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산업은 2000년대 중·후반 진행된 대규모 설비투자 이후, 2008년 금융위기로 수요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구조적인 과잉공급 상황에 놓여 있다. 2015년 기준 연간 조강 생산능력이 8600만t인 데 비해 수요량은 5600만t에 그쳐 연간 3000만t가량 쇳물이 남아도는 실정이다. 이에 국내 철강사는 과잉생산 물량을 해소하고자 ‘밀어내기식’ 수출 정책을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국내 철강업계의 무역의존도(총출하 중 수출 비중)는 금융위기 전 20% 초반에서 최근 30% 중반까지 상승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8월 초 미국 상무부(DOC)가 내부식성강판, 냉연강판에 이어 한국산 열연강판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9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이를 최종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국내 업체에 부과될 예정인 총관세율은 포스코 60.93%, 현대제철 13.38%로 포스코의 경우 브라질(상계관세·CVD 7.42%, 반덤핑관세·AD 33.01~34.28%), 영국(AD 49.05%), 호주(AD 23.25%)에 적용된 세율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이와 같이 최대 60%에 달하는 관세율이 부과되면서 한국산 열연강판의 미국 수출이 타격을 받으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다른 품목 또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아진 국내 철강산업계로선 무역 이슈와 관련해 실질적인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실정이다.
미국, 중국 견제 목적으로 보조금·무역규제 강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정도는 글로벌 경기 및 역학구도에 따라 결정된다. 경기가 안정되고 한 국가의 영향력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1극 체제에서는 자유무역주의가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경기불황 또는 경기변동이 큰 상황에서 다극체제나 신흥국이 부상하는 경우에는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대될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세계 무역시장은 미·중 양강체제하에서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해오고 있다. 즉 현재 글로벌 무역시장은 표면적으로 지역무역협정 중심의 자유무역주의를 표방하나, 국가 간 무역제재를 통한 실질적인 보호무역주의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글로벌 시장 내 무역구제(AD 91%, CVD 7%, 세이프가드 2%) 조치는 2013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2013년 무역구제가 76건 증가하면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늘어난 데 이어, 2015년에는 105건이나 증가하며 기록을 경신했다. 품목별로는 철강, 기계·보일러, 전기전자기기, 철강제품, 일반 차량에 대한 조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업황 부진으로 경쟁이 심해진 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동시에 중국의 수출 비중이 큰 산업이란 특징을 지닌다. 즉 미국 등 선진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보조금, 무역구제 등의 조치를 다수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6월 말 기준으로 한국산 수출품에 AD, CVD, 세이프가드 등 수입규제 조치를 시행하는 국가는 29개국이며, 규제 건수는 총 169건에 달한다. 품목별로는 철강금속·화학·섬유·전기전자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올해 상반기 중 수입규제 조치가 신규로 시작된 품목 또한 철강금속과 화학제품이 대다수다. 특히 철강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규제 중 그 비중이 절반가량 되며 미국,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캐나다, 브라질 등 규제국도 다양하다(그래프1 참조). 철강의 세부 품목별 규제 현황을 살펴보면 강관·냉연강판·열연강판·도금강판·후판·전기강판 순이며, 최근 들어 강관과 판재류 제품 전반에 무역규제가 확산되는 추세다.
G2(미·중) 국가의 대결구도하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규제정책이 더욱 확대돼 보호무역주의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가 뚜렷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적으로 자유무역을 확산하려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국 내 소득불평등에 따른 경기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미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통한 국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했고, 이에 따라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역시 과거 개발도상국으로서 받아온 혜택을 포기하지 않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이 또한 선진국과 마찰을 야기하며 자유무역주의 유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은 철강 및 화학제품에 대한 무역규제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규제 비중이 가장 큰 철강제품의 경우 기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을 비롯해 자국의 기간산업을 보호·육성하려는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규제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철강 제품별로 무역규제의 강도를 파악하고 해당 제품의 국내 시장 수급 및 수출입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실제 리스크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글로벌시장 내 무역 분쟁 상황을 살펴보면 강관·냉연강판·열연강판 순으로 규제 강도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표 참조). 한편 국내 철강제품의 수출 현황에서는 2015년 연간 수출량이 100만t 이상이며, 총출하 중 수출 비중이 30%를 상회하는 품목은 냉연강판, 열연강판, 아연도금강판, 강관 등 4개 품목이다(그래프2 참조). 따라서 현재 전체 출하 중 수출의존도가 높으면서 무역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품목은 강관, 냉연강판, 열연 제품이다. 먼저 강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내수 정체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수출시장의 환경 변화에 따른 수출 감소로 관련 업계의 리스크 확대가 가장 우려되는 품목이다.
강관·냉연강판·열연 제품…무역규제 강화 우려
한편 국내 총출하 중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냉연강판은 과잉공급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수출국에서 규제가 확대됨에 따라 국내 중소업체 다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수시장의 축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열연강판은 하공정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기초품목으로 대체시장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제품 생산업체가 상위 대기업 위주로 구성돼 실질적으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2017년 조선 수주절벽, 자동차 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국내 철강 수요가 정체 또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국내 철강업계에 주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2015년 미국 정부가 한국산 유정관 및 송유관에 덤핑마진을 확정하면서 국내 강관업체의 대미수출이 급감한 사례에서 보듯 주요 수출국의 환경 변화는 국내 업계에 직격탄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수출시장의 환경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실질적인 리스크 수준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며, 이와 관련한 산업 내·외적인 대응 방안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