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2016.08.24

커버스토리 | 빚 권하는 사회

서민의 버킷리스트 “빚 갚고 죽는 것”

가계부채 사상 최대, 제2금융 대출액 증가, 청년 발목 잡는 학자금대출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8-19 15: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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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만 없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대출금 이자로 매달 목돈이 나가니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돈이 모이질 않아요. ‘나중에 집이라도 남는다’ 셈 치고 버티고 있긴 한데,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고 이자 갚는 것도 버거워요. 과연 죽기 전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요.”(50대 회사원)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점점 떨어지고 ‘집값 올랐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안 살 수 없었어요. 하지만 몇억씩 빚을 져가며 집을 산 게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더는 줄일 생활비도 없는데, 앞으로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턱 막히네요. 이러다 금리가 오르거나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에요.”(40대 가정주부)   

    ‘빚 공화국’ 국민은 알고 보면 빚더미인 내 집에 누워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1분기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총 1223조6700억 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후로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계속돼 연말에는 1300조 원을 돌파하리란 전망까지 나온다. 7월 말 기준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673조7000억 원으로 전달보다 6조3000억 원 늘었다. 월간 증가액만 보면 전월 대비 2000억 원 줄었고 지난해 7월과 비교해도 1조 원 감소했지만, 2010~2014년 7월 평균 금액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수치다.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은 바로 주택담보대출. 8월 현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06조6000억 원으로 전월 대비 5조8000억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 월간 증가액 또한 올해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 가계대출 가운데 마이너스통장대출, 예·적금담보대출 등 기타 대출 잔액은 166조1000억 원으로 5000억 원 늘어났다.





    가계부채 절반은 주택담보대출

    결국 8월 1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뿐 아니라 금융감독 당국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 총재가 이처럼 단호한 어조로 가계부채를 지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금융계 반응이다. 그만큼 가계부채가 생각보다 심각하고, 또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자칫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 혹은 시한폭탄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가계부채의 절반가량이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것이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의 상당수가 빚내서 집을 산 경우라 볼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주요 원인으로 저금리정책과 부동산시장 활황을 꼽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3월 사상 처음 금리를 1%대인 1.75%로 내린 데 이어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지자 또다시 1.5%로 내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1년 뒤인 6월에는 1.25%로 사상 최저 금리를 선포했다. 기준금리가 낮아지자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덩달아 낮아져 연초만 해도 3%대를 유지하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현재는 연 2.65~2.92% 수준이다. 이렇게 이자 부담이 줄어들자 많은 사람이 무리해서라도 집을 구매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20년 원리금균등분할상환 방식으로 금리 2.7%에 2억 원을 빚내 집을 샀다고 치면, 월평균 납부금(원금+이자)은 약 108만 원. 월평균 이자는 24만6000원, 총 이자는 5900만 원에 달한다. 물론 소득에 따라 월평균 납부금에 대한 부담은 각각 다르겠지만, 5월 통계청이 2인 이상 가구 월평균 소득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표본가구의 절반 이상이 월 소득 300만 원 이하였다는 점을 토대로 평균값이 아닌 중앙값으로 계산했을 때), 가구당 월 소득은 315만 원으로 집계된다. 결국 2억 원을 빚내 집을 샀다면 소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고정지출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많은 사람이 빚을 두려워하면서도 집을 사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정부가 2014년부터 DTI(총부채상환비율)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완화하고,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등 경기부양정책을 펼치자 날로 오르는 집값에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도 작용했다. 심지어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추가로 대출받아 투자 목적으로 재개발 분양권을 매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재개발 전문 부동산 관계자는 “여유자금이 없어도 이자가 싸니까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분양권을 사는 사람이 많다. 중도금 무이자 혜택이 사라졌지만 건설사가 대부분 이자후불제를 취하고 있어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월 부터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은행 여신심사를 기존 담보 위주에서 대출자의 상환 능력 중심으로 전환해 심사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확대 실시하며 대출을 규제하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1분기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에 비해 4.9%p 상승한 145.6%를 기록했다. 이는 가계의 가처분소득보다 빚이 1.5배가량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1분기 가계부채는 전년 동기 대비 11.4%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은 4.1% 증가했다. 결국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의 2.8배에 달한다는 얘기다.



    비은행권 가계대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택담보대출이 너무 빠르게 증가한다는 점과 부동산 쏠림 현상으로 ‘하우스푸어’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득이 늘지 않고 소비 패턴에도 큰 변화를 줄 수 없는 경우 장기적으로 가정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 노 책임연구원은 “과잉공급이 현실화하는 2018년 주택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세계경제 상황에 맞춰 금리가 오를 수도 있는 만큼 대출에 의존해 무턱대고 주택을 구매하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제2금융 대출 규모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신협) 등 비은행권의 가계대출은 123조3300억 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40% 가까이 상승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정부가 대출을 규제하자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 저소득, 신용취약계층 등이 금리가 높은 제2은행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종의 ‘풍선효과’인 것. 다시 말해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가장 큰 문제는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신대 공공정책연구소가 집필한 ‘한국의 불평등 2016’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대부분 과잉부채 가구가 중산층에 몰려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 하위계층에 43%나 몰려 있다. 저자인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자산·부채 구조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채가 빈곤층에 집중돼 있다는 건 그만큼 경제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비우량대출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 관계자도 대부분 주택담보대출보다 생활자금대출, 즉 저소득층의 비은행권 대출을 더 우려한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다중채무자(비은행권 내 3건 이상 대출 보유자)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나이스평가정보 통계를 토대로 만든 자료를 보면 비은행권 대출자 가운데 저소득층(연소득 3000만 원 미만)의 비중은 1분기 33.6%를 기록했다(2015년 1분기 31.9%, 2014년 1분기 29.9%). 이 중 다중채무자의 비중은 26.9%로 역시 증가 추세다.

    여러 곳에 빚이 있을 경우 빚에 대한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한두 곳에서 연체가 되면 한 달 내내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가정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고, 이런 가정이 많아지면 국가 경제도 휘청거리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을 힘들 게 하는 건 미래가 없는 삶, 후세에 남겨줄 게 빚밖에 없다는 자괴감이다. 



    청년 빚쟁이 만드는 학자금대출

    가난의 대물림 현상은 대학생 학자금대출에서도 드러난다. 수많은 청년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 빚에 허덕이고 있다. 1월 인터넷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대졸자 1374명을 대상으로 ‘대학 재학 중 학자금대출 경험’을 조사한 결과 75.1%가 대출 경험이 있고, 65.9%는 아직도 학자금대출을 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규모도 상당해 5월 말 기준 든든학자금대출 채무액은 6조5997억 원으로 2010년에 비해 7배나 늘었다. 든든학자금대출은 대학 졸업 후 취업해 일정 소득(연 1038만 원 이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상환의무가 없는 학자금대출로, 대학생 상당수가 이 대출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다른 학자금대출상품과 달리 매학기 변동금리가 적용돼 요즘처럼 금리가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는 대출자에게 유리하다.

    문제는 든든학자금대출 체납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세청 업무보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든든학자금대출 상환 첫해인 2011년에는 359명이던 체납자가 지난해에는 1만5034명으로 4087%나 폭증했다”고 밝혔다.

    3년째 학자금대출을 갚고 있는 정모(26·여) 씨도 연체한 경험이 있다. 지난여름 급성맹장염으로 3주간 돈을 벌지 못해 상환금을 내지 못한 것. 정씨는 학자금대출 상환금액이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대기업을 고집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취업해 대출금 상환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낮은 임금에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고 대출금까지 갚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었다. 정씨는 “중소기업이라 세후소득이 월 180만 원 남짓인데 월세에 교통비, 통신비, 생활비 등 고정비용을 제하면 80만 원도 채 남지 않는다. 거기에 월 40만 원 대출금까지 갚고 나면 저축은 꿈도 못 꾸고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다. 맹장염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가장 걱정된 게 대출금이었다”고 허탈하게 말했다. 정씨처럼 학자금 상환의무자가 납부기한까지 상환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3% 연체금이 부과된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 사회초년생의 고군분투는 눈물겹다. 얼마 전 학자금대출 상환을 다 마쳤다는 직장인 김모(30) 씨는 등록금뿐 아니라 서울에서 홀로 자취생활을 한 비용까지 학자금대출로 충당한 터라 총 대출금이 3000만 원에 달했다. 다행히 김씨는 3년 만에 전액 상환했지만 이후 밀려드는 허탈감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씨는 “대출금을 갚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술자리는 전혀 갖지 않았다. 끼니도 걸러 가며 돈을 갚았다. 그렇게 3년을 보냈더니 그사이 친구들은 멀어졌고 건강도 나빠졌다. 사회생활 초년기를 이런 식으로 흘려보낸 게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학자금대출 금리를 2.7%에서 2.5%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지만 인하폭이 너무 적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높다. 든든학자금대출 이용자인 대학생 이모(25) 씨는 “금리 0.2%를 낮추는 것으로는 학자금대출 부담이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등록금이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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