 잔에 도학사상 녹여낸 茶父
다인들은 한재(寒齋) 이목(李穆)을 차의 아버지(茶父) 혹은 다선(茶仙)이라고 부른다. 그가 남긴 ‘다부(茶賦)’는 1321자의 짧은 차 노래지만 이목의 선비사상과 도학정신, 차에 대한 안목의 깊이를 헤아려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
200508162005년 08월 12일정직을 맹세하는 깨끗한 차 한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당파에 따라 칭송과 비판이 극명하게 갈리는, 조선 후기의 학자 우암 송시열의 생애도 그렇다. 그러나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사후에 그를 제향하는 서원이 전국적으로 70여 개소, 사액서원만도 …
200507122005년 07월 07일작설차의 영묘한 공덕 헤아리기 어렵네
화개에서는 작설차를 사투리로 ‘잭설차’라고 부른다. 그 잭설차는 우리가 아는 작설차와 다르다. 화개에 대대로 전해져오는 작설차는 차를 우렸을 때 황색이 나는 발효차인 것이다. 그런데 작설차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가 있었으니,…
200506282005년 06월 23일차 마시는 마음에 하늘과 구름 어리네
이른 아침, 낙산사에서 나와 강릉 가는 길에 선교장(船橋莊)을 들른다. 선교장의 다정(茶亭)인 활래정(活來亭)을 보기 위해서다. 이른 아침이어선지 선교장에 든 사람은 나그네 일행뿐이다. 서울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친절한 자원봉사자가 …
200506212005년 06월 16일한 줄기 차 향기 석양을 물들이네.
서울 강남에 봉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법정스님에게서 당신이 봉은사 다래헌에 계셨을 때는 강북에서 절을 가려면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는 가히 상전벽해(桑…
200505312005년 05월 27일‘茶禮’ 정립한 예학의 태두
나그네가 서원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사계 김장생 선생이 제자를 양성한 ‘돈암서원’이다. 돈암서원은 우리나라 3대 서원 중 하나이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예외적으로 보존되었던 곳이지만, 그런 역사적인 이유보다는 …
200505242005년 05월 20일차 달이는 향기 바람결에 전해온다네
상백운암(上白雲庵)은 전남 광양의 백운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암자(해발 1040m)로, 현대의 고승인 구산 스님이 9년 동안 수행한 곳이다. 암자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처진 바위는 힘찬 기운을 뿜어내고, 차 맛을 내는 조건 중 최…
200505032005년 04월 28일우통수 샘물로 차를 달여 마시리
전남 장성군을 지나다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장성군에서 내건 광고판에 ‘홍길동의 고장’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실존인물인가 싶어 ‘조선왕조실록’을 열람해보았더니 연산군에서 선조 때까지 ‘도적의 괴수’라는 내용으로 여…
200504122005년 04월 08일茶 대중화 이끈 ‘일등공신’
차를 대중화하는 데 효당 최범술만큼 공헌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다도계의 정설이다. ‘한국의 차문화’ 저자 운학 스님도 “효당의 다통(茶統·차살림)을 일본식이라고 평하는 경향이 있지만, 설사 그의 다통에 그런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오…
200503292005년 03월 24일차를 닮은 성품 … 향기로운 선비
학포당(學圃堂)은 기묘명현(己卯名賢·조선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사류) 중 한 사람인 양팽손의 독서당이고, 쌍봉사는 천년 고찰이다. 나그네가 학포당과 지척에 있는 쌍봉사를 하나로 묶어 얘기하는 까닭은 공통분모가 있기 …
200503152005년 03월 10일차 한잔에 말년의 고독을 달래고
전남 진도는 삼별초의 한이 서린 섬이다. 지금 나그네가 넘고 있는 고개 이름도 왕고개다. 왕 무덤이 있는 고개인데, 삼별초가 주군으로 섬긴 왕온은 소수의 삼별초 군사로 1만여명의 여몽연합군에 맞서 10여일 동안 격렬하게 항전하다 이…
200503012005년 02월 24일다산도 홀딱 반한 茶만드는 솜씨
동백꽃이 굵은 눈물처럼 뚝 떨어진다. 작은 부도 앞에도 낙화한 동백꽃들이 흩어져 있다. 나그네는 전남 강진군 백련사 왼쪽 동백나무 숲에서 강진만을 눈에 담는다. 산자락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찻잔처럼 아담하다. 술병이 나 일찍 요절한…
200502222005년 02월 17일차와 바둑을 사랑한 ‘서릿발 처사’
커다란 종처럼 하늘 아래 매달린 지리산 천황봉의 정기는 경남 산청군 어디서나 느껴진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여생을 보내면서 후학을 가르치고 국정에 대해 헌책(獻策)한 곳도 마찬가지다. 3칸 기와집 산천재(山天齋)가 있는 경남…
200501252005년 01월 19일백성 위해 차밭 조성 ‘愛民 실천’
한겨울 햇살이 축복처럼 따사롭게 쏟아지고 있다. 나그네는 지금 김종직(金宗直)이 경남 함양군수 시절 조성했다는 관영(官營) 차밭 터를 가고 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차밭을 만든 것은 아마 이것이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점필재(畢…
200501112005년 01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