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키츠의 초상’, 조지프 세번, 1821년, 캔버스에 유채, 56×41cm, 영국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소장.
그러나 아직 젊은 시인 키츠는 이탈리아에서 병을 완치한 후 런던으로 돌아와 약혼녀 페니와 결혼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친구들은 병자인 키츠가 혼자 로마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래서 친구 중 한 명인 화가 세번이 그와 동행하기를 자청한 것이다. 세번은 세번대로 이탈리아의 고대 로마 유적들을 그려 화가로 대성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꿈에 부풀어 로마에 도착한 두 젊은이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키츠는 로마에 도착한 후 꼭 100일 만인 1821년 2월 23일, 스물여섯 나이로 숨을 거뒀다. 후일 키츠의 시신을 조사한 의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양쪽 폐가 거의 다 없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고통스러운 투병을 견딘 키츠는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가는가 봐…”라는 말을 세번에게 남기고 정신을 잃은 뒤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 등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은 이렇게 덧없이 생을 등졌다.
다행히도 키츠의 마지막 가는 길은 그리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세번은 고대 로마 유적들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뒤로 미룬 채 밤낮 없이 키츠 옆에 붙어 그를 간호했다. 나아지지 않는 병세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키츠는 음식을 접시째 창밖으로 던지는가 하면, 세번에게 자신이 묻힐 로마 프로테스탄트 교회 묘지 풍경을 스케치해 보여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까다롭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세번은 불평 없이 감내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3박 4일간 키츠의 침대 옆을 떠나지 않으며 친구의 최후를 지켰다. 키츠가 불이 꺼지고 어두워지는 순간을 유난히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친구를 떠나보낸 후 세번은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르고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가져다 태웠다. 당시 로마의 법은 전염을 막기 위해 폐결핵 환자가 임종한 방의 가구와 벽지를 모두 태우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혼자가 된 세번은 마음을 가다듬고 기억 속에 있는 친구의 모습을 그렸다. 키츠가 로마에 오기 전 런던의 셋집 앤트워스 플레이스의 창가에 앉아 시상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이 초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번은 그리 뛰어난 화가는 아니었다. 그가 그린 키츠의 초상화는 어느 면에서 봐도 평범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억 속에 묻고 싶지 않은 세번의 슬픈 염원만은 분명히 느껴진다.
석 달이나 폐결핵 환자와 숙식을 같이 했던 세번은 다행히 폐결핵에 감염되지 않았다. 키츠 사후 그의 작품들이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세번 역시 ‘위대한 시인의 마지막을 함께 한 진정한 친구’라는 칭송을 받았다. 세번은 건강한 삶을 살고 화가로서도 조촐한 명성을 누리다 여든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츠와 세번은 현재 로마 프로테스탄트 묘지에 나란히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