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친李 몰락 전철 밟는 친朴

당대표 경선에 핵심 최경환, 좌장 서청원 줄줄이 불출마…비박계 당권 장악 가시권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7-27 07: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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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친박근혜(친박)계에 미래는 있는가.”

    새누리당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계에게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에 이어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까지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당권을 비박(비박근혜)계에게 넘겨주게 됐다는 점에서다.



    도둑처럼 찾아온 레임덕

    친박 좌장으로 통하는 서 의원의 불출마는 1월 새누리당 공천 당시 경기 화성갑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현기환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과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지역구 이동을 종용받은 김성회 전 의원의 통화 녹취록 공개가 결정적 이유가 됐다. 공천과정에서 친박 좌장인 서 의원의 지역구를 지키려고 친박계가 똘똘 뭉쳤다는 정황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 김 전 의원은 친박계의 권유를 받아들여 화성갑에서 화성을로 지역구를 옮겼다가 다시 화성병으로 옮겨 경선에 나섰지만 경쟁 후보에 져 낙천했다. 만약 서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면 녹취록 내용에 대한 진위 공방은 물론, 친박계가 또 공천에 개입한 정황은 없는지 등 또 다른 논란으로 날을 지새웠을 개연성이 높다.

    원조 친박 출신 이정현, 한선교 의원도 새누리당 당권에 도전하고 있지만, 여당 내에서 두 의원을 친박 대표주자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이 의원은 “이제는 친박이란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며 은연중 탈계파를 강조하는 상황.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이주영 의원 역시 계파색이 옅어 친박계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는 후보는 아니다. 최경환, 서청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친박계 대표주자로 홍문종 의원이 출마를 적극 검토 중이다. 홍 의원은 7월 20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출마와 불출마 가능성이 51 대 49”라고 해 사실상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당내 여론은 홍 의원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심지어 친박계 내부에서조차 홍 의원의 출마를 만류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홍 의원이 친박 대표주자로 당대표에 도전했다 낙선할 경우 ‘친박 몰락’이 기정사실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



    그에 비해 정병국, 김용태 의원과 총선 때 친박계 주도의 공천으로 낙천해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하고 복당한 주호영 의원은 모두 비박계 대표주자를 자처하고 있다. 만약 홍문종 의원이 친박 대표주자로 당권에 도전해 승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가 당대표가 되든 새누리당 차기 지도부는 비박계가 장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박심(朴心)을 등에 업고 권력 핵심으로 군림하던 친박계가 당권에 도전할 변변한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이유는 뭘까.

    “공천을 주도한 친박계는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지난 총선 패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다시 당권을 쥐겠다고 나서는 것은 유체이탈 수준이 아니라, 후안무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일 아닌가. 더욱이 친박계가 공천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록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다시 친박계가 당 전면에 나서겠다는 것은 오만의 극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안팎 인사들은 친박계가 당권 도전에 나서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비박계 인사는 “진실의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며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과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 모두 당대표에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은 그 자체가 레임덕”이라며 “도둑처럼 찾아온다는 레임덕이 어느새 친박계를 휘감고 있다”고 말했다.



    ‘50대 기수론’과 ‘세대교체론’ 부각 조짐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친박 대표주자가 나서지 못하는 현 상황은 ‘권불십년’이란 정치권의 오래된 금언을 되새기게 한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태동한 친박 태풍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여당 내 야당으로 자리매김한 뒤 명맥을 이어오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발판으로 당·정·청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초대형 권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4월 총선에서 ‘공천 전횡’으로 국민의 지탄을 자초한 이후 변변한 당권 주자조차 내세우지 못할 만큼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든 모습이다.

    친박계가 총선 이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5년 전인 2011년 10월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디도스(DDoS) 사건까지 겹쳐 친이명박계가 주도하던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급속히 무너지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당시에도 이명박 대통령 임기 4년 차였다.

    그때와 현 상황이 크게 다른 점은 유력 대선주자의 유무다. 당시에는 박근혜라는 유력 대선주자가 있어 무너진 지도력을 비교적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국민의 눈총을 받는 현재권력이 뒤로 물러나는 대신 미래권력을 앞세워 비교적 빠르게 국면을 전환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당의 운명을 믿고 맡길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대선 레이스에 불이 붙을 수 있는 여건이 조기에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새누리당 대선 레이스가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불붙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의 구심을 바로세우지 못하면 대선 레이스가 빨라질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신동아’ 8월호에 따르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8월 한 달간 전국을 돌며 경청투어를 한 뒤 9월부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총선 이후 새누리당 복당 전까지 대학 특강 외 정중동 행보를 보이던 유승민 의원 역시 하반기부터 각계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혀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원조 소장파로 일컬어지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른바 남·원·정 트리오(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병국 의원)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비박 단일화를 통해 당권 장악을 위한 세 결집에 나선 점도 새누리당의 권력 지형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들 소장파가 당권을 장악해 친박계가 무너진 새누리당의 힘의 공백을 메우면 내년 대선 경선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한 인사는 “만약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병국 의원을 비박 단일후보로 내세운 소장파가 당권을 장악한다면 내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이 ‘50대 기수론’과 ‘세대교체론’으로 흐름이 바뀔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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