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정당들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간 물밑 경쟁과 타협이라는 복잡한 계산에 빠져 있다. 여당은 청와대와 새로운 관계 설정에 고민하고 있고, 야당들은 아직도 당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형편이다. 국회가 내실을 기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다. 그렇다 해도 20대 국회에서 다룬 2015 회계연도 결산심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이전 국회와 차별성을 부각하려 하지만, 정작 국회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예산과 결산 가운데 예산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년에 집행될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지난해 집행한 예산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결산심사에서 문제가 지적된다 해도 이미 집행된 예산을 무효화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산심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산 결과를 통해 낭비된 부분과 불균형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차년도 예산 편성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산심사는 중요하다. 즉 예산과 결산은 별개가 아니라 환류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결산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행정부에 비해 의회 권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현대 국가에서 예산과 관련한 재정통제는 국회의 배타적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결산심사가 현재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 국회의 결산심사가 요식 행위에 그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헌법 제54조는 예산심의 확정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지만 결산심사권은 국회에 대한 감사원의 결산심사보고의무(헌법 제99조)로 규정해놓았다. 즉 결산에 대한 국회의 권한은 감사원의 회계검사보고서를 심사하는 간접적 통제로 한정돼 있다. 여기서 제도적 문제는 결산심사 주체인 감사원이 행정부에 속해 있어 독립적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회계검사권을 가진 미국 회계검사원(GAO)이나 영국 감사원(NAO)이 의회에 소속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결산심사가 제도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3년 국회는 결산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심사 결과 위법이나 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나 해당 기관에 시정을 요구하고, 해당 기관은 지체 없이 이를 처리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국회법을 개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지체 없이 처리한다’는 규정이 모호하고 강제 규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 결과 국회의 결산심사 수정 요구가 반복되고 있다. 국회의 결산심사 소홀은 심사기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간 결산심사기간을 계산해보면 상임위원회의 결산심사기간은 평균 사흘이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평균 닷새다. 그리고 예결위 산하 결산심사소위원회는 시정 요구 사항을 각 부처 책임자를 대상으로 직접 확인받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회의는 단 3차에 그치고 있다. 국회의원 50명으로 구성된 예결위도 회의를 6차만 진행해 충실한 감사가 이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 국가에서 행정부 권한의 확대가 지속되면서 회의의 독점적 권한이던 입법권의 상당 부분이 위임 입법 형태로 행정부로 이관되고 있다. 따라서 의회의 주요 기능이 입법에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 바뀌는 추세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결산은 국회가 행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권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국회는 자신에게 속한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특별위원회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16대 국회부터 상설특별위원회로 전환돼 상임위원회로 간주되고 있다. 예결위 위원 정원은 50명으로 다른 상임위보다 2배 이상 많고 임기 2년인 다른 상임위원과 달리 임기가 1년이다. 다수 국회의원이 예결위에 배정돼 예산 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결위에 속한 국회의원은 결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셈이 된다. 따라서 결산심사 전담 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수 의회에서 결산위원회가 분리 독립돼 있고, 회계검사 기능을 하는 기관이 이 위원회에 배속돼 결산심사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행정부의 예산 집행에 대한 적법성을 엄격하게 검증하고 개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권력 남용을 막는 방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소홀했던 결산심사 과정을 재정비하는 것이 국회 정상화의 한 부분이 될 테다. 예산심의는 결산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산과 결산 가운데 예산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년에 집행될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지난해 집행한 예산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결산심사에서 문제가 지적된다 해도 이미 집행된 예산을 무효화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산심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산 결과를 통해 낭비된 부분과 불균형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차년도 예산 편성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산심사는 중요하다. 즉 예산과 결산은 별개가 아니라 환류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결산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부적절한 예산 집행 증가
결산심사가 요식 행위에 그치고, 올해뿐 아니라 매년 소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표한 ‘국회시정요구사항에 대한 정부의 조치 결과 분석’이라는 자료를 보면 결산과 관련해 행정부의 국회 경시 태도가 여실히 나타난다. 2010년 국회가 결산심사에서 시정을 요구한 건수가 1107건인데 2014년에는 1812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러한 시정 요구의 증가는 국회 결산심사가 꼼꼼해진 결과라기보다 행정부의 부적절한 예산 집행이 증가한 때문으로 봐야 한다. 2014 회계연도 결산심사에서 시정을 요구한 내용 가운데 200건은 이전에 지적한 내용이 개선되지 않아 반복된 것이다. 즉 국회의 시정 요구에 행정부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시정 요구 내용 가운데 62건은 최근 3년간 연속해서 나온 것으로, 이는 행정부의 안이한 예산 집행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행정부에 비해 의회 권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현대 국가에서 예산과 관련한 재정통제는 국회의 배타적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결산심사가 현재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 국회의 결산심사가 요식 행위에 그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헌법 제54조는 예산심의 확정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지만 결산심사권은 국회에 대한 감사원의 결산심사보고의무(헌법 제99조)로 규정해놓았다. 즉 결산에 대한 국회의 권한은 감사원의 회계검사보고서를 심사하는 간접적 통제로 한정돼 있다. 여기서 제도적 문제는 결산심사 주체인 감사원이 행정부에 속해 있어 독립적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회계검사권을 가진 미국 회계검사원(GAO)이나 영국 감사원(NAO)이 의회에 소속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결산심사가 제도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3년 국회는 결산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심사 결과 위법이나 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나 해당 기관에 시정을 요구하고, 해당 기관은 지체 없이 이를 처리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국회법을 개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지체 없이 처리한다’는 규정이 모호하고 강제 규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 결과 국회의 결산심사 수정 요구가 반복되고 있다. 국회의 결산심사 소홀은 심사기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간 결산심사기간을 계산해보면 상임위원회의 결산심사기간은 평균 사흘이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평균 닷새다. 그리고 예결위 산하 결산심사소위원회는 시정 요구 사항을 각 부처 책임자를 대상으로 직접 확인받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회의는 단 3차에 그치고 있다. 국회의원 50명으로 구성된 예결위도 회의를 6차만 진행해 충실한 감사가 이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
이 같은 결산심사의 제도적 취약성은 예결위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발언이 더해져 국회의 결산심사를 부실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는 예결위 개의 당일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발표가 결산심사를 압도했다. 예결위에 참석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사드 배치 결정 과정과 국회 비준 동의 여부, 그리고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 등 결산심사와는 거리가 먼 정치 현안을 다루는 데 시간 대부분을 소비했다. 여당의원들의 관심은 주로 지역구 이익 대변에 있었다. 결산심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민원을 제기해 내심 차후 예산안 배정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현대 국가에서 행정부 권한의 확대가 지속되면서 회의의 독점적 권한이던 입법권의 상당 부분이 위임 입법 형태로 행정부로 이관되고 있다. 따라서 의회의 주요 기능이 입법에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 바뀌는 추세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결산은 국회가 행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권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국회는 자신에게 속한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특별위원회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16대 국회부터 상설특별위원회로 전환돼 상임위원회로 간주되고 있다. 예결위 위원 정원은 50명으로 다른 상임위보다 2배 이상 많고 임기 2년인 다른 상임위원과 달리 임기가 1년이다. 다수 국회의원이 예결위에 배정돼 예산 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결위에 속한 국회의원은 결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셈이 된다. 따라서 결산심사 전담 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수 의회에서 결산위원회가 분리 독립돼 있고, 회계검사 기능을 하는 기관이 이 위원회에 배속돼 결산심사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행정부의 예산 집행에 대한 적법성을 엄격하게 검증하고 개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권력 남용을 막는 방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소홀했던 결산심사 과정을 재정비하는 것이 국회 정상화의 한 부분이 될 테다. 예산심의는 결산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