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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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號 레버쿠젠, 무패 행진으로 사상 첫 분데스리가 우승

[위클리 해축] ‘포지셔널 플레이’와 강한 정신력으로 만년 준우승 설움 극복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4-05-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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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시작된 유럽 리그들은 5월을 앞두고 마무리 수순이다. 막바지 순위 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일부 리그는 이미 챔피언이 가려져 한바탕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가령 한국에 ‘인터밀란’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밀라노 연고의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는 3년 만에 리그 우승 타이틀을 탈환해 20번째 ‘스쿠데토’(‘방패’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세리에A 우승팀 유니폼에 부착하는 엠블럼)를 챙겼다. 이로써 10회 우승마다 새기는 별까지 추가해 다음 시즌부터 클럽 엠블럼 위에 2개 별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게 됐다.

    독일 분데스리가도 일찌감치 우승팀이 결정됐다. 그런데 이번 시즌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바이엘 04 레버쿠젠이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해 축구계 이목을 끌었다. 2012~2013시즌부터 11년 동안 이어지던 바이에른 뮌헨 천하를 종식하고 당당히 리그 정상에 오른 것이다.

    4월 14일(현지 시간) 바이엘 04 레버쿠젠 선수들이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4월 14일(현지 시간) 바이엘 04 레버쿠젠 선수들이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11년 이어진 바이에른 뮌헨 천하 종식

    독일 분데스리가는 “보나 마나 우승은 바이언(바이에른 뮌헨의 애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강과 나머지 팀의 격차가 크다. 하지만 레버쿠젠은 4월 14일(현지 시간) 홈에서 SV 베르더 브레멘을 5-0으로 대파하며 남은 5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 지었다. 1904년 창단 이후 첫 리그 우승이다. 관중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경기 종료 전부터 그라운드로 달려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경기가 중단될 정도로 흥분한 관중을 선수들이 자제시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국 축구 팬들에겐 차범근과 손흥민이 뛰었던 팀으로 익히 알려진 레버쿠젠은 독일에선 2인자 이미지가 강하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엘을 모기업으로 둔,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팀이긴 하다. 차범근이 선수로 뛴 1988년 UEFA컵(현 유로파리그 전신)을 차지한 게 그간 레버쿠젠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였다. 리그 준우승 5회, 포칼 준우승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등 우승 트로피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동안 레버쿠젠이 거둔 리그 준우승 기록을 보면 유달리 안타깝게 우승을 놓친 경우가 많다. 1999~2000시즌 레버쿠젠은 1경기를 남겨두고 승점 3점 차로 1위를 달렸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SpVgg 운터하힝에 패하는 바람에 선두를 내줬다.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은 같았지만 골득실에서 밀리는 바람에 우승 트로피를 놓쳤다. 2001~2002시즌은 31라운드부터 함부르크 SV, 브레멘, 뉘른베르크에 1무 2패를 한 게 화근이 돼 1점 차이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1996~1997시즌도 선두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 차는 고작 2점이었다. 특히 2001~2002시즌은 3관왕이라는 위대한 업적 달성을 눈앞에 두고 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포칼에서 모두 우승에 실패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레버쿠젠이 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으니 팬들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법하다.



    레버쿠젠 우승 주역은 1981년생인 젊은 감독 사비 알론소다. 스페인 바스크 출신으로 레알 소시에다드, 리버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며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그는 선수 시절 무수한 트로피를 거머쥔 바 있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로→월드컵→유로로 이어지는 메이저 대회 3연패 때도 무적함대 일원으로 뛰었다. 알론소는 2017년 은퇴 후 곧장 지도자로 변신해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코치와 레알 소시에다드 B팀 감독을 거쳐 2022년 10월 레버쿠젠 감독이 됐다. 전임 감독 제라르도 세오아네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이어받았지만 리그 6위, 유로파리그 준결승 진출이라는 가능성을 보이며 다음 시즌을 기대케 했다.

    레버쿠젠에서 알론소의 지도력은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팀에서 그를 데려가려 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레버쿠젠과 재계약으로 소문에 종지부를 찍었고, 보란 듯이 업그레이드된 지도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선수 시절부터 그를 지도했던 감독들은 알론소가 뛰어난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췄다고 말하곤 했다. 축구에 대한 이해가 깊은 데다, 동료와 사이가 좋고 문제해결 능력까지 두루 갖춘 리더이기 때문이다. 알론소는 요즘 유럽에서 각광받는 포지셔널 플레이로 컴퓨터와 같은 움직임을 지향한다. 포지셔널 플레이는 선수들이 포메이션·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경기 상황에 맞게 동료 위치, 공 움직임, 상대 위치에 따라 정확히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팀 전략·전술에 맞게 선수들 위치를 최적화해 컴퓨터처럼 공격과 수비를 펼치는 게 핵심이다.

    경기 막바지 골로 무패 드라마 행진

    알론소 리더십의 또 다른 특징은 선수들에게 전술적 능력뿐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레버쿠젠은 이번 시즌 모든 대회에서 단 1경기도 패하지 않았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강한 정신력은 이번 시즌 무패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4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 90분에 터진 동점 골은 이번 시즌 레버쿠젠 신화의 예고편이었다. 유로파리그 16강 1차전 카라바흐 FK 원정에서도 92분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고, 2차전에선 2-0으로 뒤지다 93분 동점, 98분 역전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무패 행진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리그 우승을 확정하고도 이어졌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유로파리그 8강 2차전 89분 동점, 리그 30라운드 도르트문트전 90분 동점,

    31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전 90분 동점 등 레버쿠젠의 투지는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시즌 46경기를 패하지 않고 달려온 레버쿠젠의 놀라운 행보를 보노라면 축구 팬 누구나 내심 응원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까. 알론소가 이끄는 레버쿠젠이 어디까지 비상할지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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