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에서 옛 향기를 보았다
사람의 마을에 세월이 살금살금 흘러가는 것처럼 긴 세월 살아온 나무줄기 위에도 세월의 풍진이 내려앉았다. 수백 년 동안 나무 위로 소복이 내려앉은 눈, 비, 바람 그리고 그를 스쳐간 사람의 목소리와 향기를 나무는 잊지 않는다. 사람…
201101312011년 01월 31일엄동설한에 더 싱그러운 푸름이여!
시작은 한 톨의 작은 씨앗이었다. 언 땅에 뿌리내린 씨앗은 눈 쌓인 흙을 뚫고 솟아올라 큰 나무로 자랐다. 홀로 서는 힘이 없어 줄기와 가지에서 나는 잔뿌리로 바위 절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송악이다. 행여 생명의 끈을 놓칠세라 …
201101242011년 01월 24일벌·나비 없어 더 화려한 자태인가
바람 차다고 모든 생명이 움츠러드는 건 아니다. 더러는 진작 잎을 떨어뜨리고 고요히 겨울을 보내지만, 여느 봄꽃 못지않게 화려한 노란 빛깔을 뽐내며 피어난 꽃이 있다. 뿔남천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뿔남천도 꽃을 피우는 건 씨앗…
201101172011년 01월 17일생명을 틔워 올린 순백의 겨울눈
갯내 진하게 묻어나는 바닷바람 맞으며 살아가는 곰솔이 새해를 축복하는 촛불을 밝혔다. 순백으로 돋아난 겨울눈. 뭍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겨울눈이 붉은 기운을 가진 것과 달리, 곰솔의 겨울눈은 곱디고운 흰색이다. 푸른 잎 가운데에서 환…
201101102011년 01월 10일그리움이 너무 커 가지가 굽었나
잎 떨어뜨린 나무에 빈 가지만 어지럽다.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벼랑 위에 자리 잡은 절집 마당의 팽나무. 40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절을 세운 스님이 손수 심어 정성스레 키운 나무다. 요즘 사람들은 그냥 ‘할배나무’라고 부른다. …
201101032011년 01월 03일뜨겁게 살아낸 한 해가 저뭅니다
이맘때쯤 도시의 밤은 성탄과 새해를 축하하는 오색 전등으로 환하다. 숲에서도 이른 봄부터 잎 내고 꽃 피웠던 나무들이 한 해를 마감하느라 소리 없이 분주하다. 푸른 잎 사이에 새빨간 열매를 조롱조롱 맺은 호랑가시나무는 숲에서뿐 아니…
201012202010년 12월 20일어느 보석이 이보다 더 예쁠까
붉은 것이 어디 단풍나무 잎뿐이랴. 겨울의 문, 섣달에 들어서자 나무 열매의 붉은 기운이 짙어졌다. 중국과 일본이 고향인 나무, 남천의 열매다. 타향 땅, 낯선 바람 맞으며 앙증맞게 맺은 열매가 한껏 멋을 부린 몸매를 드러냈다. 저…
201012132010년 12월 13일나무가 이어가는 공자의 뜻
죽었던 나무가 살아났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일이다. 다시 그로부터 200여 년 전,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 선생이 서당을 짓고 마당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정성껏 키우던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나무도 따라서 죽었다. 그…
201012062010년 12월 06일오늘도 鶴학을 기다리는 소나무
조선시대 선비 이산광은 벼슬을 내려놓고 보령 땅으로 돌아와 마을 어귀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소나무 밑동에서부터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져 자라는 반송이었다. 그리고 나무 곁에 정자를 짓고, 신선의 기품을 갖춘 학(鶴)이 머물기를 …
201011292010년 11월 29일고고한 모습, 선비들이 반할 만하구나!
고려시대 궁궐 터 가장자리에서 400년을 살아온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비들이 좋아했던 회화나무다. 집을 옮길 때도 선비들은 이삿짐 목록에서 회화나무를 빠뜨리지 않았다. 자유로우면서도 호방하게 펼치는 나뭇가지의 강…
201011222010년 11월 22일굴참나무 가지에 찾아온 겨울
사람들은 소쩍새가 날아와 나무에 앉아 울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봄이면 늘 그랬다. 나무에 소쩍새가 깃들여야 풍년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흔하디흔한 참나무 종류의 하나인 굴참나무이건만,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신앙이고 종교였다…
201011152010년 11월 15일사람 그리워 붉게 물들었나
붉게 물든 이파리 풍성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나그네를 반긴다. 느티나무 뒤편, 아담한 초등학교 분교장에는 아이들도 하나 없다. 고요하다. 마을 어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느티나무이건만, 한적한 길 위에서 홍조…
201011082010년 11월 08일쉿! 600년 세월 고요 깨질라
저녁 햇살을 받아 발그레하게 얼굴 붉힌 나무 한 그루. 조선 세종 때 평안북도 정주 판관을 지낸 이정(李楨)이 고향 집에 심은 뚝향나무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상록의 나무이건만, 이 가을 다른 나무의 단풍을 시샘하듯…
201011012010년 11월 01일호랑이도 쫓아낸 ‘천년 수호신’
해질 무렵, 배고픈 호랑이가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며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 마침 나무 아래에서 낮부터 잠에 빠진 사내가 한 명 있었다. 그를 잡아먹으려 다가서던 호랑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한 그루 큰 나무 때문이었다. 천년을 마…
201010252010년 10월 25일잎이 죽어 붉은 꽃 피웠다
꽃무릇이 가을을 불러왔다. 잎사귀 없이 불쑥 올라온 꽃대에서 피어난 꽃은 천지를 붉게 물들인 뒤 곧 시들어 떨어진다. 사람의 마을에 가을을 내려놓은 꽃무릇은 영추화(迎秋花)라 불러도 괜찮지 싶다. 수억 년 동안 꽃은 푸른 잎을 본 …
201010182010년 10월 18일가을바람이 말없이 내려앉는다
비바람 따라 여름이 가뭇없이 흩어진다. 때 되면 저절로 여름 가고 겨울 오건만, 사람들은 언제나 오가는 계절을 성마르게 독촉한다. 사람의 마을에 사람과 함께 서 있는 나무는 말없이 오는 계절의 향기를 줄기에 차곡차곡 쌓는다. 미동도…
201010112010년 10월 11일오늘도 추억을 먹고 산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 오래전 문을 닫은 초등학교 옆에 볼록 솟은 동산이 있고, 그 한가운데 갈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늙어서도 이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저절…
201009132010년 09월 13일병인박해 통곡 말없이 증언
나무줄기 높은 곳에 굵은 철사가 단단히 걸렸다. 동이 트면 나무 앞으로 사람이 끌려왔다. 한 차례 매질을 당한 뒤 그 사람의 머리채가 나무 위 철사에 매달렸다. 신음하고 통곡하면서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갔다. 나무는 말없이 처참한 …
201009062010년 09월 06일세상 사람들아, 올곧게 살아라
지리산 연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금대암. 지리산 전망 중 제일이라 하여 ‘제일 금대’라는 별명까지 붙은 천년고찰이다. 법당 앞마당 돌담 아래에 지리산의 기개를 닮아 하늘을 빗질할 요량으로 솟아오른 나무가 있다. 우리나…
201008302010년 08월 30일선녀와 나무꾼의 밀어 들리나요?
경남 고성군 영오면 선유산 기슭에 잘생긴 청년 나무꾼 ‘강수’가 있었다. 청년의 아름다움에 반한 선녀는 하늘나라의 계율을 어기고 땅에 내려왔다. 시녀들에게 주변을 감시하게 하고, 선녀는 수천 년 된 정자나무 아래에서 강수와 정열을 …
201008232010년 0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