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을 계속 방어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생각인가.”
미국 원로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위원은 최근 ‘동아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2020년 이후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북한 측 인사가 할 수 있는 ‘공갈’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예시했다. 2020년이면 북한이 (괌과 오키나와 등) 태평양 미군기지나 본토 서부해안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테고, 이를 통해 6·25전쟁 이후 숙원인 한미동맹의 종식을 노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동아일보가 10월 17일부터 진행 중인 ‘머리 위의 북핵 대응전략 바꾸자’ 시리즈를 위해 주관식 설문조사에 응한 미국 전문가 다수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가고 있는 북한이 추구할 가장 큰 목표로 ‘한미동맹의 교란과 와해’를 들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핵을 가진 김정은은 자기 권위를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고 싶어 하며, 이를 위해 한미동맹을 끝장내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고자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도 “북한은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또 핵을 가진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과감한 무력시위나 공세를 행할 우려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계속하면서 정치와 군사를 혼합한 복잡한 도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며 “이미 김일성의 연방제 통일론이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장 위험한 것은 북한이 핵·미사일의 전쟁억지효과를 확인하고자 연평도 포격처럼 서해안 앞바다나 비무장지대에서 의도적으로 저강도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다. 자칫 에스컬레이션(단계적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도 “북한은 핵 위협이 우리(미국과 한국 등)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데 좌절한 나머지 군사적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다”며 “전술핵무기 배치는 특히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닉시 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란에 핵·미사일 기술을 제공해 외화 획득에 나설 가능성도 심각하게 경고했다.
주관식 설문조사와 별도로 진행된 객관식 설문조사에서 ‘북한이 핵무기(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개발을 완성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해외 전문가 15명 중 3명(래리 닉시 연구위원,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한국석좌,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일본 도쿄국제대 국제전략연구소 교수)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대체로 그렇다’ 2명, ‘보통이다’ 6명으로 1점(그렇다)과 5점(아니다) 사이 중간값을 3으로 한 응답 평균은 2.8이 나와 인정하는 쪽이 좀 더 많았다. 별로도 진행한 국내 전문가 10명의 평균(1.7)보다 좀 더 회의적이었는데 국내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더 절박하다는 설명이 가능한 대목이다.
북핵 도발에도 대화와 대북지원 필요
해외 전문가 15명은 ‘지금과 같은 제재·압박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국내 전문가보다 더 비관적인 의견을 내놨다. ‘아니다’가 11명, ‘대체로 아니다’가 3명으로 1명(대체로 그렇다)을 제외한 14명이 부정적이었다. 응답 평균은 4.6으로 국내(4.5)보다 좀 더 비관적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질문에 대한 국내 전문가의 응답보다 많았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선 오히려 대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7번 질문에 대해 15명의 응답 평균은 2.8로 국내(3.1)보다 좀 더 긍정적이었다.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후루카와 가쓰히사(古川勝久)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위원, 이즈미 하지메 교수, 바르텔레미 쿠르몽 IRIS 아시아 시니어 디렉터 등 3명이었다. ‘대체로 그렇다’는 5명이었다.
위 문항의 연장선에서 ‘북한의 핵개발에도 불구하고 홍수 피해 등에 대한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긍정 응답은 15명, 응답 평균은 2.7로 긍정적이 좀 더 많았다. 주펑(朱鋒) 중국 난징(南京)대 교수와 바르텔레미 쿠르몽 시니어 디렉터 등 2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대체로 그렇다’는 6명이었다.
‘향후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해야 국제사회가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보느냐’는 8번 문항(복수응답 가능)에 대한 응답은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 선언(모라토리엄)’ 7명, ‘위 문항을 포함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선언’ 6명, ‘숨겨진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5명, ‘이미 드러난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용’ 3명, ‘모든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조치(가동하지 못할 상태로)’ 2명 순이었다.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예방타격(preventive)할 수 있다고 보느냐’에 대해서는 8명이 ‘아니다’, 4명이 ‘대체로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15명의 응답 평균은 4.4였다. 이는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를 전제로 한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과는 다른 것으로, 미국이 1994년 옌볜 핵시설 단지에 대해 검토했던 외과수술적 타격(surgical strike)은 한국 내 미국인과 자산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어렵다는 판단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북한을 이성적인(rational) 국가라고 보느냐’라는 2번 문항에 15명의 응답 평균은 2.1로 북한을 비교적 합리적인 행위자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가 3명, ‘대체로 그렇다’가 9명이었다. ‘북한 핵은 한국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둘 다 위협하지만 한국을 더’와 ‘둘 다 위협하지만 미국을 더’가 각각 5명으로 같았다. ‘한국을 위협한다’는 3명, ‘미국을 위협한다’는 2명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
‘북핵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나라는’에 대한 응답은 미국 10명, 중국 8명, 한국 1명 순으로 여전히 북핵 문제가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간 ‘국제사회가 북한 핵능력을 저지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에 대한 응답(복수응답 가능)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개발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국제사회의 핵개발 저지 의지가 약했다’ ‘국제사회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가 각각 8명으로 같았다. 대체로 실패 원인이 외부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 원인을 찾는 응답은 ‘북한의 핵개발 의지가 강했다’ 6명, ‘북한이 대화와 도발의 이중 전술로 국제사회를 교란했다’는 2명이었다.북한이 붕괴할 가능성과 예상 연수(年數)에서도 해외 전문가들은 국내 전문가보다 조심스러웠다. 15명의 응답 평균은 3.5로 국내(3.0)보다 좀 더 부정적이었다. 붕괴 시기에 대한 7명의 응답 결과 평균은 3.7로 국내(3.3)보다 북한 체제가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이한 것은 주펑 중국 난징대 교수의 대답이었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는 대부분 이 질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데 비해, 주 교수는 붕괴 가능성에 ‘그렇다’고 응답했고 연수는 ‘5년 이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