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더본코리아 대표 백종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방송인 송은이와 김숙 등 여러 유명인을 사칭한 리딩방 광고가 페이스북에 게시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11월 6일 페이스북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사진이 들어간 광고가 게시됐다. 게시자는 “지난주 내가 추천한 주식이 45%나 올랐다. 돈을 줍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광고에 따르면 이 총재로부터 주식을 추천받는 법은 간단했다. 페이지에 링크된 카카오톡 주소로 접속해 그를 친구 추가한 뒤 ‘77’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끝이다. 기자가 페이지에 표시된 대로 따라 하자 이 총재의 사진을 프로필로 내건 ‘이장용’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 총재 이름과 한 획만 달라 혼동하기 쉬운 이름이었다.
“길거리서 돈 줍는 것과 다름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사칭한 페이스북 광고(왼쪽) 및 관련자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최진렬 기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유명인을 사칭한 주식 리딩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개인투자자에게 친숙한 경제 전문가나 관료는 물론, 연예인 송은이와 김숙 등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사람을 사칭한 광고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재벌가를 사칭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활동 방식은 유사했다. 연결된 카카오톡 채팅방 혹은 네이버 밴드를 통해 특정 그룹에 초대하는 방식이다. 이부진 사장을 사칭한 광고 역시 “우리 금융회사의 막강한 애널리스트팀이 투자 방법을 알려드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3개월간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3개월 안에 귀하의 재산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 믿는다”면서 “나에게 연락하면 비서가 도와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시 글에 연결된 링크로 접속하자 ‘이부진’으로 카카오톡 이름을 등록한 사람이 기자의 재산 수준을 물었다. 그는 “단체카톡방을 준비 중”이라며 “11월 25일쯤 주식 단체카톡방에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백종원 대표가 투자책을?
투자 서적을 미끼로 개인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일당도 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사칭한 게시자는 주식 트레이딩 관련 서적을 주겠다며 투자자들을 네이버 밴드로 끌어모았다. 11월 7일 해당 네이버 밴드에는 100명 넘는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게시자가 증정을 약속한 책의 저자는 백 대표가 아니었다. 밴드를 이끄는 이른바 ‘교수님’과도 저자 이름이 달랐다. 이들은 기자에게 “수령 인원이 많아 (책을) 순서대로 나눠주겠다”고 했지만 이후로도 주소 등을 따로 묻지 않았다.이튿날 채팅방 매니저는 “교수님이 추천한 우량주가 있는데 매수할 시간이 있느냐”고 기자에게 따로 연락을 해왔다. 그는 코스닥에 상장된 A사의 이름과 매수 가격, 목표 가격, 손절 가격을 차례로 알려졌다. “장 마감 때까지 주식이 목표 가격과 손절 가격에 모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홀딩(holding)하라”는 조언이 뒤따랐다. 이날 이 지시대로 주식을 매매했다면 0.84% 손실을 봤을 것이다. 이들은 “백 대표와 투자그룹이 관계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이 채팅방은 백 교수님과 박 교수님이 공동으로 개설한 것”이라고 말하며 답을 피했다.
사칭 리딩방 관계자들은 “불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만큼 문제 소지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료 그룹 가입을 요구하는 모든 것은 사기다”라고 공지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측면이 적잖다. 리딩방 일당이 주식을 선취매한 후 개인투자자들에게 해당 종목을 추천하며 물량을 떠넘길 수 있고, 신뢰를 쌓은 후 불법적으로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운용할 개연성도 있어서다.
법조계 역시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명의가 도용된 입장에서는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고, 해당 SNS를 믿고 리딩방에 들어가 돈을 사기당한 투자 피해자는 사칭 게시 글을 올린 사람을 사기죄 공범으로 고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리딩방 운영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으고, 이 과정에서 바람잡이들을 쓰기도 한다”며 “바람잡이의 경우 투자자 머릿수 혹은 피해 금액에 상응하는 수당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수익 없이 사칭만 했다는 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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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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