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오가는 도로도 ‘권력 길’과 ‘경제 길’로 나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쪽 남북으로 펼쳐진 도로는 육조(六曹)거리로 조성됐다. 의정부, 육조, 사헌부 등 조선 주요 권력 기관이 들어섰다.
동서 운종가의 시전, 남북 육조거리의 관청
종각을 중심으로 동서로 펼쳐진 종로(鐘路)는 조선시대 이후 서울의 전통 상업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GETTYIMAGES]
육조거리는 현 세종대로 사거리쯤에서 끝난다. 바로 이곳에서부터 동쪽 동대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이 경제 길인 운종가(雲從街)다. 종루(종각)를 중심으로 동서축으로 펼쳐진 이 대로를 따라 국가 공인을 받은 시장인 시전과 육의전 등이 들어섰다. 운종가, 즉 종로는 이후 조선 최고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다. 또한 운종가를 경계선 삼아 그 북쪽은 북촌이라고 해 권력가 등 상류층 주택가가 형성됐고, 남쪽 남촌에는 상인이나 서민층 거주지가 조성되기도 했다.
사실 정도전의 이 같은 한양도성 배치는 하늘 별자리를 본뜬 것이기도 하다. ‘천손(天孫)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한국 사람들은 한양도성을 건설할 때도 하늘의 중요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했다. 우리 고유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의하면 하늘 중심엔 삼원(자미원·태미원·천시원)이 있다. 자미원은 북쪽 하늘 최고신인 상제(上帝)와 그 가족이 사는 궁궐이고, 태미원은 하늘 각료들이 일하는 정부종합청사이며, 천시원은 하늘 백성들의 삶터다. 이 같은 삼원이 지상에 그대로 투영된 형태가 바로 한양도성이다. 즉 하늘 신이 사는 자미원은 임금이 거주하는 경복궁에 해당한다. 천문도에서 자미원 바로 하단에 위치한 태미원은 경복궁 남쪽 육조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은하수를 끼고 경제 활동을 담당하는 하늘 시장인 천시원은 바로 청계천을 끼고 동서 축으로 발달한 운종가가 된다.
“동서로 물길 흐르는 곳에 재산과 보물 무궁”
육조거리와 운종가로 대별되는 남북로와 동서로는 한자어에서도 구분해 표현된다. 중국 후한 때 지은 ‘풍속통의(風俗通義)’에서는 남북으로 난 길을 천(阡)이라 하고, 동서로 난 길을 맥(陌)이라 했다. 이때 천(남북로)은 작은 두렁길, 산기슭 길, 무덤길 등을 의미하는 반면, 맥(동서로)은 전답 사이 길, 도시의 큰길 등을 뜻했다. 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길이 맥, 즉 동서로임을 암시한다.남북로와 동서로의 차이점은 서울 시내 주요 도로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동서로는 과거 운종가였던 종로와 청계천을 따라 길이 나 있는 청계천로, 을지로 등이 해당한다. 남북로로는 광화문에서 숭례문 쪽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 조계사 앞 우정국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동서로와 남북로를 비교해보면 상거래 활동이나 인파 이동 측면에서 동서로가 남북로보다 훨씬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풍수학에서도 동서 방향 물길은 각별하게 취급된다. 중국 풍수 고전인 ‘청오경(靑烏經)’에는 “수과서동(水過西東) 재보무궁(財寶無窮)”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물길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곳에는 재산과 보물이 무궁하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황허(黃河)와 창장(長江)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흐름)하는 두 강 모두 물줄기를 중심으로 상업 도시가 발달하고 물류 이동, 상거래 등 경제 활동이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풍수에서는 물길과 도로의 특성이 비슷하다고 봐서 물길이 발달하지 못한 곳에선 도로가 그 역할을 한다고 해석한다. 결국 동서수나 동서로가 재물과 풍요의 기운이 강한 길이라는 뜻이다.
한강·양재천이 음양 조화 이루는 강남 땅
경남 진주 남강 오백리 물길을 따라 삼성가, LG가, 효성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이 탄생했다. [GETTYIMAGES]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양재천은 동출서류(東出西流)하는 한강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흘러 강남 일대 발복(發福) 규모를 키운다고 할 수 있다. [GETTYIMAGES]
풍수 지운설(地運說)에 의하면 앞으로는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사하더라도 집 앞으로 동서수가 흐르는 곳을 선택하는 게 풍요로운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동서 방향의 실개천이나 도랑물이라도 있는지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