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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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세번이 그린 존 키츠

폐결핵으로 숨진 위대한 시인 그 곁을 끝까지 지킨 진정한 친구

  •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4-06-30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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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프 세번이 그린 존 키츠

    ‘존 키츠의 초상’, 조지프 세번, 1821년, 캔버스에 유채, 56×41cm, 영국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소장.

    1820년 10월 시인 존 키츠(1795~1821)는 친구이자 화가 조지프 세번과 함께 영국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 로마로 향했다. 스물다섯 살의 젊은 시인 키츠는 그해 2월 찬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각혈을 했고, 폐결핵 진단을 받은 터였다. 당시엔 폐결핵을 낫게 할 방도가 없었다. 의사들은 남국의 따스한 공기와 햇살 아래서 요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이는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방편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젊은 시인 키츠는 이탈리아에서 병을 완치한 후 런던으로 돌아와 약혼녀 페니와 결혼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친구들은 병자인 키츠가 혼자 로마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래서 친구 중 한 명인 화가 세번이 그와 동행하기를 자청한 것이다. 세번은 세번대로 이탈리아의 고대 로마 유적들을 그려 화가로 대성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꿈에 부풀어 로마에 도착한 두 젊은이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키츠는 로마에 도착한 후 꼭 100일 만인 1821년 2월 23일, 스물여섯 나이로 숨을 거뒀다. 후일 키츠의 시신을 조사한 의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양쪽 폐가 거의 다 없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고통스러운 투병을 견딘 키츠는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가는가 봐…”라는 말을 세번에게 남기고 정신을 잃은 뒤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 등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은 이렇게 덧없이 생을 등졌다.

    다행히도 키츠의 마지막 가는 길은 그리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세번은 고대 로마 유적들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뒤로 미룬 채 밤낮 없이 키츠 옆에 붙어 그를 간호했다. 나아지지 않는 병세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키츠는 음식을 접시째 창밖으로 던지는가 하면, 세번에게 자신이 묻힐 로마 프로테스탄트 교회 묘지 풍경을 스케치해 보여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까다롭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세번은 불평 없이 감내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3박 4일간 키츠의 침대 옆을 떠나지 않으며 친구의 최후를 지켰다. 키츠가 불이 꺼지고 어두워지는 순간을 유난히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친구를 떠나보낸 후 세번은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르고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가져다 태웠다. 당시 로마의 법은 전염을 막기 위해 폐결핵 환자가 임종한 방의 가구와 벽지를 모두 태우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혼자가 된 세번은 마음을 가다듬고 기억 속에 있는 친구의 모습을 그렸다. 키츠가 로마에 오기 전 런던의 셋집 앤트워스 플레이스의 창가에 앉아 시상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이 초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번은 그리 뛰어난 화가는 아니었다. 그가 그린 키츠의 초상화는 어느 면에서 봐도 평범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억 속에 묻고 싶지 않은 세번의 슬픈 염원만은 분명히 느껴진다.

    석 달이나 폐결핵 환자와 숙식을 같이 했던 세번은 다행히 폐결핵에 감염되지 않았다. 키츠 사후 그의 작품들이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세번 역시 ‘위대한 시인의 마지막을 함께 한 진정한 친구’라는 칭송을 받았다. 세번은 건강한 삶을 살고 화가로서도 조촐한 명성을 누리다 여든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츠와 세번은 현재 로마 프로테스탄트 묘지에 나란히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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