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2016.03.30

특집 | 청년을 위한 취업은 없다

머물면 이태백, 나가면 이퇴백

‘자동졸업’으로 졸업유예의 길마저 차단…취업률에 목맨 대학들 단기 아르바이트 권유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3-28 10: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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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원(24·가명) 씨는 2개월 차 ‘청년백수’다. 2월 중순 서울 한 사립대를 졸업했다. 김씨는 “바깥세상에 직업 없이 나가는 게 불안해 졸업을 좀 미룰까 생각도 했지만 학교 안에 있다고 딱히 안전할 것 같지 않더라”며 “돈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졸업을 택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졸업한 대학은 2014년 학칙을 개정해 규정학점 이수자가 졸업하지 않을 경우 의무적으로 강의를 듣도록 했다. 1학점만 수강신청을 해도 한 학기 등록금의 6분의 1을 내야 한다. 미취업 상태에서 학원 수강 등을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최근 몇 년 새 상당수 대학이 이런 방식으로 학칙을 개정하는 추세다. 이화여대의 경우 2014년까지는 이른바 ‘0학점 등록제’를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를 폐지하면서 졸업학점을 채운 학생이 졸업논문을 내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졸업을 미룰 경우 ‘학사학위 수료자’로 정하는 ‘과정수료제’를 도입했다.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려면 위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1학점 이상을 추가 신청해 등록금을 내야 한다. 건국대 역시 지난해부터 졸업유예자의 수강신청 강제 학칙을 만들었다. 기존에는 학기당 10만 원을 내면 수업을 듣지 않고도 졸업을 미룰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처럼 졸업유예 등록금을 받는 대학은 2013년 35.5%에서 2014년 62.2%로 늘었다. 2014년 한 해 동안 전국 대학이 이런 식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56억 원에 달한다. 적잖은 학생이 졸업을 미루고, 많은 대학이 그들에게 비용을 물리고 있는 셈이다.



    버티는 학생, 밀어내는 대학

    대학생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건 취업시장에서 대학생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 사립대에서 ‘3년째 4학년’으로 살아가는 김기욱(26·가명) 씨는 “졸업하거나 수료자가 되면 도서관 등 교내 시설을 이용하는 데 제한이 생긴다. 또 대학 재학생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각종 공모전과 인턴십 등에 원서조차 낼 수 없다. 취업준비를 하는 데는 학생인 편이 훨씬 유리한 셈”이라고 밝혔다.



    졸업생이 될 경우 전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도 있다. 인터넷 취업포털 ‘사람인’이 2월 대학 졸업예정자 6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316명·47.2%)이 ‘졸업을 미룰 생각이 있다’고 답했고, 이유로 ‘재학생 신분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73.7%·이하 복수응답)를 꼽았다. 그다음으로는 ‘무소속 상태로 남는 게 두려워서’(29.4%), ‘졸업예정자만 가능한 인턴 등에 지원해서’(17.4%) 등의 응답이 많았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반값등록금국민본부 등 시민단체는 졸업유예자에 대한 각 대학의 등록금 부과를 비판하며 “대학들이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상황을 이용해 등록금 수입을 올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졸업 이수학점을 취득한 학생에게 등록금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한 고등교육법 개정안도 국회에 청원 제출했다.

    하지만 대학 측 의견은 다르다. 서울시내 한 사립대 관계자는 “졸업유예자에게 등록금을 받는 대학 가운데 그 수입이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보다는 학생들로 하여금 되도록 졸업유예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진입장벽’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학생들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려는 궁여지책”이라고 밝혔다. “몇 년 전부터 졸업유예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각종 학내 시설 이용률이 높아지고 행정 업무도 늘어나는 등 학사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재학생도 “평소에는 별말이 안 나오지만 시험기간이 되면 학교 온라인 게시판 등에 ‘화석선배’에 대한 성토 글이 올라오곤 한다. 몇 년째 학교를 떠나지 않고 화석처럼 도서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취업준비를 하는 이들 때문에 재학생이 피해를 입는다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은 아예 학생들이 졸업을 미룰 수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학칙을 바꾸기도 한다. 서울여대는 2015학년부터 부전공 및 교직 이수, 교환학기 진행 등 특정 이유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학교 승인을 거쳐 졸업을 늦출 수 있게 했다. 국민대는 올해부터 졸업학점을 이수한 학생은 무조건 수료 처리한다. 일단 수료자가 되면 초과 학기를 등록해 재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국민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졸업유예자에 대한 등록금 부과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 학생 부담을 낮추면서 졸업을 독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밝혔다.

    주당 15시간 근무 ‘인턴 교직원’도 등장

    세종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료 상태로 한 학기가 지나면 다음 학기에 ‘자동졸업’하게 하는 학칙까지 두고 있다. 원래 세종대를 졸업하려면 영어점수 최저기준을 통과해야 하지만 수료 후 학기 초과자는 해당 규정에서 열외다. 한 세종대 졸업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도 모르는 사이 졸업이 됐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인구론’(인문계 90%는 논다) 같은 유행어가 회자될 만큼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태에서 취업준비생을 캠퍼스 밖으로 내모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김기욱 씨는 “쉬운 말로 중소기업에라도 들어가 경력을 쌓는 편이 취업에 낫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시작하면 ‘옆그레이드’밖에 못 한다는 말이 떠돈다. 대기업으로 직장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직장으로 수평이동밖에 못 한다는 뜻”이라며 “이러다 보니 첫 직장을 잘 잡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지는 것이고,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 비교’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사람이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1.1%에 불과하다. 3년 뒤 정규직 전환율 역시 22.4%에 그쳤다. 그사이 26.7%는 직장을 잃고, 나머지(50.9%)는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양정승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4년제 대졸자의 졸업유예 실태와 노동시장 성과’ 보고서에서도 졸업을 미루고 취업할 경우 취업 질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유예자가 바라는 직장에 들어가는 비율은 31.3%로 일반 졸업자(25.4%)에 비해 높았고, 졸업유예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27.7%로 일반 졸업자(33.4%)보다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 주도 대학평가에서 좋은 순위를 받으려면 ‘취업률 제고’가 필요한 대학들은 취업의 ‘질’보다 ‘양’에 더 관심을 쏟는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대학은 주당 15시간 이상,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취업자’로 간주하는 것을 악용해 졸업생을 인턴 교직원으로 채용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해당 대학 겸임교수 등이 운영하는 업체에 졸업생을 몇 달 동안 허위 취업시키고 학과운영비나 교수연구비 등으로 국민건강보험료를 대납하는 사례도 있다는 후문이다. ‘취업명문’을 표방하는 한 지방대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은 “대외적으로 우리 학교 취업률이 80%가 넘지만 주위를 보면 대부분 몇 달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다.

    근무환경이나 급여가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라며 “교수들도 애초 그럴 걸 알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인턴을 권하는 경우가 적잖다. 허울만 좋다”고 털어놓았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청년층 취업 유경험자 가운데 62.3%(235만4000명)가 첫 직장을 평균 15개월 만에 그만둔다. 퇴사자의 절반(47%)이 퇴사 이유로 ‘근로여건 불만족’을 꼽았다. 이처럼 잠시 ‘이태백’ 상황을 탈출했다 취업준비생으로 되돌아오는 이들을 최근에는 ‘이퇴백’(20대에 퇴직한 백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대학 교수는 “졸업시즌을 앞두고 교수들의 ‘취업영업’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짝직장’이 늘고 있다”며 “지금처럼 대학 평가지표에 취업률을 포함하는 한 이런 문제는 계속 나타날 것이고 대학 교육이 황폐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졸업유예자 늘수록 대학평가에서 불리

    최근 대학들이 앞다퉈 졸업유예 제도를 없애는 배경에도 대학평가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교육부가 2014년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평가지표 가운데 전임교원확보율, 장학금지급률 등이 있는데 이런 수치는 재학생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졸업유예생까지 포함하면 분모가 커진다. 학교들이 이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려고 졸업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할 때 졸업유예 학생 유무를 반영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넣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졸업유예란 말이 공식 등장한 건 1998년 외환위기 때다. 당시 정부는 대졸자 취업난 해소를 위해 대학 졸업예정자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졸업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때 마련한 제도가 최근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난과 더불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셈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 166개 4년제 대학의 졸업유예 학생 수는 2만5246명. 2011년 8200여 명과 비교할 때 3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그런나 이런 추세에 대해 임민욱 취업포털 사람인 홍보팀장은 “기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졸업 시기가 언제냐가 아닌, 해당 지원자의 역량과 경험”이라며 “원하는 기업이나 직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량을 키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졸업 연기가 오히려 시간과 비용 등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헤드헌터 신유정 씨도 “졸업유예 기간에 특별히 한 게 없으면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한 것과 마찬가지로 경력 공백이 된다. 면접관의 질문이 ‘졸업하고 뭐 했나’에서 ‘졸업 안 하고 뭐 했나’로 달라질 뿐”이라며 “졸업을 유예하면 공모전에 입상할 가능성이 있거나 학교 내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해 새로운 스펙을 확보할 여지가 생기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졸업해 취업준비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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