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대란’으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야외에 있든, 실내에 있든 안심하고 숨쉬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있는 곳의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겨냥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SK텔레콤이 2014년 12월 휴대용 측정기 ‘에어큐브’를 출시했고, 중국산 제품들도 속속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순간 널뛰기하는 측정값 “의미 없어”
이 측정기들은 가격도, 기능도 천차만별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6만 원대 초저가부터 50만~60만 원 넘는 고가형 모델까지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측정이 가능한 요소는 미세먼지를 포함해 불쾌지수, 일산화탄소와 이산화질소 농도 등 다양하다. 100만~200만 원대 이상 제품은 대부분 실내에 설치해 사용하는 것으로, 공기청정 기능을 겸한다. 서울시가 각 자치구에 설치한 25개 미세먼지 측정기는 대당 가격이 2000만~3000만 원에 이른다.기업들은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판매하며 간편한 휴대성과 측정의 정확성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10만 원 이하 초저가 상품과 수천만 원대 상품의 성능이 같을까. 기자는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 가운데 가장 저렴한 ‘에어큐브’를 구매했다. 인터넷 쇼핑몰 구매 가격은 6만9000원. 미세먼지 농도와 불쾌지수를 15초 간격으로 알려주는 기기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5.2cm로 손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다.
휴대용 측정기를 들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이곳엔 서울시가 지정한 송파구 미세먼지 측정소가 있다. 공원 내 측정소에서 5분 동안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더니 평균값 93㎍/㎥(약간 나쁨)가 나왔다. 다음으로 공원을 벗어나 인근 차도인 양재대로에서 측정했다. 5분 동안 잰 평균값은 85㎍/㎥(약간 나쁨)였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원의 미세먼지 농도가 낮을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같은 시각 서울 송파구 측정소에서 집계한 미세먼지 농도는 52㎍/㎥(보통)였다. 휴대용 측정기의 측정치와 30~40㎍/㎥ 이상 차이가 났다.
다음에는 정부가 ‘미세먼지 배출 주범’으로 지목했던 고깃집에 들러 실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다. 손님이 없을 땐 56㎍/㎥(보통)였으나 저녁식사 때가 돼 고기 굽는 테이블이 늘자 290~340㎍/㎥(매우 나쁨)까지 치솟았다. 측정치는 식당 입구로 이동했을 때 101㎍/㎥(약간 나쁨)로, 입구에서 10m 정도 멀어지자 75㎍/㎥(보통)로 급격히 줄었다.
소비자라면 대로변보다 공원의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게 나오고 서울시 측정치와 휴대용 기기 측정치가 큰 차이를 보이는 데 혼란스러울 것이다. 휴대용 측정기가 알려주는 실시간 미세먼지 농도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휴대용 기기의 측정치가 100%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첫 번째 이유는 기기 구조 때문이다. 휴대용 기기는 외부에 난 작은 구멍으로 미세먼지를 빨아들이고, 내부 센서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다. 박인규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는 “센서가 기기 내부에 있으면 정확한 농도 측정이 어렵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기기 내부에서 열을 가해 공기와 미세먼지를 위로 끌어올리는데, 이때 기기 외부와 내부의 공기 질 자체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풍량, 풍속도 미세먼지 농도 측정에 영향을 미친다. 박 교수는 “바람이 약하게 불면 먼지가 기기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강하게 불면 먼지가 갑자기 많이 들어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기의 가격 차이만큼 센서 질도 차이가 난다는 지적도 있다. ‘싼 게 비지떡’인 셈. 공기 질 측정기 전문기업 대왕시스템의 백인기 대표는 “공기오염 측정의 핵심은 센서인데, 고급 기기의 센서는 정기적으로 기준값을 초기화하고 평소에도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초저가 제품이라면 센서 단가가 싸고 정확도도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저가 휴대용 측정기는 센서 기준값의 초기화가 필요하지 않으며, 사용 중 주의사항은 ‘기기 외부를 마른 수건으로 닦고 습기와 온도, 충격 등을 피하라’는 정도다.
휴대용 광학식 기기, 광원 수명 따라 정확도 감소
실제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미세먼지 측정기 다수는 휴대용 측정기와 측정 방식이 다르다. 박 교수는 “다수의 대형 측정기는 깨끗한 종이필터에 먼지가 흡착되면 색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측정한다. 반면 휴대용 기기에 주로 사용하는 광학식은 광원(빛)이 먼지와 충돌할 때 산란되는 정도를 통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다”며 “시간이 지나 광원이 수명을 다하면 측정 정확도가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만약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측정한 값이 수십㎍/㎥씩 차이가 날 경우 기기 불량이라고 봐야 할까. 박 교수는 “미세먼지 농도는 공기 흐름 등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실시간으로 10~20㎍/㎥ 정도 차이가 나는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차도에서는 자동차들이 빨리 지나갈 때보다 교통정체 상황일 때 공기가 머물러 있어 미세먼지 측정값이 훨씬 높게 나온다는 것. 박 교수는 “전문가들도 수백 번 이상 동일한 장소, 비슷한 시간에 측정한 값을 모아 평균치를 낸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가 한두 번 측정한 값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그때그때 판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초저가 휴대용 측정기는 소비자의 호기심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측정기 구매, 체험형 렌털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에어큐브 센서 제조사는 측정값의 오차범위를 ±30%로 보증한다. 하지만 당사는 기술 보정으로 오차범위를 절반 수준까지 낮췄다”며 “제품에 적용한 센서는 ‘LED(발광다이오드) 광학식’으로, 기상청에서 쓰는 ‘포집식’보다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고 소비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에어큐브의 보증기간은 2년이며 미세먼지가 아주 많거나 온도·습도가 극단적인 환경이 아니라면 2년 이상 정상적으로 쓸 수 있다고 홍보한다.
업계에서는 ‘미세먼지 공포’를 타고 휴대용 측정기가 유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백 대표는 “성능이 덜 우수해도 휴대가 편리한 저가 측정기가 계속 출시될 것이다. 가격이 저렴해야 소비자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며 “미세먼지 측정 센서 기술은 아직 개발될 부분이 많다. 저가 제품의 성능을 무조건 믿고 구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