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몰카는 ‘여성과 동일시’에서 비롯

  • 정신건강의학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7-08-14 13: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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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안에서 여성의 다리를 ‘몰래카메라’(몰카)로 촬영했다는 혐의로 한 남성이 서울지하철경찰대에 체포됐다. 놀랍게도 그는 현직 판사이자 야당 중진의원의 아들이었다. 최근 자유한국당 이만희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카메라 이용 촬영 범죄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몰카 범죄자는 2012년 1824명에서 지난해 4499명으로 최근 5년간 2.5배 증가했다. 직업별로 살펴보면 공무원 3.5배, 전문직 2.4배, 자영업은 2배 늘어났다. 연령별로는 26~30세가 가장 많지만, 전 연령대에 골고루 분포했다.

    직업, 계층, 연령과 상관없이 몰카 범죄가 횡행하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몰카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8월 8일 몰카 범죄와 관련해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몰카를 찍고, 보고, 또 보관하는 것일까.



    보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관음증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이는 ‘관음증(voyeurism)’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관음증이란 다른 사람의 나체나 생식기, 옷 벗는 행동, 성행위 등을 반복적으로 훔쳐보면서 성적 흥분과 쾌감을 얻는 행동을 말한다. 혜원 신윤복의 유명한 그림 ‘심계유목도’에서 앳된 소년 2명이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고 있다. 성적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해 성숙한 여인들의 몸을 훔쳐보고 싶은 사춘기 소년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이처럼 관음증은 본래 사춘기 또는 아동기 때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 시절 아이들은 성행동을 할 수 없을뿐더러 어른의 감시로 직접적인 성교가 대부분 차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의 몸을 훔쳐보는 행위나 자위 행동으로 성욕을 해결한다. 그러다 어른이 돼 이성과 직접적인 성교를 경험하면 ‘보는 것’의 즐거움이 시들해진다. 관음증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다. 이는 남성호르몬의 영향 때문이거나 전통적으로 남성이 성 행동에서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남성은 정상적인 성교보다 오히려 ‘보는 것’에서 더 큰 흥분과 쾌감을 느낀다. 이들이 관음증 환자가 되곤 한다.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도 다른 사람의 벗은 모습, 성기, 성행위를 보면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에로 영화나 성인 비디오를 즐겨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성적 흥분과 쾌감은 당연히 ‘보는 것’보다 ‘하는 것’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또 우리는 대부분 외부 시선과 사회적 관습을 의식하기 때문에 합법적인 ‘보는 것’을 즐길 뿐, 다른 사람의 은밀한 신체 부위나 성교 장면을 몰래 찍는 것 같은 일탈행동을 하지 않는다.



    몰카, 단순 범죄 넘어 불신 사회 만든다

    하지만 몰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그것에서 얻는 성적 쾌감이 가장 크기 때문에 범죄임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든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정신역동적으로는 ‘여성과 동일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여성과 동일시’를 시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남성으로서 열등감이 있거나, 자신감이 저하돼 있거나, 여성에 대한 불안이 있거나, 어린 시절 과도하게 어머니에게 집착했거나, 초기 성 경험에서 상대 여성으로부터 창피 또는 모욕을 당했거나,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권력 욕구도 몰카 범죄와 관련 있다. 수많은 여성의 신체를 자기 카메라에 담아 수시로 꺼내 보는 것이 그녀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음증 환자에게 여성은 인권을 지닌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성욕을 채워주는 도구적 존재에 불과하다. 이들의 또 다른 심리적 특성은 ‘반사회성’이다. 다른 사람이 겪을 엄청난 심리적 고통과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양심의 가책도 별로 느끼지 않는 것이다.

    몰카는 사회적으로 ‘불신’이라는 악영향도 끼친다. 몰카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은 이제 새로운 사회적 불안 증상이 됐다. 얼마 전 팝아티스트 낸시 랭이 술자리에 합석한 여가수 미스티를 몰카 용의자로 지목해 경찰에 신고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는 평소 누군가가 자신을 몰카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을 수 있다.

    남성 역시 몰카 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로 몰리거나 의심받을 수 있다. 남성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찍을 때 주변에 여성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여름철 바닷가, 계곡, 수영장 등에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활보하는 남성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몰카 범죄는 이처럼 불안, 불신, 의심, 관계사고(타인의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일어나는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 피해망상 같은 사회적 정신병리 증상을 양산한다. 서로 불신하고 경계하며 적대시하는 사회, 남성과 여성의 성별 대립이 있는 사회는 결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

    이와 같은 몰카 범죄를 막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비록 벗은 몸과 특정 신체 부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찍을 때는 반드시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다. 또 사랑하는 연인과 성행위를 동영상으로 남기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 남성이 제안해 찍는데, 촬영 당시에는 추억을 기록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헤어진 뒤에는 이 동영상이 갈등의 원천이 되거나 범죄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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