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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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출신도 놀란 공대의 변모

화상채팅과 집단강의도 자연스럽게…100% 영어 강의에 인턴십도 학점 인정

  •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입력2015-03-30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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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대 출신도 놀란 공대의 변모

    화상대화 서비스를 활용한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강의 모습. GIST 학생들은 이 장비를 통해 해외 교수들의 강의도 듣는다.

    “방금 발표한 내용에 대해 마이클 예 교수님이 한 말씀하시겠어요?”

    질문이 나오자 교실 한쪽 벽 대형 스크린 속에 있던 얼굴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업무차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마이클 예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였다. 예 교수는 이날 화상대화 서비스를 이용해 미국 현지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영어로 발표하고 터치스크린으로 강의 내용을 공유하며 수업에 몰입했다. ‘글로벌 대학’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이공계 대학의 현주소다.

    2005년 국내 한 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던 기자는 꼭 10년 만인 올해 GIST 기초교육학부 수업에 참여했다. 그새 우리나라 대학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체험하기 위해서다. GIST는 이공계 대학 중에서도 수업 방식이 혁신적인 것으로 알려진 곳. 케케묵은 전공 책을 백팩에 넣고 등교할 때까지만 해도 ‘오늘만큼은 신입생처럼 지내보리라’ 결심했지만, 달라진 강의실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복학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강의실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화상채팅과 집단강의 시스템이었다. ‘유전자 발현 및 분석’이란 제목의 이날 수업에는 예 교수 외에 GIST 교수 2명이 더 참여했다. 교수 3명이 팀을 이뤄 강의하고, 심지어 그중 1명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데도 수업이 물 흐르듯 짜임새 있게 이뤄지는 게 신기했다. 학생들은 스크린을 보면서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교수는 실시간으로 답했다.

    공간 한계 초월한 ‘미래 강의실’



    전자기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학생들은 칠판 대신 터치스크린 기능이 있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이용했다. 디스플레이 속 자료를 손가락으로 넘기거나 확대하며 설명하는 모습이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 역시 노트북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궁금한 내용을 바로바로 검색하고 부족한 부분은 질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칠판을 촬영하는 학생이 많은 반면, 필기를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수강생 중 최우림 학생은 “수업 내용을 받아적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용을 머리에 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업 중 칠판을 촬영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 앞자리 친구 등 뒤에 숨어 몰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곤 하던 기자에겐 문화충격이었다.

    이런 현상은 GIST뿐 아니라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등 다른 대학 공대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공대 교수는 “예전엔 학생들이 필기할 때 잠깐이라도 쉴 수 있었는데 최근엔 그런 틈이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요즘 공대생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도 학습도구로 널리 사용한다. 10년 전 공대생은 누구나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검은색 공학용 계산기를 갖고 다녔다. 요즘은 갓 전역한 복학생을 제외하면 이 계산기를 들고 다니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모바일 프로그래밍을 테스트할 수 있는 앱, 물리수학 공식을 제공하는 앱, 수학 공식을 넣으면 그래프를 그려주는 앱, 스캐너처럼 작동해 각도기나 눈금자 기능을 하는 앱 등 공대생이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앱이 부지기수다. 이러니 교수들도 더는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요구할 수 없다.

    요즘 공대의 또 다른 특징은 영어 강의다. 기자가 공대를 다니던 시절에도 영어 강의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교수들은 영어로 강의하더라도 수업 종료 전 5분 동안 우리말로 수업 내용을 요약해주는 등 한글과 영어를 함께 사용했다. 하지만 10년 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공대 상당수가 순도 100% 영어 강의를 한다. 교수 강의와 학생 발표는 물론이고, 수업 전 공지사항과 중간 질의응답은 물론 농담까지 모조리 영어로 한다. 학생들은 수업 중 교수가 던지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유창한 영어로 답변했다. 조경래 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학생들의 영어 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수업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라며 “국제 공동연구가 많은 공대 특성상, 연구자들은 해외 학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도 이런 분위기에 적응해가고 있다. 이날 수업을 함께 들은 김도원 학생은 “영어 강의를 들으면서 영어 실력이 늘고 있는 걸 느낀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나오면 추가 질문을 통해 확인한다”고 밝혔다.

    공대 출신도 놀란 공대의 변모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 제품을 만드는 실습 과제를 하고 있는 공대생. 실습 강화는 최근 국내 공대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실습 위주 교육으로 현장성 강화

    10년 전과 달라진 ‘요즘 공대’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현장성 강화’다. 실습 위주, 제품 제작 위주 교육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국내 대다수 공대가 ‘캡스톤 디자인’ 과목을 운영 중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캡스톤 디자인은 학생이 학부 과정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1년 동안 제품 기획, 설계, 제작을 실습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 199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고, 기자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등 일부 학과에서 ‘선택과목’ 등으로 제한적으로 시행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 거의 모든 공대생이 이수하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인턴십 프로그램도 진화 중이다. 한 학기 동안 회사 생활을 하고 이것을 학점으로 인정받는 ‘코업(Co-Op·현장실습)’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다. 성균관대와 서울과학기술대 등이 본격적으로 이 제도를 운영 중이다. 서의성 성균관대 교수는 “학교 차원에서 기업 수십 곳과 협약을 맺고 있으며 학생들의 참여율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학생 창업도 장려하는 분위기다. 이화여대는 3년 전부터 ‘실전 캠퍼스 CEO’라는 과정을 통해 재학생에게 창업 실습을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학교가 시제품 제작과 특허 출원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들이 공대 취업률을 혁신적으로 높이고 있다.

    GIST에서의 1일 학생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 기자 머릿속으로 4년간의 공대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잠시 ‘공대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결론은 이랬다. “요즘 공대는 다니라고 해도 못 다니겠다!”

    공대 출신도 놀란 공대의 변모

    터치스크린 기능이 있는 대형 디스플레이 장비 앞에서 발표하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학생. 최근 공대 강의실에서는 디스플레이 장비가 칠판을 대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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