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을 이용한 신종 금융사기인 ‘보이스피싱’이 극성이다.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속칭 ‘대포통장’ 계좌번호를 알려준 뒤 들어온 돈을 꺼내가는 행위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와 흥미를 끈다. 생소한 죄명도 많이 등장한다.
피고인이 기소된 죄명은 먼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다. 보이스피싱 공범으로부터 이른바 대포통장 계좌의 체크카드를 건네받아 이를 보관한 것 자체가 범죄라는 얘기다. 보이스피싱 공범들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저금리로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 대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인지세, 수수료 등이 필요하다”고 속여 피해자들로 하여금 위 대포통장 계좌로 돈을 송금하게 하고, 피고인은 위 체크카드를 이용해 송금된 돈을 인출하는 방법으로 돈을 편취했다. 이는 명백히 사기죄의 공범에 해당한다.
논란이 된 대목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였다. 피고인이 위의 체크카드를 현금인출기에 넣고 비밀번호 등 대포통장 계좌 명의인의 정보를 입력해 돈을 빼낸 행위를 이 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1심 재판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사기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지만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대포통장 계좌에서의 인출 행위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 2 제1항(이 사건 처벌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의 다수 의견도 하급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 사건 처벌조항’에서 말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 등의 입력’이란 ‘타인에 대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에 의하여 자금을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 등의 입력’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사건에서 대포통장 명의인의 체크카드로 대포통장에서 돈을 꺼내는 것은 ‘타인에 대한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의 자금이 일단 사기이용계좌로 송금, 이체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는 끝난 것이므로, 그 후 사기이용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다시 송금하는 행위는 범인들 내부 영역에서 이뤄지는 행위일 뿐 새로이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어 추가로 처벌하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관 5명은 이에 반대했다. 전기통신금융사기에서 대포통장 계좌에서의 자금 인출은 범행 목적 달성에 필수적인 부분이므로,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대포통장에서 자금을 인출하는 행위도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봐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소수 의견이 더 옳아 보인다. 나쁜 마음을 먹고 돈을 꺼내가는 행위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법감정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어길 수 없다. 확대해석과 유추해석은 금지된다. 법에 정한 행위가 처벌조항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한 함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게 헌법정신이다. 처벌이 미흡하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 대법관들이 법을 넘어서는 해석을 해선 안 된다. 설령 대통령이 시키더라도 절대 그 선을 넘어서면 안 되는 것이다.