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산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은 풍부한 열대과일향, 부드러운 질감, 묵직한 보디감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캘리포니아 날씨가 워낙 좋아 포도가 잘 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캘리포니아 환경에 최적화된 샤르도네 클론(clone·무성생식으로 증식된 개체)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클론이 순전히 한 와이너리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웬티(Went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웬티는 1883년 독일 출신 이민자 C. H. 웬티(C. H. Wente)가 설립했다. 20ha(20만m2)의 작은 포도밭이었지만 와인에 대한 그의 꿈과 사랑은 남달랐다. 아들 어니스트(Ernest)도 아버지를 닮아 열정이 대단했는데, 그는 누구보다 캘리포니아 환경에 맞는 샤르도네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1912년 그는 프랑스 몽펠리에대에서 꺾꽂이용 샤르도네 가지를 자신의 포도밭으로 들여와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어린 샤르도네 나무와 접붙였다. 이후 40년에 걸쳐 골라내기를 반복해 마침내 최적화된 클론을 찾았다. 이것이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는, 샤르도네의 80%를 차지하는 웬티 클론이다.
웬티는 미국 최초로 와인 레이블에 포도 품종명을 기재한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와인 역사가 2000년이 넘는 유럽에서는 레이블에 주로 지역이나 마을 이름을 쓴다. 김포쌀, 이천쌀처럼 우리가 쌀맛을 지역 기반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와인 역사가 짧은 미국은 지역별로 대표할 만한 와인의 맛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 1936년 웬티는 레이블에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세미용(Semillon) 등 포도 이름을 쓴 와인을 출시했고, 이는 60년대 들어 미국 와인 레이블 표기의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됐다.
웬티의 포도밭은 이제 800ha(800만m2)가 넘는다. 이 넓은 포도밭을 웬티는 모두 지속가능 농법으로 운영한다. 지속가능 농법이란 친환경에서 더 나아가 환경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농경방식이다. 와이너리도 지속가능 방식으로 경영하기 때문에 전기 및 물 생산과 소비, 쓰레기 처리 등을 할 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엄청난 노력이 따르는 일이지만 ‘건강한 자연 없이는 미래의 와인도 없다’는 웬티의 신념과 철학은 5대째 이어오고 있다.
웬티의 샤르도네 와인은 1960년 미셰린 가이드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화이트 와인이며, 프랑스 고급 화이트 와인에 필적한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이미 오래전에 품질을 인정받았다. 이런 명성에도 웬티 샤르도네는 비싸지 않다. ‘모닝 포그(Morning Fog)’는 3만 원대로, 자몽이나 멜론 같은 열대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상큼하다. 오크 숙성으로 얻은 은은한 바닐라향이 입안을 기분 좋게 감싼다. 6만 원대인 ‘리바 랜치(Riva Ranch)’는 향미가 더 진하다. 생크림 같은 부드러운 질감과 갓 구운 빵에서 나는 듯한 고소함이 매력적이다. 모닝 포그와 리바 랜치는 보디감이 묵직해 날것보다 볶거나 구운 채소 또는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린다. 닭이나 돼지고기 바비큐에 곁들여도 좋다.
웬티 클론이 없었다면 지금 캘리포니아 샤르도네 맛은 과연 어땠을까. 상상이 안 된다. 웬티는 미국 와인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운 와이너리다. 웬티 와인 한 모금에는 100년이 넘는 캘리포니아 샤르도네의 역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