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한 건강기능식품 광고에서 중년 남성 모델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털어놓은 이 말은 한동안 큰 인기를 모았다. 해당 건강기능식품의 인기도 치솟았다. 이뿐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 제품의 ‘기능’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 연구진이 최근 각광받는 건강기능식품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한 성인에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올루프 페데르센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의 대장 미생물 구성에 프로바이오틱스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한 기존 연구 7개를 뽑아 분석했다. 그 결과 단 1편의 연구만 유의미한 결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페데르센 교수는 “체계적인 검토 결과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건강한 성인의 대변 미생물에 일관된 영향을 미친다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게놈 메디신’ 5월 10일자에 실렸다.
항암, 피부 미용, 우울증 감소까지?
프로바이오틱스는 ‘호의적’이라는 의미의 단어 ‘Pro’와 ‘생명’을 뜻하는 ‘Biotics’의 합성어로, 건강에 이로운 살아 있는 균을 통칭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산균 등이 이에 속한다. 최근 장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은 캡슐과 음료 등으로 널리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매출액은 1388억 원으로, 시장규모가 7년 새 6배 이상 커졌다. 업계에서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장 건강 개선과 면역력 증진 등의 효과를 내며, 아토피, 천식, 비염 등의 치료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항암, 피부 미용 등에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이런 효능을 뒷받침하는 데는 각종 논문이 활용된다. 라우라 스텐베르헌 네덜란드 레이던 뇌·인지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4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프로바이오틱스 섭취가 우울증 개선에 효과를 발휘한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뇌, 행동, 면역(Brain, Behavior and Immunity)’에 발표했다. 건강한 성인 40명을 대상으로 일부에겐 프로바이오틱스를, 나머지에겐 위약을 4주간 섭취하게 하고 우울증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한 쪽의 우울증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이 프로바이오틱스로 과거의 나쁜 기억과 경험에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됐다고 밝혔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체내 중금속 배출에 효과적이라고 밝힌 연구 결과도 있다. 웨이 첸 중국 장난대 교수 연구팀은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한 쥐의 경우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카드뮴, 납 등 중금속 배출량이 많았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 ‘응용 및 환경 미생물학(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 5월 20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8주간 쥐에게 프로바이오틱스와 카드뮴을 섭취하게 하자 소변 속 카드뮴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들 쥐의 체내에서는 소량의 카드뮴만 검출됐다.
문제는 학술지에 발표된 모든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덴마크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프로바이오틱스 관련 연구 가운데 상당수가 실험 설계와 분석 등에서 신뢰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프로바이오틱스 신화를 아예 부정하는 논문도 꽤 존재한다. 권제니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원은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종류의 약을 이미 섭취하고 있는 생명체에겐 프로바이오틱스가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8월 학술지 ‘감염관리 및 병원역학(Infection Control and Hospital Epidemiology)’에 발표했다. 해당 연구진은 21개월 간 환자 70명에게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하게 하고 위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다. 그 결과 복수의 약을 섭취하는 현대인의 경우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해도 섭취하지 않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프로바이오틱스 이전에도 수많은 건강기능식품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2004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제정한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등 관계법령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건강기능식품을 4등급으로 분류한다. 업체가 제출한 특정 물질 효능의 근거 자료 수준이 과학적 합의에 이를 정도로 높으면 ‘질병발생위험 감소 기능’을, 인체의 건강 기능 향상 효과를 보인 경우 ‘생리활성 기능’을 인정한다. 생리활성 기능은 다시 1등급(~에 도움을 줌), 2등급(~에 도움을 줄 수 있음),
3등급(~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관련 인체 적용 시험 미흡) 등으로 나뉜다. 건강기능식품 분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으려면 ‘약’이 아닌 ‘식품’일지라도 질병 발생 위험을 줄이는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한다는 의미다.
‘식품’도 과학적으로 효능 입증돼야
우리나라에서 이 기준을 통과해 ‘질병발생위험 감소 기능’을 인정받은 식품은 칼슘·비타민D(골다공증), 자일리톨(충치) 등 3가지에 불과하다. 이를 제외하고 다른 물질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기능성이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특히 생리활성 기능 2등급 이하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해당 물질에 대한 임상논문이 단 한 편만 존재해도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검증이 까다롭지 않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심지어 단 한 편에 불과한 논문 내용이 매우 허술한데도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식약처가 어린이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기능성을 인정한 성장촉진제의 경우 식약처가 근거로 삼은 논문은 ‘미국실험생물학회지’에 발표됐다. 그런데 검색 결과 논문 내용을 요약한 초록만 존재할 뿐 전체 논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록에 따르면 해당 논문 연구진은 키가 하위 25%에 속하는 7~12세 어린이 99명에게 12주 동안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하루 두 번 성장촉진제 750mg을 섭취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험 결과 제품을 섭취한 그룹의 피험자 키는 3주 후 평균 2.2cm 성장한 반면, 섭취하지 않은 아이들의 키는 평균 1.9cm 자랐다. 0.3cm의 성장 차이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오히려 성장촉진제를 섭취하지 않은 그룹의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협동과정 교수는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시험 두 달째에는 촉진제를 섭취하지 않은 집단의 키가 더 많이 성장했다. 이처럼 기능성을 입증하기에 부족한 논문 요약본을 근거로 특정 제품에 국가기관의 공인인증마크를 주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건강기능식품 섭취가 만인에게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떠들썩한 광고만 믿고 건강기능식품을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